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의 시대경험
후지따 쇼오조오 지음 / 창비 / 1998년 12월
구판절판


여러가지 견해가 대립하는 과정 그 자체 속에서 생산력을 발견해내고 그것을 기뻐하는 사고방식이 생겨나지 않은 한 말살충동의 발생은 피할 수 없다.-214쪽

'제정신(sanity)'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엇일까? (중략) 체제적인 사회의 상식(!) 속에서 가장 건전하다고 생각되고 있는 것, 다시 말해서 아무런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과 비슷'하다는 것으로 자신의 '건전함'을 자타에게 납득시키려 하는 예의 '동조' 경향의 정신적 이상성(異常性)을 도려내려는 범주인 것이다. 이 '동조' 경향이야말로 실은 개개인이 자신의 내면적 규범을 상실해버린 정신적 공허에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조'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인간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조차 많이 있다.-229쪽

[헤이민신문]은 1903년에 (중략) 왈, "평민, 신(新)평민, 그들은 권세에 의지하지 않고 황금에 의지하지 않으며 문벌에 의지하지 않고 오직 인간으로서 서며 오로지 사회의 한 사람으로서 서는, 우리 동포 중에서 가장 신성한 자일러라"고.-235쪽

보편적인 가치를 목표로 하는 '운동'에서의 '승리'란 권력관계에서의 승리와는 전혀 다르다. '적'을 타도하여 '권력'을 획득하는 것 자체가 운동의 승리는 아니다. '이 세상'의 권력관계에서는 설령 '패배'하더라도 운동이 목표하는 가치가 사회 속에 스며들어 육화(肉化)되어간다면 그거야말로 운동의 승리인 것이다. 그 경우에는 권력까지도 이 가치체계가 구속하거나 지배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운동의 승리'가 우리 자신의 현세적 승리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보편적 가치의, 앞에서 언급한 삼투와 사회에의 구조화를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들' 자신은 그것을 섬기려 하는 자들이다. 이와같은, 운동의 '승리관'과 현세적 '승리관'의 결정적인 차이는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생각된다.-260쪽

말할 수 없이 느린 걸음걸이, 그리고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끈질김, 백년도 넘는 세월 동안 결코 멈추지 않은 그 걸음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힘,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풍설을 견디는' 쓰라린 고통을 딛고 살아온 그 엄숙한 정진, 그리고 그 유연한 참을성. 외면적으로 높게 우뚝 선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그 '감추어진 차원'에서의 실질적 특징은 높은 기품으로 우리들 앞에 나타나는 것이다.-"소나무에게 들어라"에서-3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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