1996년 10월 6일. 그날 나는 회사에서 파견나와 대학로 한 편집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붉고 노랗게 물든 나무들이 보이는 거리는 로맨틱했다. 오후 늦게 잠깐 숨도 돌릴겸 머신에서 커피를 뽑아 건물 테라스에 앉아 밀린 전화 문자를 확인했다. 김광석 죽은 거 아세요? 그녀는 일 때문에 만난 사이였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건만 때때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업무가 아니라면 내가 먼저 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최대한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티가 너무 나서 내가 도리어 미안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 날은 달랐다. 짤막한 글귀에도 슬픔이 가득 베어 있었다. 그녀만큼의 충격은 아니었지만 나 또한 한동안 우울했다.
김광석이 다시 화제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극장에 들렀을 때 그의 이름을 단 다큐영화를 상영하고 있어 의아했다. 게다가 감독은 이상호 피디. 왠지 어울리지 않았다. 그의 음악을 다룬 것으로 오해했기 때문이다. 실체는 전혀 달랐다. 그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였다.
고 김광석은 일찍 죽었기 때문에 오래오래 남을 자격을 갖춘 가수다. 흔히 천재 예술가들이 그러하듯이 요절은 신비감을 불어넣는다. 게다가 자살이라면 더욱 더. 그런데 새로 밝혀진 사실은 그에게 딸이 있었고 그 딸이 죽었다는 사실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사이에는 전처가 있고, 그녀는 여전히(?) 잘 살고 있다. 김광석의 위엄을 받들며. 벌써 스토리가 꽉 짜인 느낌이 들지 않는가? 결과가 어떻게 밝혀지든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수순으로는 진행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 결과 우상화는 더욱 강화되고 우리 세대가 다 죽은 다음에는 신화로 우뚝 솟을 것이다. 음악적 업적과는 별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