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하다는 기분이 들 때의 상황이 나와 너무 다른 점에 대하여

그리고 공포도,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맴돌았다. 이 세계에 내 자리가남아 있겠어? 내가 말하고 싶은 것, 쓰거나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루리야가 이미 다 보았고 말했고 썼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나는 너무 분해 그 책을 반으로 찢고 말았다(결국도서관 반납용으로 한 부, 내 것으로 한 부 해서 새 책으로 두 권을 사야 했다).

한번은 신경학과에서 시험을 쳐서 학생들 점수를 매겨달라고 했다.
나는 평가서를 제출하면서 전원 A를 줬다. 학과장이 분개해서 물었다.
"어떻게 이 학생들 전부 A를 받을 수 있습니까? 이게 무슨 애들 장난인 줄 알아요?"
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장난이 아니라고, 개별 학생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그 학생의 뛰어난 점이 보였을 뿐이고, 내가 모두에게 A를 준 것은 무슨 얼치기 평등주의를 실현한 것이 아니라 각 학생고유의 두드러지는 점에 점수를 준 것이라고, 나는 어떤 학생이건수나 시험 성적으로 단정 지을 수 없다고 느꼈다. 어떤 환자는 그렇게할 수 없듯이. 그 학생의 다양한 면면을 접해보지 않은 내가 어떻게 평가를 내릴 수 있겠는가? 그들의 공감 능력과 배려심, 책임감과 판단력같은 점수를 매길 수 없는 자질은 또 무엇으로 평가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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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엇보다도 갖고 싶은 책이 영어사전인 의학도와 수학에 생사가 달린 인간에 대하여

12권짜리 《옥스퍼드 영어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을 구입했다.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그 무엇보다 갖고 싶었던 책이었다. 나는 의학부 시절 내내 이 사전을 통독했고, 지금까지도 이따금씩 책꽂이에서 한 권을 뽑아들고 잠자리로 가곤 한다.

우리는 과학은 발견이고 예술은 발명이라 생각하지만, 왠지는 몰라도 불가사의하게 과학과 예술 둘 다인, 수학이라는 ‘제3의 세계‘가 있지 않은가? 수(예컨대 소수素數)는 플라톤의 초시간적 세계에 존재하는것인가? 아니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것처럼 발명되었는가? 파이 같은 무리수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또는 -2의 제곱근 같은수虛數는? 이런 질문들이 내게는 결실이 없어도 그만인 연습이었지만칼먼에게는 거의 생사가 걸린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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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죽도록 상상해 온 ‘여자’가 ‘어머니였다. 향수에 젖은 환상으로 우리 삶의 명분을 바라보는 이러한 현상을 재조율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정작 우리부터가 어머니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온갖 활개 치는 환상을품고 있었으며, 한술 더 떠 그에 못 미치거나 실망을 주고싶지 않다는 욕망을 저주처럼 달고 있었다. 사회 구조가상상하고 정치화한 ‘어머니‘는 망상임을 미처 납득하지 못했던 것이다. 세상은 어머니보다 이 망상을 더 사랑했다. 그런데도 우린 이 망상을 만천하에 까발리는 것에 죄책감을느꼈으니, 이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우리 아이들은 물론이요 우리 스스로를 위해서도 그간 발품 팔며 자력으로 마련해 온 틈새 영역이 자칫하다가 흙 묻은 우리 운동화 주위로 무너져 내리면 어쩌나 염려한 까닭이었다

사랑과 관계된 만사가 그렇듯 아이들은 우리에게 헤아릴 수 없을 행복에 더해 그에 못잖은 불행을 안겨 주었는데, 그렇대도 21세기 ‘신가부장제’만큼 우리를 비참한 수렁에 몰아넣지는 않았다. 신가부장제는 우리에게 수동적이되 야심 찰 것을, 모성적이되 성적 활력이 넘칠 것을, 자기희생적이되 충족을 알 것을 요구했다. 즉 경제와 가정 영역에서두루두루 멸시받으며 사는 와중에도 우리는 ‘강인한 현대여성‘이어야 했다. 이렇다 보니 만사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게 일상사였지만, 정작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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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책임을 질 수 없는 대상에게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책임감은 애초부터 그걸 소유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상처라는 게, 세월이 흐르면 그걸 준사람뿐만이 아니라 받은 사람의 책임도 되더라. 누구 때문이든결국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건 나니까, 내게는 누가 주었든 그 상처를 딛고 내 삶을 건강하게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일부 개인적인 문제‘에 한한 것이고 부모 자식간이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세상의 어떤 상처들은 끝내피해자의 몫으로 남아서는 안 되는 게 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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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뇌가 하는 행동 중 정말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겠지만 그건 단지 진화의 결과일 뿐이다. 그리고 대개는 그렇게 행동하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 예컨대 때로는 조금 불안한 것이 유익할 때가 있다. 뭔가 어리석은 짓을 할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때로는 죄의식을 느끼는 것이 좋다. 적어도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입힐 가능성이 줄어드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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