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계약직 노동자의 질문으로부터 2004/11/16 18:52

 

 

오늘 내가 읽고 답해야 할 질문 중에도 이런 게 있다. 

 

보일러 기사다. 사실 보일러 기사면 늘 필요한 업무일 텐데, 1년 단위로 계약했단다. 2년차니까 작년에 계약서를 한번 더 썼고, 이번에 한번 더 쓰게될 것 같단다. 혹시 이번 계약을 사용자가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지 ? 세번째 계약서를 쓰면 정규직이 되는지  ?  두가지를 물었다.

 

그 노동자에게 어떤 선택권도 없다. 그 노동자가 자기는 1년 계약보다는 정규직을 원한다고 말한다는 것은 100%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계약직 노동자를 비롯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는 처음부터 사용자와 대등하지 않다. 근로기준법은 당사자간에 대등하고 자유로운 계약을 말하고 있지만, 그저 듣기 좋은 말일 뿐이다(이 때, 온전히 자기 결정으로 계약직이 된 경우, 엄격히 말해 비정규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우선 답변부터 해 보자.

 

사용자가 계약을 거부하면 법적으로 다툴 길이 없다. 법원은 노동자의 선택권이 완전히 제약된 상태에서 체결된 계약도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대등한 개인 사이의 계약을 규율하는 민법적 사고만으로는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 존재하는 힘의 차이를 메울 수 없다는 생각에서 노동법이 생겨났다면,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계약에서는 당연히 노동법적 사고가 개입되어야 하지만, 한국 법원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물론, 계약이 형식적이다는 점을 밝혀 사실상 정규직이다라고 보는 경우도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외일 뿐이다)

 

3번 계약서를 쓰면, 다시 말해 2년을 초과해 계속 근무하면 정규직이 되느냐고 물었다. 현행 파견법에 2년을 초과해서 파견노동자를 사용하면 그 회사에 고용된 것으로 본다는 규정이 있다. 아마 그 규정을 어디서 들었나 보다. 그런데, 그 규정은 파견노동자에 관한 것이고, 또한 파견노동자가 2년이 넘으면 정규직이 된다는 규정도 아니다. 다만, 그 회사에 고용된 것으로 볼 뿐, 계약직으로 할 수도 있다는 것이 정부의 태도이다. 그렇게 되면 그 규정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 다시 계약직이 되니 말이다. 그래도, 그 법은 "보호"라는 이름을 버젓이 달고 있다.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 그게 무슨 보호인가 ? 없는 것 보다는 낫다 ? 아예 파견법을 안만들면 제대로 보호되는 것 아닌가 ? 그건 그렇고, 다시 질문에 답하면, 몇년을 사용해야 정규직이 된다는 법규정은 없다. 따라서, 답변의 결론은 "아니다"가 된다(물론, 장기간 반복이라면 계약이 위와 같은 예외적 적용을 말해 볼 수도 있지만, 역시 예외적이라는 점은 마찬가지다)

 

사용자의 입장에서 보자. 어떤 노동자가 있다. 일은 그런대로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임금을 좀 내리자고 했더니, 반대했다. 노조에 가입해서 사사건건 따진다. 뭐 좀 시켰더니 업무와 무관하다거나 강제노동이라며 협의해서 하자고 한다. 휴일에 좀 나오라고 했더니, 쉬겠단다. 이럴 때, 비록 그것들이 다 노동법에서 보장한 노동자의 권리이지만, 설사 그렇더라도 사용자가 그를 계속 사용하려고 싶어 할까 ? 아니면 잘라 버리려고 싶을까 ? 그런데, 그를 잘라버려도 될 만한 잘못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법적으로 자를 수가 없다. 이 때 떠오르는 기발한 생각. 그렇다. 그는 1년 계약직이다. 파견나온 노동자다. 용역노동자다. 아하 ! 1년 후 계약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고, 파견계약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고, 용역계약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군. 다른 1년 계약직을, 다른 파견노동자를, 다른 용역노동자를 사용하면 그만이니까. 사용자라면 과연 어떻게 할까 ? 마음에 드는 노동자는 계속 반복해서 쓰면 되고, 그렇지 않으면 계약서를 쓰지 않으면 된다고 할 때 말이다. 노조가 없다면 그런 유혹을 떨칠 수 있는 사용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

 

내가, 왜 파견법이나, 기간제노동자법을 반대하는지, 그리고 왜 위와 같은 법원의 해석을 반대하는지, 여럿 있으나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전적으로 사용자에게 노동자의 생사여탈권이 주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도 사용자는 충분히 업무 능력을 문제삼아, 업무 질서 위반을 이유로, 노동자를 충분히 해고할 수 있고, 또 법원도 그것을 거의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해고가 어렵다는 말을 들으면 참, 가증스런 거짓말처럼 들린다. 

 

지금도 그런데 이제 아예 법원의 심사마저 필요없는, 아예 법적 다툼을 하게 할 수 없는 정도로 법을 만들자는 것이기에, 지금의 입법을 반대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노동자 착취법이라고 할 파견법은 아예 없애야 한다. 업무상 필요성이 있는 경우, 그 필요성을 명시하고 또한 기간도 명시하여 사용할 수 있다. 충분히 그것은 파견법이 아니어도, 기간제법을 만들지 않아도 가능하다. 게다가, 기업 운영이 투명하면 노조와 조합원들에게 신뢰받을 수 있다. 그런 신뢰 위에서라면 특히 기업이 어려울 때일수록 힘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 진정한 대화와 타협은 자기 속내를 다 드러내놓고서야 가능한 것이 아닐까 ? 내가 그렇지 않은 기업만을 상대해서 그런지 몰라도, 미리 공개하고 미리 대화하는 그런 곳은 보지 못했다. 그저 이것은 경영에 관한 사항이니 대들지 말라는 말만 주로 들었다. 그래놓고 노조나 조합원, 노동자들한테 뭘 기대할 수 있을까 ? 노동자도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파업하지 말라는 말과 동일시하지 말고, 같이 참여하고 같이 결정하는 말로 바꾸어 보라. 그래야 진짜 주인의식을 가지지 않을까 해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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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11-17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감사^^

릴케 현상 2004-11-17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이런 법 얘기조차도 낯선 것이 내가 봐온 사용자나 노동자들이 해고하거나 당하는데 그정도까지 골치아픈 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거다. 법이야 어쨌든 사용자가 어느 날 당신 좀 무능하군 하면 내가 본 바로는 모두 알아서 사표 쓰던데... 혹은 자기가 무능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는 낌새만 은근히 줘도 대부분 나가던데... 암만해도 법은 멀어요

숨은아이 2004-11-17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 : 퍼가주셔서 감사. ^^

자명한 산책님 : 이동이 비교적 자유로운 직종과 그렇지 않은 직종 간의 차이는 있겠지요.

따우님 : 권력의 이름으로 하는 "보호"는 "감금"이기 쉬운가 봐요. 인디언보호구역도 그랬고... 이번엔 감금이 아니라 삭풍 부는 광야로 추방?

릴케 현상 2004-11-18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이동이 자유롭다는 뜻이 돼버렸나^^

숨은아이 2004-11-18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제가 잘못 이해했나요? (^^)a
 
전체주의의 시대경험
후지따 쇼오조오 지음 / 창비 / 1998년 12월
구판절판


여러가지 견해가 대립하는 과정 그 자체 속에서 생산력을 발견해내고 그것을 기뻐하는 사고방식이 생겨나지 않은 한 말살충동의 발생은 피할 수 없다.-214쪽

'제정신(sanity)'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엇일까? (중략) 체제적인 사회의 상식(!) 속에서 가장 건전하다고 생각되고 있는 것, 다시 말해서 아무런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과 비슷'하다는 것으로 자신의 '건전함'을 자타에게 납득시키려 하는 예의 '동조' 경향의 정신적 이상성(異常性)을 도려내려는 범주인 것이다. 이 '동조' 경향이야말로 실은 개개인이 자신의 내면적 규범을 상실해버린 정신적 공허에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조'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인간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조차 많이 있다.-229쪽

[헤이민신문]은 1903년에 (중략) 왈, "평민, 신(新)평민, 그들은 권세에 의지하지 않고 황금에 의지하지 않으며 문벌에 의지하지 않고 오직 인간으로서 서며 오로지 사회의 한 사람으로서 서는, 우리 동포 중에서 가장 신성한 자일러라"고.-235쪽

보편적인 가치를 목표로 하는 '운동'에서의 '승리'란 권력관계에서의 승리와는 전혀 다르다. '적'을 타도하여 '권력'을 획득하는 것 자체가 운동의 승리는 아니다. '이 세상'의 권력관계에서는 설령 '패배'하더라도 운동이 목표하는 가치가 사회 속에 스며들어 육화(肉化)되어간다면 그거야말로 운동의 승리인 것이다. 그 경우에는 권력까지도 이 가치체계가 구속하거나 지배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운동의 승리'가 우리 자신의 현세적 승리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보편적 가치의, 앞에서 언급한 삼투와 사회에의 구조화를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들' 자신은 그것을 섬기려 하는 자들이다. 이와같은, 운동의 '승리관'과 현세적 '승리관'의 결정적인 차이는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생각된다.-260쪽

말할 수 없이 느린 걸음걸이, 그리고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끈질김, 백년도 넘는 세월 동안 결코 멈추지 않은 그 걸음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힘,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풍설을 견디는' 쓰라린 고통을 딛고 살아온 그 엄숙한 정진, 그리고 그 유연한 참을성. 외면적으로 높게 우뚝 선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그 '감추어진 차원'에서의 실질적 특징은 높은 기품으로 우리들 앞에 나타나는 것이다.-"소나무에게 들어라"에서-3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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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의 시대경험
후지따 쇼오조오 지음 / 창비 / 1998년 12월
구판절판


'비행'이라는 말 (중략) '행위가 아니'라니 이건 언어도단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183쪽

현대의 '우등생'의 대부분은 미리 정해진 규격에 따라 생산되고 있는 제품에 불과하므로, 운명을 선택하는 결단이 있느냐 없느냐라는 의미에서는 극히 '무의지'적이고 수동적인 반(半)제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제도적으로 주어져 있는 기성 목표를 향해 노는 것도 잊고 전력 질주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능동적이지만 이같은 '자기 제품화를 향한 능동성'은 의지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183쪽

의지란 본래는 '운명을 향한 의지'이며 운명과 만나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려 하는 정신태도입니다. 받아들인다는 이야기는 그 만남이 가져다주는 시련을 뛰어넘어 살아가려고 하는 책임과 '생에 대한 의지'를 그 속에 포함하고 있습니다.-183쪽

'비행'이라 하여 제도적으로 공인된 '행위'로부터 배제되어 있는 일을 하고 있는 소년들은, 정도의 차이나 질의 차이 혹은 방향의 차이를 각기 지니고는 있지만 아무튼 운명으로의 의지를 맹아적인 형태로나마 지니고 있습니다. '행위가 아니다'가 아니라 그쪽이 오히려 '행위'인 것입니다.-183쪽

인간의 기본적 덕성(우애라든가 다른 사람을 감싸는 의협심이라든가 사람이나 사물과의 상호성 등의 덕성)을 유린하는 자, 그는 인류 세계의 '범죄자'(그것은 반드시 법률위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로서 '비행'이나 '불량'과 함께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친구를 끌어내리기에 열심이거나 선생님 마음에 들기 위해 친구의 사소한 규칙위반(이것은 행위입니다)을 밀고하는 '우등생'들 쪽에, 인간의 기본적 덕성을 유린하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입니다.-183-184쪽

경험이란 대량생산품과 같이 미리 정해진 틀에 따라 일방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물과의 조우를 통해서 사물의 저항을 받으면서 그것과 상호교섭을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규칙으로 정해진 고정 질서의 궤도로부터 벗어난 '예기치 못한 일'에 직면하여 '숨겨진 경이'를 발견하는 것이 바로 경험의 정신적 내용입니다. 그것은 고정궤도만을 준수하는 '우량제품' 쪽에서 보면 '불량'의 경험입니다.-202쪽

진정한 정신적 용기란, 그것이 정신인 이상 조직적 전투행위에 참가하여 힘껏 용감함을 보여주는 경우보다는 오히려 단체권력의 압박과 숫자를 등에 업은 편승적 비난에 대항하여 과감히 거기서 이탈하기로 결심하는 경우에 종종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2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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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4-12-12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좋지요. '비판적 지식인'이란 말을 아무한테나 붙일 수 있는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책.

숨은아이 2004-12-12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님도 이 책 읽으셨어요? 반가워요!

딸기 2004-12-19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고 너무 감동해서 독후감을 못 쓴 책입니다 ^^
 
전체주의의 시대경험
후지따 쇼오조오 지음 / 창비 / 1998년 12월
구판절판


'대동아전쟁'에 관해 천황은 스스로 책임지려고도 하지 않았고 또 그가 실질적으로 전쟁의 결단을 내렸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으며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1945년 8월에 '신'이었던 자신이 4개월 남짓 사이에 갑자기 '사람'으로 바뀌었어도 그러한 엄청난 대전향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길 수 있는 사람은, '시대와 사람'으로부터 유신 때 이상으로 '비웃음'을 받아도 아무런 할 말이 없지 않겠는가.-128쪽

모든 문제를 역사적 인과관계만으로 풀려고 하는 자는 행위당사자의 행위책임을 자타(自他)에 대하여 객관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불가능한 자이다.-130쪽

조지 샌섬(George B. Sansom) 경이 본 바와 같이 "고대 이래로 천황 주위에는 신비의 후광이 비치고 있다고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만큼 그 이름뿐인 지배자를 거칠게 다룬 국민은 없다"(William MacMahon Ball, Japan-enemy or ally에서 인용). 그리고 자국의 군주를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거칠게 다룬 그 '국민'들이 바로 '국민'을 사칭한 '근왕주의자' 즉 지금의 우익사상과 동일 계열의 사상을 내걸고 있는 사람들이다.-131-132쪽

천황제의 권위를 떨어뜨린 것은 결코 좌익이 아니다. 좌익은 오히려 위약한 천황에 대해서까지 정면에서 전쟁 책임을 추궁하고 천황제를 정면에서 적으로 간주함으로써, 거꾸로 천황과 천황제를 '자기의 적으로서 어울리는' 실력자의 위치로까지 끌어올린 것이다.-132쪽

천황에게 '시미(施米)'를 먹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일은 퇴위에 의해서라도 막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 천황주의자가 일본에 있는가. '국민의 의협'을 천황에게 집중시킬 방책을 세운 자는 있는가.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오로지 천황제가 명목적으로 '옹호'되기만 하면 좋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아닌가. 천황이 계속해서 그 자리에 앉아 있음으로써 '취생몽사' 상태에 빠지는 것을 우려한 천황주의자는 있는가. 그리고 그 경우 천황이 받게 될 심한 '멸시'를 두려움을 가지고 예상하여 '명예롭게 퇴위할 것'을 권고하려고 했던 자는 있는가. 천황이 스스로의 의사로 전쟁에 책임을 지고 퇴위하는 것은 오히려 '제왕에 어울리는' 존엄한 행위라고 생각했던 천황주의자는 있는가. 아니, 그 무엇보다도 현존하는 천황의 행위에 대해 '철저한 혐오'를 가지고 있었던 천황주의자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있는가.-1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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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의 시대경험
후지따 쇼오조오 지음 / 창비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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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이야말로 건전한 정신을 낳는다.-87쪽

소수의 존중이란 본래 생활양식 및 그밖의 모든 것을 포함한 존재로서의 존중이다. ......(* "소수의 존중"은 "소수에 대한 존중"이란 뜻이겠지. - 숨은아이.)-97쪽

일본 국내에서 말하자면, 그 대표는 재일 한국 조선인이며, 그 다음으로는 일본의 역사적 책임이 걸린 것으로, 극소수가 되어버린 아이누 사람들이며 그 다음으로는 외국인 노동자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을, 오늘날의 '풀뿌리 배타주의'는 바깥에 쫓아내버리는 것이 아니라 밑으로 처박아넣는다. 최하층 노동의 장으로 밀어넣고 거기에 벽을 쌓으려 하는 것이다.-97쪽

일본에 온 인디오 사람과 만나고 나서 정말 깊은 감동을 받았던 적이 있다. "당신들이 풍요롭게 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아마존의 숲속에서 풍요롭게 살아왔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중략) 이야기중에 "숲은 우리의 대학이다. 우리는 숲으로부터 모든 것을 배웠다. 숲은 우리의 병원이다. 숲에서 우리는 병을 고친다. 숲은 우리의 약국이다. 숲이 우리에게 약을 제공한다. 숲은 우리의 거주지다. 다시 말하면 숲은 우리의 전부다. 우리들 자신은 숲에게 전부가 아니지만 숲은 우리들에게 전부다"라고 말했다. 감동적이었다.-99쪽

첫째, 대지나 물 그 어느것도 인간만의 소유가 아니다. 둘째, 인간 내부의 문제에 한정해서 말하더라도 여러 민족들의 생태적 지위에 따른 고유한 생활양식을 존중하는 것이 현대적인 독립정신의 바람직한 존재형태로 생각된다.-101쪽

사람으로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시간이 걸려서 생물이 생겨났으며 그 한 구석에 인간이 있다는 감각, 그것이 중요하다.-1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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