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송태욱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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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가끔 지루하지만 중간에 끊을 수 없는 매력이 있고 끝까지 본 다음에는 아아 보길 잘했다 하는 다큐멘터리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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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하고 태평한 사람

그저 들어주기만 하는 귀

피아노와 오늘 자신의 상태

문학은 대학에서 배우는 게 아니야

바큇살의 발명

아마도 눈앞의 사물이 막혀 괴어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망설일 시간이 있으면 우선 움직이고, 해보고, 실패하면다시 한다. 이는 슈에게 무모한 것이 아니라 무척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일이 틀림없다.

"신앙이 반드시 사람을 구한다, 잔인하지만 그런 건 없습니다. 각자에게 찾아오는 위기에 정답은 없는 것입니다. 모든 장면에서 항상 정답은 없습니다. 만약 신앙보다 먼저, 빛보다도 먼저길 잃은 사람에게 닿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연민을 느끼는 마음도 아니고, 눈물을 흘리는 눈도 아닙니다. 그저 들어주기만 하는귀입니다. 얼마나 귀를 쫑긋 세우고, 얼마나 귀를 기울일 것인가. 이걸 잘못하면 바닥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에 두레박을떨어뜨리고 맙니다. 줄도 같이 말입니다. 두 번 다시 끌어올릴수 없게 됩니다. 밑바닥에 있을 지하수도 바싹 말라버립니다. 듣기에는 간단한 것 같지만 어렵습니다. 만약 입으로 말을 해야 한다면 완전히 다 듣고 난 후 주뼛주뼛해야 하는 겁니다."

건반에 손가락을 올리고 치기 시작하면 곧 오늘 자신의 상태를 알 수 있다.
건반을 두드리는 손가락이 뻣뻣하다. 건반이 무겁다. 그럴 때는 아무리 손가락에 의식을 집중해도 소리는 가라앉고 뿌옇게흐려진다. 그런 날은 전용 천에 클리너를 묻혀 건반을 하나하나닦는다. 건반이 반들반들해지고 손가락 끝의 터치가 변한다. 그것만으로도 소리의 울림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마음이 전혀 끓어오르지 않는 날이어도 첫 번째 음부터 무척 상태가 좋은 경우가 있다. 손가락 끝에서 소리가 떠나 그대로 상승하고 울려 퍼진다. 벽이나 천장에 부딪쳐 이쪽으로 똑바로 향하여 귀를, 두개골을 두드려 울리게 한다. 피아노가 현악기이자 타악기임을 실감하는 가운데 기분이 완전히 바뀌는 일도 있다.
피아노의 상태를 파악하는 데 가장 적당한 곡은 바흐의 ‘인벤션’이다. 아무리 가볍게, 적절한 속도로 연주하려고 해도 어딘가 치기 힘든 점이 있다. 바흐는 치는 일에 취하지 말라고 말하려고 이 곡을 쓴 게 아닐까 의심하고 싶어진다.

그처럼 고집을 부려 들어갔는데도 "문학은 대학에서 배우는게 아니야" 라는 말이 골수에 스미는 결과만 낳았다. 가족 누구에게도 문학부에 실망했다고는 말하지 않은 채 삼 년이 지나고눈 깜짝할 사이 4학년이 되었다.

바뒷살은 타이어의 원운동을 추진력으로 바꾸는 방정식처럼 정연하게 방사선 모양으로 빛나고 있다. 의문의 여지 없이 아름다운 형태라고 아유미는 생각한다. 바꿧살은 전파망원경의 파라볼라 안테나보다 수천 년이나 전에 이름도 남기지 않은 누군가가 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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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이라는 장갑

"우주는 수학이라는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언어로 파악되고글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 강의실에 앉아 있는 여러분 중에수학을 비할 바 없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그것은 하늘 가득한 별을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과 사실 어딘가에서 이어져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도저히 수식이나 글로 다 나타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무한하다고 생각되는 우주에 대해서라면 수학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물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도 관측할 수 있는 현상으로서 구석구석까지 확인되려면 아직 시간이 걸리겠지요. 아무리 이론이 아름다워도 최종적으로 관측되기까지는 그이론을 증명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우주에는 글로 나타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수학이라는 장갑을 끼면 우리는 우주 전체를 두 손으로 붙잡을 수 있는것입니다.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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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보는 법

"그림에 뛰어나고 서툴고 하는 건 없어. 자신은 그림이 서툴다고 생각하는 놈이 있다면 그건 제대로 보고 그리지 않았을 뿐이야. 알겠어? 제대로 안 보는 놈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제대로 안 봐. 보고 싶지 않은 거지, 아마도, 그 기분은 나도 알아. 보이지 않는 게 더 편하니까. 바라보는 모든 것이 다 핀트가 딱 맞으면 머리가 이상해지는 게 당연해. 인간은 적당히 솎아낸 것밖에 보지 않거든.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그 덕분이기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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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증 해소 방법

소리는 속도

금욕적이지 않은 삶

"사람 체온 정도로 덥힌 물 한 컵을 가져와. 그리고 세면기도."
선생의 명령을 듣고 서둘러 옆의 부엌으로 가서 소량의 물을끓여 컵에 담고, 거기에 찬물을 섞으며 온도를 조절한 후 방으로돌아갔다. 선생은 건네받은 컵을 두 손으로 쥐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임부에게 건넸다. "먼저 이 미지근한 물로 입을 천천히 헹구세요. 헹구면 세면기에 뱉으세요. 다시 한 번 똑같이 헹궈내세요. 그러고는 나머지 물을 마시세요. 이렇게 하면 몸의 갈증이뼛속까지 적셔져 해소됩니다. 갑자기 물을 벌컥벌컥 마시면 위가 쿨럭쿨럭 소리만 낼 뿐 충분히 스며들지 않습니다." - P83

"소리는 속도야. 속도가 소리가 된다고 해도 좋겠지. 미닫이를빨리 닫는 소리는 빨라. 천천히 닫는 소리는 느리고."
선생은 미닫이문 앞에 서서 오른손으로 휙 열고 휙 닫았다. 직선 같은 소리가 공기를 가른다. 이번에는 천천히 열고 천천히 닫는다. 다다미 위를 기는 듯이 곧 가라앉는 소리.
"서두르는 서두르지 않든 결국 걸리는 시간은 이 초 차이도안 나. 그런데도 서둘러 열고 닫지. 서두르고 있다고 자기주장을하는 것에 불과해." - P84

선생은 금욕적이지 않았다.
4시에 일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으면 유일한 서양식 방의 소파에서 파이프에 불을 붙이고 영국에서 수입한 큼직한 축음기로 저녁식사 시간 때까지 음악을 들었다. 요네는 난생처음 클래식과 샹송을 들었다. 부지의 북쪽 차고에는 수입차 시트로엥이대기하고 있다. 때로는 이삼일 휴진을 하고 가족과 함께 하코네나 닛코까지 드라이브를 즐겼다. 소고기와 양고기를 좋아하고,
전통 옷이나 양복에도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재산가의 풍모는 찾아볼 수 없다. "자, 들어봐. 부지런히 모아봐야 좋을 게 전혀 없어. 기분이든 돈이든 곧바로 내고 곧바로 써야 해.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게 좋지. 말 나온 김에 말하자면, 음식을 잘 씹어 먹어야 한다는 건 틀린 얘기야. 풀만 먹는 소가 아니니까. 너무 씹어서 먹으면 위의 힘이 약해지거든."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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