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탄압 수단...가압류..... 2004/08/02 18:22

노조가 파업을 하고 나면 회사는 고소나 고발, 가압류, 손해배상, 해고 등등을 해댄다. 그 이유는 노조가 법을 위반하거나 불법 파업을 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헌법은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는데, 하위법에서 노동3권을 철저히 가로막고 있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법과 제도가 이런 상황을 만들어 버린 것이라고 감히 나는 말하고 싶다.

 

게다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논리가 대법원의 입장(설마 ? 정....말....이다. 대법원 2003.7.8. 2002도7225 사건의 판결문을 보시라..대법원 판사가 경총 회장인 것같다는 느낌을 난 지울 수가 없었다)이다 보니, 파업에 대한 책임은 엄하기 그지 없다.

 

가압류가 어떻게 악용되는지 예를 들어 보자.

 

1. 발전노조 사건

 

발전노조가 2002년도에 파업한 적이 있다. 그에 대해 사용자(발전회사는 모두 5개)는 400억원이 넘는 손해가 있다면서 가압류를 신청했고, 판사는 그냥 인정해 주었다. 참, 그 판사 대단하다. 더하기 빼기만 잘 해도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을까 ? 손해가 무엇인가 ? 잃은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은 것도 손해라고 하는가 ? 일 안해서 팔아 먹을 것을 못만들었다면 그것이 잃은 것의 대표적인 예일 테고, 대신 일 한해서 임금 안 주게 되었다면 그것이 얻는 것의 대표적인 예일 텐데, 더하기 빼기 해서 뒤의 것이 더 크다면, 가압류 신청은 어찌 해야 돼 ? 기각해야 되지....근데, 그걸 안해 보고 무조건 결정문 날리는 거야...........조합비, 조합원들 임금, 심지어는 보증인의 재산까지 가압류 해대면 이후 조합활동이 제대로 될 수 있을까 ? 그렇기에 가압류 결정은 신중하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

 

발전노조의 경우 어떻게 됐을까~~~~~요 ? 3개 회사가 손해배상 청구(본안소송)을 했는데, 2개는 기각(즉, 손해가 없다), 나머지 하나는 회사가 소송을 취하(즉, 소송 절차 더 이상 진행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법원에 표시하는 것)하겠다고 한 것이 최근까지 있었던 소송 결과......

 

근데, 재미있는 것은, 소송 제기해놓고 나중에 가서 취하하면 그만이지 하는 생각을 했다가는 큰일 당한다네...소송에 응한 상대방(피고)도 소송에서 이기려고 할 것인데, 이쪽에서 맘대로 하다 말다 하면 저쪽은 열받겠지...하여, 상대방이 준비기일에 출석하거나 준비서면 등을 제출해 버리면, 소송 취하도 함부로 못한다네..그래야 공평하니까...상대방의 동의가 있어야만 취하도 가능하단 말이지...

 

발전노조가 피고가 되었고 발전회사 중 1개가 취하한다고 했는데, 발전노조가 동의를 안해버렸으니, 회사는 꼼짝없이 결론(주문)이 기각인 판결문을 받아봐야 할 테지...샘통이다...

 

2. 인천지하철노조 사건

 

2003년에 파업을 했던 인천지하철의 경우 또한 예를 들면, 회사가 1억 2천만원의 손해를 봤다고 소송을 시작했는데, 결국 인정된 것은 3000만원 정도...다른 때는 야근이다 특근이다 해도 야근수당 정도만 주더니, 파업할 때는 파업 참여 안한 사람들한테 1인당 10만원씩인가를 더 챙겨주었다나 뭐라나...그리고, 그걸 손해라고 해서 청구한 거야....

 

물론, 여기서도 더하기 빼기는 전혀 못하더군....배울만큼 배웠다는 사람(누구게 ?)이 소송을 시작하면서 왜 더하기 빼기는 못할까 ? 헐~

 

가압류 같은 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한 넘은 누구냐 하면 말이지...학실히.....강간 산업.....그렇게 나로서는 잘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를 해대던 넘이 정권 잡았을 때부터다...그 후로 통계 자료를 보니 해마다 가압류 금액은 늘어나지만, 들여다 보면 10%대 내지는 20%대 정도나 제대로 인정되는 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노조가 가압류, 손해배상 청구 등이 정부와 사용자가 짜고 치는 신종 노조 탄압 도구라는 이야기가 나올 법도 하지 않나 ?

 

가압류는 재산을 처분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 이후 가압류가 풀리더라도 그 동안에 재정적 압박으로 채무자가 나가 자빠질 가능성도 있다. 조합비는 100% 다 가압류되고, 월급도 반이 가압류 되어 버린 상태에서 제대로 활동이 가능할까 ? 그렇다면 사용자가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해진다. 단순히 손해배상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다.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노조가 없어지지 않는 한 천천히 받을 수도 있다(예를 들어 위 인천지하철 사건에서 3000만원의 손해가 맞다면, 월 100만원씩 3년에 걸쳐 노조로부터 받으면 되지 않을까 ? 근데, 왜 뭐가 급하다고 곧바로 해고자의 퇴직금까지 가압류를 해대냐 말이지..노조가 없어지길 바라는 건가 ? 아니라면 노조는 계속 있을 텐데, 그러면 받을 수 있을 텐데 말야...) 그리고, "아 ! 앞으로 파업하면 이렇게 험한 꼴 당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조합원 개개인들이 가지게 될 것이고, 보증은 일가 친척이 서주는 경우가 많으니 가족까지 나서서 말릴 수밖에 없으니,

 

가압류 하나로 이렇게 많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좋은 제도인가 ?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고 ? 젤 위에서 다 말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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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 웬만하면 하지 마.... 2004/07/24 00:51

웬만하면(가능하면)  결혼하지 마라...

 

사귀는 사람이 있어서 결혼이라는 것을 고민하면서 결혼에 대해 내게 묻을 때, 그에게 나는 그렇게 말해준다.

 

그에게 내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비교적 단순하다.

 

먼저, 위에서 말하는 그는 성별로 보면 여성임을 미리 밝힌다. 왜 여성에게 그런 말을 하게 되는지는 곧 알게 될 것이다. 

 

비교적 단순하다고 한 이유는, 대한민국에 사는 수컷인간(남성)에 의해 여성은 모든 것들에 있어 종속적인 위치에 있게 되는데, 결혼이라는 또 하나의 굴레를 더 뒤짚어 쓰려 하느냐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대한민국의 수컷인간들이 들으면 섭할 지 모르니, 굳이 덧붙이자면 전세계 수컷인간들도 다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수컷인간들은  여성이 차별을 받고 있다는 것 자체에 대해 무감각하며, 여성들의 차별에 대한 항의에 대해 귀기울이지도 않을 뿐더러 열심히 설명을 해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나는 그 대부분의 수컷인간의 범주에서 어느 정도는 벗어낫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실제 대화를 하거나 생활 속에서 과연 내가 그 어느 정도마저 벗어낫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스스로더 의문을 가질 때도 많다.

 

예를 들어, 예전에 나는 집안 일을 하면서 무의식 중에 그거는 내가 "해줄께"라는 말을 하곤 했다. 그 때 우리 각시는 "줄께"라는 말에 대해 지적하기 시작했다.

 

집안 일은 남성이던 여성이던 같이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집안 일은 여성들의 몫이라고 어렸을 때부터 가정, 사회 등으로부터 배워왔고 그 결과 남성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 당연한 생각이 말로 표현되는데, 바로 "해준다" 또는 "준다"라는 말이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면서 "해준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가 ?

 

뒤통수를 세게 한대 맞은 느낌이었다. 분명 난 그런 느낌을 받았다(남성들이 만약 지금 여자친구 또는 각시로부터 그런 말을 들었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을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정말 결혼을 진짜 해야 하나 ?  결혼 ? 특히 이성간의 결혼을 당연시하는 분위기에서 이성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억지로 이성과 결혼을 시켜야할까 ? 결혼을 하게 됨으로서 자기 생활을 송두리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인데도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할까 ? 만약 당신이 그런 처지에 있음에도 당신은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

 

난 결혼생활도 하나의 삶의 방식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각자 스스로 생각하는 삶의 방식이 있고, 그 삶의 방식에 결혼이 끼여들 여지가 없는 사람이라면 결혼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그리고 그런 사회를 온전한 사회의 모습으로 여기는 대부분의 남성들 중 어느 하나를 골라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이라면, 내 결론은 당연하게도 "여성들이여, 웬만하면 결혼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너무 좋아서 같이 살고 싶은데, 그래서 결혼한 나에게 도움말을 부탁했는데 그런 말을 하는 나도 그리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웬만하면 하지 말라는 말은 곧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 정말 신중하게 생각해보라는 말이기도 하고, 그것이 진짜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좋은 감정으로 무엇인가를 대할 때는 그 무엇의 좋고나쁨에 대해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마음의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에 냉정하라고 충고하는 것이다. 정말 정말 신중하게 생각해보고 하라고...

 

그런 뜻이라면 좀 좋게 말하지, 그렇게 말하면 아무튼 기분이 안좋잖아요..그런가 ?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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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4-07-25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치만 시누이 앞에서까지 그런 말을 하면 내가 곤란해진단 말야. T_T

숨은아이 2004-07-25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내가없는 이 안 2004-08-01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늘 제가 말하는 대사인데 님 집에선 옆지기님이 하시는군요. 오호~ 전 딸이 크면 조금씩 대놓고는 아니지만, 슬며시 말해주고픈 생각입니다. ^^

숨은아이 2004-08-01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에 따르는 의례적인 관습들... 특히 결혼식은 정말 부모님을 위한 형식이란 생각을 많이 했지요. 자연스레 가족으로서 가까워지고 서로를 위해 뭔가 하고픈 마음이 우러나는 관계가 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결혼했다 하면 으레 부과되는 의무들... 하지만 이안이가 컸을 땐 결혼이 좀더 행복한 시대가 되길 바랍니다. ^^
 

어제(11월 7일 수요일) 저녁 5시 30분.
오후 내내 집중이 안 돼 기를 썼던 교정지를 덮어버림.
벌써 6개월째, 역시 나는 지구전에 약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음.
오늘은 약속도 없지만 좀 일찍 도망쳐야겠다고 실장님에게 말함.

8일(오늘) [고양이를 부탁해]가 종영되는 걸 알고서
어떻게든 이 영화 볼 기회를 만들어보리라 별러온 나.
오늘이 그날이다 생각함.
원래는 지난주에 종영해버리는 줄 알고 체념하고선 비디오로나 봐야지 했던 영화.
정동 스타식스에서 다행히 일주일 더 버텨줌.

삼성애니패스카드 가져가면 정동 스타식스에선 평일 영화 반값인데
빌어먹을, 인터넷 예매는 할인이 안 됨. 그냥 가서 보면 되지 하고 생각.

사무실에서 나온 시간이 5시 50분. 6시 40분까지는 시간이 모자라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이날따라 5호선이 늑장을 부림. 서대문역에서 6시 36분에 내림.
부지런히 걷다가 나중에는 뛰어서 극장에 닿은 것이 39분.
그리고 매표소 앞에 길게 늘어선 줄. 예매표 찾는 창구는 기다릴 필요 없는데,
제값 주고 예매할걸 후회도 잠깐 함.
내 차례가 된 시간이 6시 45분. 그냥 들어갈까 하다가,
영화 시작했다는 말에 8시 50분 표를 끊음.

옆 건물에 있는 맥도널드에 갔더니 김치버거 세트를 사면
아이스크림 콘이나 애플파이를 공짜로 준다 해서 얼떨결에 그렇게 함.
다 먹고 나면 배부를 테니 오래 갖고 있기 곤란한 아이스크림보다는
애플파이로 달라고 함.
유리벽 쪽에 바처럼 좌석이 늘어선 자리를 찾아 김치버거를 먹음.
김치버거라 해서 어떤가 봤더니 햄버거 사이에 김치 쪼가리 몇 개 든 것. -.-
먹으면서, 나는 조명 등등 때문에 유리창에 그림자가 져서
밖이 잘 안 보이는데 밖에서는 내가 햄버거 먹는 모습이 훤히
드러나리라는 생각을 함.

천천히 먹고 2주째 들고 다니는 [석순] 19호를 펼침.
마침, 마지막 꼭지는 영화를 보는 여성 관객의 쾌락과
페미니스트 관객, 퀴어영화에 대한 글 세 편을 묶은 것.
마지막 장을 덮으니 8시 10분.

영화관 건물로 다시 가서 로비의 작은 탁자와 의자 하나를 차지.
나와 나이가 비슷하거나 조금 어릴 것 같은 여자 하나,
한쪽에 방치된 의자 하나를 밀고 내가 앉은 탁자로 옴.
맞은편에 앉아 주섬주섬 봉지를 펼치는데
내가 봉지 밑에 깔린 신을 잡으며 "봐도 되겠지요?" 물음.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던 신문이라 여자는 물론 허락.
둘이서 신문을 나누어 보는데 여자, "같이 드세요" 하고
봉지 속의 빵을 보임. "전 방금 먹었어요" 하고 웃어줌.

8시 30분. 목이 말라 건물 안의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2개 삼.
앉았던 자리로 돌아와 하나를 앞의 그 여자에게 건네자
고마워하며 "영화 보러 오셨어요?" 하고 물음.
그렇다 했더니 "어떤 영화... [물랑루즈]요?"
"[고양이를 부탁해]요."
"아... 정말 고맙습니다."
그 여자는 [물랑루즈]를 보러 온 모양. 둘이 같은 영화를 본다면
이야기를 틀 수도 있을 텐데. 40분이 되자
"영화 잘 보세요" 하고 내가 먼저 일어섬.

그 동안 옆자리에서는 다른 여자가 40분 내내
페미니즘 영화에 대해 어떤 남자와 이야기하고 있었음.
[석순] 19호의 한 글은, [석순] 19호가 나왔을 당시
미국 흥행을 휩쓴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와
한국 극장가를 강타한 [친구]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음.
이 글은, 한국의 문화소비자층을 구성하는 비율을 봤을 때도
여성 관객의 주머니를 털지 못하면 영화는 절대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데,
[쉬리]에서 영화 속 상황을 규정하는 조건에서 희생자이면서도
공격자인 모순적인 위치로 전면에 나섰던 여성이
[공동경비구역]에서 남자들만의 세계에서 이루어진 사건에 대한
관찰자이며 기록자로 물러서더니,
[친구]에서는 노래 한 곡 부르고 사라져버린 상황에 대한
해독을 시도함.

그리고 극장 좌석에 앉아 새삼스레 주변을 둘러보니,
거의 대부분이 여자임. 특히 내가 앉은 줄은 가운데 앉은 나를 경계로
셋씩 같이 온 여자들 무리로 채워짐.
이들은 어떤 눈으로 어떤 영화를 보며 쾌락을 느낄까?
같은 영화를 보러 일부러 늦은 시간, 한 공간을 꽉 채운 사람들이라는
호감. 그러나 영화가 시작하고 몇 분 흘렀는데 내 앞에서 셋째 줄에
몸도 별로 낮추지 않는 채 줄줄이 들어와 앉는 사람들. 짜증남.
(아까 나도 5분 늦게 영화를 보러 들어가? 하고 잠시 망설였는데
그때 안 그러길 잘했다 생각.)

그리고 내 바로 앞자리에 아이 두 명과 같이 온 부부인 듯한 사람들.
아기 옷 때문인지 팔을 머리 위로 들었다 놨다,
또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위로 들었다 놨다,
바로 뒷자리에 앉은 사람에게는 하나하나 모두 스크린에 방해될
행동을 연속으로 함. 애가 재미없어할 게 뻔한 영화를
왜 꼭 같이 와서 보는지 이해 안 됨.
극장에서 보는 영화는 비디오와 달라 대사 하나 놓쳐도
되감아서 확인할 수 없음을 새삼스레 깨우침.
짜증스러웠으나,
문득, 이런 것들도 모두 '극장에서 영화 보기'의 일부일 거라는 생각.
그리고 부부가 영화를 같이 보고 싶은데
아이들을 맡길 데가 없어 할 수 없이 데려왔으리라 이해하려고 노력.

[고양이를 부탁해]
상영시간   110분.
각본 감독  정재은.
제작 배급  마술피리.
주연          배두나(태희), 옥지영(지영), 이요원(혜주), 이은실(비류), 은주(온조)

요즘 스무 살 여자애들이 그렇듯,
손에서 전화기를 뗄 줄 모르고 틈나는 대로 문자를 날리는 그들.

비류와 온조로 나오는 쌍둥이 여자애들은 예전에 MBC '칭찬합시다'를
이윤석, 서경석이 진행할 때 같이 나왔던, 무표정한 얼굴로
사람들을 웃긴 그 쌍둥이 여자애들. 역시, 귀여운 여자아이들이었음.

배두나가 좋음. 눈과 귀와 마음뿐 아니라 손과 발까지 열려 있는 아이 태희.
그 태희에게 딱 어울리는 배두나가 좋음.

이요원 연기 잘함. 증권사 사무실에서, 스스로 가치 있는 일을 한다고
믿기 위해 발버둥치는 여상 출신 여직원 혜주.
얄밉고 이기적이기도 하며, 깜짝 놀랄 만큼 의뭉스러운.

지영이란 아이가 이 영화에 나와서 영화가 좋아짐. 정말.
지영이 없었다면, 이 영화의 의미는 절반으로 뚝 떨어졌을 거라 생각.

영화 마지막 장면에 무식하게 큰 글자로 나오는 "GOOD BYE"가 좋은 영화.
타일이 주르륵 뒤집히는 듯하게 그래픽 처리한 크레딧도 좋음.

영화관에서 울어보기는 [개 같은 날의 오후] 이후 처음.
코미디영화 보고 울어보기는 [개 같은 날의 오후]가 처음이었고,
안 울리는 영화 보고 울어보기는 [고양이를 부탁해]가...
음... 처음은 아님...

말을 하고 싶지 않아지면서, 담배 한 대 피우고 싶어지는 영화.
음, 그래, 이런 기분이 느끼고 싶어서,
아마 이 영화는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해줄 거라 생각해서 보러 왔는지도 모름.

오늘 아침 출근해서 영화감독 이름을 몰라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홈페이지(www.titicat.com : 영화에 나오는 고양이 이름이 '티티'임)에
장사가 안 돼 종영하는 이 영화 재개봉 운동에
가수 조영남이 나섰다 함. 나 이 사람,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렇다 해도, 다양성을 배양하기 위한 운동을 한다는 건 좋은 일이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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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7. 25 조금 문장을 손보았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그 이름을 알게 되어 행복했던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그 멤버인 이브라힘 페레 할아버지가 내한 공연하는 기념으로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빔 벤더스Wim Wenders 감독의 다큐멘터리 필름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Buena Vista Social Club>(1999)을
10월 9일까지 재상영한다고 해서,
정말 꼼짝 말고 책상 앞에 붙어 있어야 하는 처지임에도,
걍 오늘 아침 조조를 보고 말았다.

가난한 처지라 공연은 보러 가지 못해도
(그런데 이 할아버지, 갑자기 눈병이 생겨 내한 공연이 취소됐다고 함)
이 영화는 꼭 봐야지 싶었다.

아침 10시 50분이 상영 시작 시간이었는데,
시작 직전 참 묘한 기분이 되었다.
좌석이 80석이나 될까 하는
아담한 상영관에서,
그때까지 좌석에 앉은 사람은 나까지 단 네 명.
모두 혼자 영화를 보러 온 여자들이었다.
허, 이런 경험 처음일세.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하는데
사람들이 더 들어와,
영화 끝나고 보니 관객은 모두 아홉 명이었다.
그 중 남자는 두 명.
그런데 여자 두 명이 같이 온 경우를 제외하고는
역시 모두 혼자 온 사람들이었다.

흔히들 영화 마지막의 자막이 올라가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들썩들썩 자리를 비우기 시작하는데,
오늘 아침 10시 50분 광화문 씨네큐브 2관에서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자막이 다 올라가고
(물론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1999년 카네기홀 공연 실황이
화면에 나오는 중에 자막이 올라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스크린에 불이 꺼지고 나서도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몇 초 뒤 상영관 천장의 불이 켜지자 한 사람씩
서운한 듯 일어서는데, 왠지 동류의식 같은 것이 들었다. ^^;

중간에 좀 졸리긴 했지만(다큐멘터리라는 게 그런 법 아닌가),
그냥 보고 듣기만 해도 좋았다.

영화 앞부분의 자막에는 좀 불만이 있는데,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첫 공연 때
좌석을 메운 관객들과 무대에서 연주를 준비하는 멤버들을
비추는 화면 한가운데로
원래 필름의 자막인 연주자들 이름이 나왔다.
그 위에 한글 자막을 다시 입혔는데,
원래 알파벳으로 된 자막과 한글 자막의 색깔이 비슷한데다
자막의 글자가 워낙 많아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정신이 산란했다.
한글 자막은 옆구석에 세로쓰기를 하든지 할 일이지...
그런 생각을 하는데 어느 순간 자막이 내 생각대로 되었다. 하하.

상영이 끝나고 나오는데 표 파는 곳에서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주요 멤버 다섯 명이 연주, 노래한 곡을
82개나 모은 다섯 장짜리 CD
The Great Members of Cuban Music <The 5>를
1만 7000원에 팔기에 싼 건 사두는 게 장땡이다 하고
사버렸다. ^^;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첫 번째 앨범은 있지만,
보컬 이브라힘 페레나 피아니스트 루벤 곤살레스의 CD는 없어
언제나 살 수 있으려나 한숨 쉬고 있었는데, 잘되었다 하고.

그런데 수록곡들 제목을 보니
여자보컬 오마라 포르투온도가 부른 <관타나메라>는 없다.
예전에 mp3로 그 노래를 듣고는, 꼭 CD로 갖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구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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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7. 25. 표현을 조금 손보았다.)

<붉은 돼지>를 처음 본 건 몇 년 전. 선배가 빌려준 비디오를 통해서다.

처음 봤을 땐 재미없었다.
비디오로 두 번째 봤을 땐 나름대로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에 극장에서 보니까... 
미야자키 하야오, 그의 작품 앞에선 무릎 꿇고 싶어진다.
그의 작품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와 <원령공주>이지만,
(<원령공주>는 "좋아한다"는 말만으로는 모자라다!)
<붉은 돼지> 역시 <붉은 돼지>만의 매력이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에서 가장 독특하고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건 여성들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이른바 "나쁜 여자"는
다른 만화나 드라마와 달리
성격이 비뚤어지고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악인이 아니라,
합리적인 이성을 갖춘 인물이다.
합리적인 이성을 갖추었기에 그 나름대로
인간을 위해 좋은 방법을 찾고,
나중에 그 방법이 틀렸음을 알게 되면
역시 이성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붉은 돼지>는 다른 작품과 달리
남성 중심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여자가 결투의 경품으로 등장하지 않나.
그러나 그것은 비행기조종사들의 남성 중심적 문화를
반영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작품에도 역시 열심히 살아가는,
그래서 "너를 보면 인간도 괜찮구나" 싶은  여성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작품의 백미는
엔딩크레딧 화면 왼쪽에 계속 나타나던
이 작품의 원작 만화 그림들이다.
(확인해보진 않았지만 원작 만화 그림인 것으로
짐작된다. 이 작품의 원작은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이
<월간 그래픽스>란 잡지에
<비행정의 시대>란 제목으로 연재했던 만화라 하니까.)

거기서 보이는 건 돼지들이 전쟁을 치르는 모습들이다.
포르코 하나뿐이 아니라,
매우 많은 돼지가 전쟁을 견디는 모습들이다.
그 중에서 많은 돼지 비행사들이 단체 사진이라도
찍는 듯 모여 선 장면에서는 울컥 치솟아오르는 것이...

"파시스트 인간보다는 돼지가 낫다."
그렇게 인간이기를 거부한 돼지들이 모여
파시스트 전쟁을 견뎌낸 모양이구나... 싶으니까.
포르코 혼자 외로이 버틴 것이 아니리... 싶으니까.

만화영화다 보니 극장엔 아이들이 많았는데,
아이들이 과연 이 만화를 이해할지,
아니 적어도 재미있게 보기라도 했을지 잘 모르겠다.
뒷부분에 포르코와 커티스가 육탄전 벌이며
마구 망가지는 얼굴이 나오니 그때는
아이들이 떠들썩하게 웃으며 좋아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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