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친 돼지만이 살아남았다 - 축산업에서 공개구조 된 돼지 새벽이 이야기
향기.은영.섬나리 지음 / 호밀밭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인간에서, 다시 동물이 되어 갔다. (205)

혁명은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인정하는 것이다. (177)


우리 사회가 얼마나 동물 혐오로 똘똘 뭉쳐진 사회인지 <훔친 돼지만이 살아남았다>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리 사회는 효율적으로 '고기'를 먹기 위해 차별을 발명했다. '짐승 취급'하는 존재들, 비인간 동물은 참혹하게 도살되고 끔찍하게 대상화된다. 동물을 가두고 학대하는 사회가 어떻게 인간의 존엄성을 말할 수 있을까? 생명이 존엄하지 않은데, 인간만이 존엄할 수 있을까?


비질(vigil), 공개구조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비질은 육식주의 사회가 가리는 피해자들을 만나기 위해 농장, 도살장, 수산시장 등의 현장에 찾아가 폭력적인 현장 속 진실의 증인이 되는 활동이다. 비질은 서울 애니멀세이브에서 기획해 진행한다.


미국은 수많은 공개구조와 정책적인 압박을 통해 캘리포니아 버클리 시의회가 '구조할 권리'를 지원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국외에서 공개구조와 관련된 재판들이 진행중이다. DxE의 공동 설립자 웨인은 중범죄로 60년 형을 기소받고 맹렬하게 싸워나가고 있다고 한다. 활동가들은 절도죄의 재판을 기회 삼아 폭력적인 현실을 폭로하는 기회로 삼는다. 감금과 학대로 돈을 벌어들이는 축산업의 현실을 고발하고 '가축'이기 때문에 동물보호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새벽이가 법의 영역에서 구조되지 못하고 불법의 영역에서 공개구조 되어야 하는 현실을 폭로한다. 


우리 사회는 육식이 자연스러운 욕구라고 강요한다. 절대 자연스럽지 않는 폭력과 감금의 체계에서 고기를 먹어야 할까? 그렇게 인간은 욕구를 절제할 수 없는 건가? 


학살을 당연시하는 체제가 합법인가? 합법이 곧 정의인가? 구조가 불법인가? 

한국은 1인당 육류 소비량 세계 14위, 1인당 수산물 소비량은 세계 1위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당연히 채식을 하고, 육류소비를 반대하는 것이다. DxE 후원도 하고, 비질도 참여하고, 공개구조를 응원하는 것일 것이다.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반려동물 중에 돼지도 포함되었으면 좋겠다. 반려돼지나 반려 소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정말 살기 좋은 사회가 아닐까? 학교에서도 반려돼지를 한 마리씩 키우면 어떨까? 


[밑줄]


구조할 수 없는 구조, 나는 다름 아닌 가해자 대오에 서 있었다. 세월호 참사와 나, 나와 도살장, 그리고 나와 새벽이, 노을이, 별이. 이 만남과 연결들은 내가 동물 해방 운동을 시작한 계기이기도 하다.(211)


수십 명의 동물을 빽빽하게 가둔 2층 트럭도 있었고, 엄마돼지인지 덩치가 아주 큰 동물이 홀로 외롭게 갇혀 있는 작은 트럭도 지나갔다. 비명은 계속 들려왔고 곧 사이렌이 반짞이며 경찰차가 도착했다. 그러나 비명이 난무하는 현장 속 '피해자'를 구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비명을 들은 우리가 가해자 취급을 받고 있었다. 

분명 그곳엔 고통에 몸부림치는 절규가 난무했다. 그들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자신이 맡은 일에 충실하게 복무하고 있었다. 내가, 우리가 지금 듣고 있는 것이 가짜가 아닌데....심지어 당신들의 귀에도 들릴 텐데. 직원, 경찰, 식당 주인 모두가 우리에게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자신이 맡은 일에 충실하게 복무하고 있었다.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순간 떠오르는 하나의 명령, "가만히 있으라", 이 사회가 어떻게 멀쩡히 굴러갈 수 있었던 건지, 순진한 내가 5년 만에 답을 얻는 순간이었다. 비명은 그렇게 은폐되고 있었다. (208)


노을이가 죽은 이유를 '명확히' 알게 되었다. 슬프고 절망적인 현실을 마주하며 우리는 깨달은 것이다. 나와 당신이 그렇듯 아픈 이들은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아픈 이가 치료받는 것, 이것은 상식이다. 반면 아프다는 이유로 죽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폭력이다. 그러나 축산업의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판단 아래에서는 이 상식이 모두 헛소리가 되었다. "약한 자는 죽어라." 노을이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폭력적인 사회 가장 밑바닥에서 숨죽여 떨고 있었다. 비인간 동물들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굴러가는 사회를 만들고 묵인하는 우리 모두가 이들을 죽이고 있었다. 아픈 이들을 살리는 병원이 있는 것이 아닌, 도살 전, 즉 '죽이기 전까지만 겨우 죽지 않게' 관리하는 수의학만이 있는 사회, 축산업이라는 극단적인 학대를 용납하는 우리 사회가 '노을이들'을 죽이고 있었다. 또한 노을이의 죽음은 생추어리의 시작이기도 했다. (187)


서울 서초동 한돈자조금관리위원회, 양재 시민의 숲,
마치 별이가 응답하듯 하늘에서 비가 뚝뚝 내렸다. 우리의 눈에서도 눈물이 비처럼 흘렀다.
2017년 한 해 돈사 화재 발생 건수는 189건

도살장의 계류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내게 토로하듯 말했다. 육질을 위해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도살공정의 속도를 맞추기 위해서는 돼지들을 끊임없이 퍽퍽 때려야 한다. 차라리 동물학대라고 하여 쓰지 말라고 하는 전기봉이 빠르다. 지금은 내 팔이 떨어질 정도로 돼지를 패야 한다. 그래도 도살장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할 때는 갈고리를 입천장에 걸어 돼지를 있는 힘껏 끌어당겨야 하는데, 갈고리가 살을 뚫고 나올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생명의 존엄, 그런 게 내 안에서 사라지는 게 느껴진다. 이제는 운전을 하다가도 화나게 하는 운전자가 있으면, 저 새끼, 돼지 패듯이 패버려? 하는 충동이 자꾸 든다고. - P16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곱 번째 노란 벤치 - 2021년 제27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일공일삼 34
은영 지음, 메 그림 / 비룡소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후는 외롭다. 유일하게 자신을 돌봤던 할머니는 갑자기 작년에 돌아가셨다. 

아빠는 외국에 계시고 엄마는 일 때문에 집에 거의 없다.

할머니와 늘 갔던 공원에 일곱 번째 노란 벤치를 찾아간다. 

우연히 얼굴에 까만 털이 있는 개를 만나게 된다. 해적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벤치에서 해나라는 여자아이도 만나게 된다. 해나는 중학교 형아들로부터 지후를 도와준다. 

지후는 거의 매일 벤치에서 해나와 해적을 만난다. 그리고 공원을 한 바퀴 도는 치와와 아줌마, 검정 모자 아저씨, 할머니를 알게 된다. 

어느 날 해적이 사실은 봉수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할아버지가 봉수를 끌고 온 것이다. 실제로 할아버지도 버려진 봉수를 구하게 된 것이다. 친동생의 이름을 따 봉수라고 이름 지어줬다.

할아버지는 지후에게 봉수를 봐달라고 부탁한다. 그 때 지나가던 남자가 봉수를 뺐어가려 한다. 알고보니 개도둑이다. 지후는 온 몸을 다해 봉수를 지키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그러자 공원에서 지나가던 사람들 - 검정 모자 아저씨, 치와와 아줌마, 유모차 할머니, 18층 아줌마(해나 담임), 해나 -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돕는다. 경찰을 부르고 남자는 끌려간다. 


지후야, 지후야, 라지후.

누군가가 예전부터 할머니와 나를 보고 있었다니....

할머니와 나는 여기 일곱 번째 노란 벤치에 매일같이 앉아 있었다. 학교 갔다 돌아오는 길에도, 시장을 갔다 오는 길에도, 아무 할 일이 없을 때에도 우리는 여기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떨다가 꾸벅잠을 자기도 했다.


근데 넌 참 멋진데.
내 말을 듣자 해나는 펄쩍 뛰어오르듯 소리쳤다.
와아! 우리 선생님도 너처럼 말했어! 내가 멋지다고!

근데, 그 때 형이 내 이름을 불러 줘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라요. 지후야, 안녕. 이라고 말해 주는 순간 내 편이 생긴 것 같았거든요. 안 그랬으면 난 무서워서 울고만 있었을 거예요.
내 말에 형은 웃을 듯 말 듯, 한쪽 입꼬리를 피식 올렸다.
너 그때 정말 용감했어.
근데, 제 이름을 어떻게 알았어요? 지후야, 안녕. 할 때 깜짝 놀랐어요.
형은 망설이는 눈치였다. 말할까 말까 하다가 입을 열었다.
예전에...할머니랑 너랑 맨날 여기에 앉아 있었잖아. 그 때 너희 할머니가 ‘지후야, 지후야, 라지후. 하며 노래 부르듯 너를 불러 대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니?
아....
눈물이 핑 돌았다.
‘지후야, 지후야, 라지후.‘
할머니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노래 부르듯 내 이름을 불러 주었다. - P15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담이에게
조영훈 지음 / 강한별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담이가 궁금하다. 

작가는 이 책을 ‘담이’들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했다. 

이 세상 모든 ‘누군가의 담이에게’ 건네는 사랑이다.

작가에게 담이는 어떤 존재였을까?

이렇게 책 한 권을 쓸 정도로 강한 인상을 남긴 담이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삶은 무거우면서도

또 네 생각만 하면 다 던져버릴 수 있을 것처럼 하염없이 가볍다.

너와 함께라면 짊어질 수 있는 무게 같아 

남기는 짦은 편지 하나. (71)


담아, 잘 지냈지. 

매일 궁금한 것은 네 안부라

매번 첫 문장에는 안부를 물어. 

가끔 생각해 둔 말보다 

마음속에 있던 말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듯. (133쪽)


작가는 참 감상적인 사람이다. 

누군가를 이렇게 그리워하고, 찾고, 생각하고, 부른다.

언젠가는 이 감정도 무뎌질 것이기에 이렇게 책으로 간직할 수 있어 다행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깊은 밤 필통 안에서 - 제10회 비룡소 문학상 수상작 난 책읽기가 좋아
길상효 지음, 심보영 그림 / 비룡소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학년 아이들이 정말 좋아할 것 같다.

필통 속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연필과 지우개도 아이들의 마음과 연결이 되어 화날 수도 있고 행복할 수도 있다.

지우개 이야기가 가장 감동적이었다.

겨울 바다를 생각하며 눈물 흘리는 지우개. "2학년이 3학년 문제를 틀리는 건 당연한데, 내가 왜 그랬을까?"


담이가 처음으로 일기 마지막 문장에 일기장이 곽 차게 대문짝만한 글씨로 "정말 신났다."를 쓴 대목도 뭉클했다.


아이는 역시 놀 때가 가장 행복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성 서사라는 측면에서 <밝은 밤>은 <파친코>와 유사하다. 

주인공 지연은 이혼 후 희령이라는 바닷 마을로 이사한다. 희령은 10살 때 할머니가 계셨던 곳이다. 

좋은 추억이 있는 희령은 지연이 이혼하고 선택한 도시다. 하지만 엄마(미선)와 할머니(영옥)는 사이가 좋지 않아 지연의 결혼식에도 할머니는 초대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희령으로 내려갈 때도 지연은 할머니에게 연락할 생각을 못했다.

우연히 할머니와 같은 아파트에 살게 된 지연. 몇번 할머니와 함께 밥을 먹으면서 할머니의 어렸을 적 이야기, 증조모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증조모는 백정의 딸이었다.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잘 모르는 남자와 결혼했다. 증조부는 천주교를 믿었고 신분제 사회를 믿지 않았지만 영웅심리가 있어서 자신이 구원한 증조모에 대한 우월의식을 갖고 살았다.

할머니는 딸이라는 이유로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심지어 아버지는 결혼한 것을 알고도 할머니를 할아버지와 결혼시켰다.

나중에 본처가 찾아오자 할아버지는 떠났고, 할머니는 자신과 본처의 호적에 올려졌 다.

할머니와 지연의 어머니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자세히 얘기하지 않는다. 

이부분이 조금 답답하다. 다른 관계는 상세히 적으면서 할머니와 엄마의 관계가 모호하다.

할머니와 옛날 이야기를 들으며 서서히 마음을 치유하는 지연. 

어렸을 때 죽은 언니 지우도 언급되지만, 이 역시 두루뭉실 넘어간다. 


4대째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누굴까?

아마 증조모와 새비 아주머니가 아닐까? 신분을 넘어서 우정. 몸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한시도 서로의 존재를 잊지 않고 위안을 얻었다. 

핏줄보다 자신이 선택한 가족이 왜 중요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새비 아주머니, 아저씨, 희자가 어찌보면 영옥이 동경하는 가족의 모습 같다.


<밝은 밤>에서 지연이 할머니와 희자를 이어주는 걸로 마무리짓는다.

오랜 세월 서로 떨어져 살았지만 그리워하며 서로 잊지 못하는 관계. 

지연과 할머니도 뒤늦게 이어져서 다행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