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7. 25. 표현을 조금 손보았다.)

<붉은 돼지>를 처음 본 건 몇 년 전. 선배가 빌려준 비디오를 통해서다.

처음 봤을 땐 재미없었다.
비디오로 두 번째 봤을 땐 나름대로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에 극장에서 보니까... 
미야자키 하야오, 그의 작품 앞에선 무릎 꿇고 싶어진다.
그의 작품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와 <원령공주>이지만,
(<원령공주>는 "좋아한다"는 말만으로는 모자라다!)
<붉은 돼지> 역시 <붉은 돼지>만의 매력이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에서 가장 독특하고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건 여성들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이른바 "나쁜 여자"는
다른 만화나 드라마와 달리
성격이 비뚤어지고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악인이 아니라,
합리적인 이성을 갖춘 인물이다.
합리적인 이성을 갖추었기에 그 나름대로
인간을 위해 좋은 방법을 찾고,
나중에 그 방법이 틀렸음을 알게 되면
역시 이성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붉은 돼지>는 다른 작품과 달리
남성 중심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여자가 결투의 경품으로 등장하지 않나.
그러나 그것은 비행기조종사들의 남성 중심적 문화를
반영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작품에도 역시 열심히 살아가는,
그래서 "너를 보면 인간도 괜찮구나" 싶은  여성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작품의 백미는
엔딩크레딧 화면 왼쪽에 계속 나타나던
이 작품의 원작 만화 그림들이다.
(확인해보진 않았지만 원작 만화 그림인 것으로
짐작된다. 이 작품의 원작은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이
<월간 그래픽스>란 잡지에
<비행정의 시대>란 제목으로 연재했던 만화라 하니까.)

거기서 보이는 건 돼지들이 전쟁을 치르는 모습들이다.
포르코 하나뿐이 아니라,
매우 많은 돼지가 전쟁을 견디는 모습들이다.
그 중에서 많은 돼지 비행사들이 단체 사진이라도
찍는 듯 모여 선 장면에서는 울컥 치솟아오르는 것이...

"파시스트 인간보다는 돼지가 낫다."
그렇게 인간이기를 거부한 돼지들이 모여
파시스트 전쟁을 견뎌낸 모양이구나... 싶으니까.
포르코 혼자 외로이 버틴 것이 아니리... 싶으니까.

만화영화다 보니 극장엔 아이들이 많았는데,
아이들이 과연 이 만화를 이해할지,
아니 적어도 재미있게 보기라도 했을지 잘 모르겠다.
뒷부분에 포르코와 커티스가 육탄전 벌이며
마구 망가지는 얼굴이 나오니 그때는
아이들이 떠들썩하게 웃으며 좋아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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