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유산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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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영. 이제는 이완용만큼이나 알려진 친일파다. 

특히 벽수산장의 주인으로 이완용보다 더 탐욕스러웠던 사람. 

을사늑약 당시 순정효황후의 치마를 들켜 인장을 빼앗은 인물. 

1966년 식목일 화제로 크게 휘손되었다가 1973년 철거되었다. 


소설은 작가의 어린시절 사진에서 비롯된다. 할머니와 둘이 찍은 사진의 배경에는 벽수산장이 떡하니 찍혀있다. 마흔이 넘어서야 그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 보게 되었다. 평생 옥인동에 살았던 작가에게는 흥미로운 소재였다. 


벽수산장은 알았지만 그 건물이 언커크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몰랐다. 이렇게 멀지 않은 과거임에도 현재 모르는 게 너무 많다. 60년대를 배경으로, 이해동이라는 언커크 위원장의 개인 통역사를 주인공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윤덕영의 막내 딸 윤원섭이 감옥에서 나오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뻔뻔한 친일파의 후손. 그녀는 이해동의 상사인 애커넌 씨를 꼬드겨 다시 벽수산장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 


독립운동 하다 죽은 이해동의 아버지 때문에, 해동은 윤원섭의 통역을 맡으면서 자괴감이 든다. 

예전에 나도 통역이라는 직업을 고려한 적이 있는데, 바로 해동처럼 내가 이상한 사람의 말을 통역해야 한다면 그 고충은 심각할 것 같다. (트럼프의 통역사는 극한 직업이다)


해동의 가정사와 현대사를 잘 버무린다. 유일하게 해동을 따뜻하게 대해줬던 고모가 돌아가시면서 천애고아라고 생각했는데, 고모가 맺어진 진형과의 인연으로 오히려 대가족이 된다는 설정이 참 훈훈하다. 


적산. 친일파의 일관된 변명과 거짓말은 뻔하다. 해방될줄 몰랐다고. 저자의 말처럼 친일파는 이익이나 명예 중 하나만 선택했어야 했다. 현재도 정치인들이 하나만 선택하지 못해 감옥을 가고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모처럼 흡입력 있으면서 편하게 읽을 수 있는 현대사 소설을 만나 기쁘다. 심윤경 작가의 다른 책들도 탐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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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6 - 전라도 하 ㅣ 만화 문화유산 답사기 6
이보현 글, 오승일 그림, 유홍준 원작, 박재동 기획.감수 / 녹색지팡이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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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하편을 보고 여행을 다녀왔다. 


동학농민혁명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고창, 정읍 선운사

섬진강의 피아골의 연곡사는 언젠가 템플스테이를 가고 싶다. 


다음달에는 담양 여행 예정인데, 그때 한국가사박물관과 소새원을 들려야겠다.

부안반도의 내소사 다녀왔는데 당산지주는 보지 못했다. 


익산의 미륵사지석탑, 김제도 다녀왔다. 10월에 있을 김제 지평선 출제도 찾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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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 나는 이렇게 본다 ㅣ 보리 한국사 3
김용심 지음 / 보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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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부터 일제강점기 형평사 운동까지. 백정에 대한 우리 사회 편견과 고정관념을 잘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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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의 딸, 용담할매 - 청산 편 ㅣ 여성동학다큐소설
고은광순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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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2012년 청산으로 귀촌했다. 도종환의 정순철 평전을 읽고 해월의 딸 최윤과 그녀의 아들 정순철을 만났다. 동학 때문에 30년 가까이 전국을 누비고, 일본에서 4년 공부한 박맹수 교수를 만났다. 

한살림도 동학에 뿌리를 뒀다. 2013년 말부터 2015년까지15명의 여성이 모여 새로운 각도에서 동학을 조명했다. 울면서 글을 썼다고 한다. 기도하면서 떠올랐던 영상이나 꿈에서 듣고 보았던 소리와 정보도 이야기 속에 넣었다. 최윤이 고문당하는 장면은 저자가 박정희 정권 시절 대학생이었던 때 당했던 그대로 적었다. 

동학의 동은 단순히 서에 대칭되는 언어가 아니라 빛, 광명, 생명을 뜻한다. 동학에 입도한 숫자는 전체 인구의 1/3~1/4이 될 정도. 4월 이후 충췅권, 8월에는 경상도 지역에서 광범위한 저항, 12개조 계율에 대해서는 일본 지식인들조차 탄복, 고부 군수 조병갑과 그의 사돈 이조판서 심상훈은 동학혁명의 처음부터 끝까지 치명적으로 관련된 철저한 기득권지킴이. 일본은 1888년 이미 조선 팔도 전체를 정확하게 측량해 만든 전도를 마련. 1889년 성능이 뛰어난 신식 무기를 자체 생산하여 무력을 확보한 뒤에는 조선과 중국을 집어삼키기 위해 노린 것. 제19대대 대대장 동학당정토대 총지휘관 미나미 고시로는 메이지유신에 반대한 일본 민중들을 살육 진압했던 경험이 풍부했음. 일본 천황이 대본영을 히로시마로 옮겨 군부와 정부의 직접 지시로 조선 동학군 탄압. 동학 관련 문서를 악착같이 수집하여 일본으로 가져감. 일본군 3천 명이 병사 1인당 죽창을 든 농민군 200~300명 대적할 수 있는 무력으로 두 달간 3만~5만 명 대량 학살. 살아남은 동학도들이 31운동의 주역이 됨. 


한반도 분단의 시발점은 19세기 말, 무력으로 조선을 강점한 일본의 탐욕. 

전쟁 때문에 무기 공장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무기 공장으로 이익을 보는 자들 때문에 전쟁이 생긴다. 소설을 쓰고 나서 나는 '평화 어머니'활동을 시작했다. (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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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쇼인 시대를 반역하다 - 일본 근현대 정신의 뿌리, 요시다 쇼인과 쇼카손주쿠의 학생들
김세진 지음 / 호밀밭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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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요시다 쇼인의 인생, 요시다 쇼인의 학교 쇼카손주쿠의 학생들,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는 일들을 잘 정리하고 있다. 2018년에 출간되었는데, 그 전에는 요시다 쇼인에 대한 책이 한 권도 없었다고 한다. 지금은 여러 권 있다. 물론 더 많은 연구가 있어야할 것 같다. 


요시다 쇼인(1830-1859)은 서른에 죽었다. 조슈번 하기에서 태어났고 어렸을 때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똑똑했다. 젊은 시절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며 지식인들을 만나 가르침을 받았다. 허가증 없이 무단으로 동북지방을 탐방했고, 사무라이 신분을 박탈 당하고도 조슈번 주에게 다양한 건의사항을 올렸고, 미국 페리함대(1853년)에 접근해 밀항을 시도했다. 그 죄로 감옥에 갇혔다. 


쇼인은 존왕양이 운동과 에도막부 타도 운동의 정신적 지주였다. 천황은 종교제사를 수행하는 존재였으나 메이지유신을 기점으로 신격화되어 절대권력을 갖게 됐다. 천황의 존재근거는 8세기경 만들어진 일본의 서적인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담겨있다.

1192년 권력을 쥔 사무라이 집단은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천황에게 권위를 부여하고 이를 활용했다. 사무라이 집단의 논리는  '일본은 신이 만들고, 신이 다스리는 나라다. 그 신(천황)을 대신해 사무라이 집단이 정치를 담당한다.'

사무라이 집단인 에도막부는 개항을 요구하는 서양 세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일본의 국체를 지키자는 내용의 미토학은, 젊은 지사들의 목소리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 나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에도막부를 없애야한다고 주장했다.

쇼인은 250년 넘게 안정적으로 이어져 온 사무라이 체제를 완전히 부정했다. 

쇼인의 한반도 정벌론, 소위 말하는 정한론은 고사기를 근거로 한다. 고사기는 정한론의 원형이다. 일본 역사학자 대다수는 고사기는 사실적인 근거가 없는 '신화'에 불과하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일본의 우익정치세력과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에게는 사상적 기반이 되는 문헌이다. 

일본은 신의 나라다라는 선민의식을 기반으로 한다.


일본은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부르며, 시마네 현으로 편입시키고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시마네 현의 초대 현령인 사이토 에조는 쇼인의 제자, 쇼카손주쿠 학생이었다. 그는 퇴직 이후의 여생을 요시다 쇼인의 유산과 쇼카손주쿠를 보존하는 주요 인물이었다.


쇼인의 침략론, 정한론, 그리고 다케시마 개척론은 쇼카손주쿠의 학생으로 총리까지 오른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일본 군국주의의 이론이 되는 탈아론과 대동아공영론에도 영향을 주며, 일본의 지도자들이 제국주의적 통치를 발전시키는데 밑거름이 됐다. 그가 조선, 만주, 훗카이도, 캄차카(러시아), 오키나와, 대만, 필리핀, 호주에 걸쳐 그렸떤 일본의 '큰 그림'이 1940년대 태평양전쟁에서 잠시나마 완성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쇼인은 가는 곳 어디든 학교로 만들어버릴 만큼 재능과 열정이 있었다. 현대 일본은 도쿄와 하기에 있는 두 개의 쇼인신사에서 쇼인을 숭배한다. 감옥의 죄수와 간수들까지도 감화시키고 교육했던 쇼인을 학문의 신으로 모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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