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의 시대경험
후지따 쇼오조오 지음 / 창비 / 1998년 12월
구판절판


'대동아전쟁'에 관해 천황은 스스로 책임지려고도 하지 않았고 또 그가 실질적으로 전쟁의 결단을 내렸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으며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1945년 8월에 '신'이었던 자신이 4개월 남짓 사이에 갑자기 '사람'으로 바뀌었어도 그러한 엄청난 대전향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길 수 있는 사람은, '시대와 사람'으로부터 유신 때 이상으로 '비웃음'을 받아도 아무런 할 말이 없지 않겠는가.-128쪽

모든 문제를 역사적 인과관계만으로 풀려고 하는 자는 행위당사자의 행위책임을 자타(自他)에 대하여 객관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불가능한 자이다.-130쪽

조지 샌섬(George B. Sansom) 경이 본 바와 같이 "고대 이래로 천황 주위에는 신비의 후광이 비치고 있다고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만큼 그 이름뿐인 지배자를 거칠게 다룬 국민은 없다"(William MacMahon Ball, Japan-enemy or ally에서 인용). 그리고 자국의 군주를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거칠게 다룬 그 '국민'들이 바로 '국민'을 사칭한 '근왕주의자' 즉 지금의 우익사상과 동일 계열의 사상을 내걸고 있는 사람들이다.-131-132쪽

천황제의 권위를 떨어뜨린 것은 결코 좌익이 아니다. 좌익은 오히려 위약한 천황에 대해서까지 정면에서 전쟁 책임을 추궁하고 천황제를 정면에서 적으로 간주함으로써, 거꾸로 천황과 천황제를 '자기의 적으로서 어울리는' 실력자의 위치로까지 끌어올린 것이다.-132쪽

천황에게 '시미(施米)'를 먹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일은 퇴위에 의해서라도 막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 천황주의자가 일본에 있는가. '국민의 의협'을 천황에게 집중시킬 방책을 세운 자는 있는가.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오로지 천황제가 명목적으로 '옹호'되기만 하면 좋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아닌가. 천황이 계속해서 그 자리에 앉아 있음으로써 '취생몽사' 상태에 빠지는 것을 우려한 천황주의자는 있는가. 그리고 그 경우 천황이 받게 될 심한 '멸시'를 두려움을 가지고 예상하여 '명예롭게 퇴위할 것'을 권고하려고 했던 자는 있는가. 천황이 스스로의 의사로 전쟁에 책임을 지고 퇴위하는 것은 오히려 '제왕에 어울리는' 존엄한 행위라고 생각했던 천황주의자는 있는가. 아니, 그 무엇보다도 현존하는 천황의 행위에 대해 '철저한 혐오'를 가지고 있었던 천황주의자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있는가.-1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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