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니겠는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 말은 그 말을 듣는 사람만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사람도 겨냥한다. 더욱 겨냥한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은 자기가 하는 말을 듣기도 하기 때문이다. 듣는 사람은 듣기만 하는 사람이지만 하는 사람은 하면서 듣기도 하는 사람이다. 듣는 사람은 잘못 들을 수도 있지만 하는 사람, 하면서 듣는 사람은 잘못 들을 수도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사랑한다고 말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되지 않을 수 없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는 어렵지만 사랑한다는 말을 해놓고 사랑하지 않기는 더욱 어렵다.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받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의 삶보다 문제 되는 것은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달라고 구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의 삶이다. 대개의 경우 무엇을 받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과 무엇을 달라고 구한 경험이 없는 사람은 동일인이다. 원하는 것을 받은 경험이 없는 것보다 원하는 것을 달라고 구해본 경험이 없다는 사실이 이 사람의 내부를 더 심각하게 충격한다. 원하는 것을 받지 못한 경험이 아니라 원할 기회를 갖지 못한 경험이 더 근원적이고 더 뿌리 깊다. 원하는 것을 받지 못한 경험에 의해 생긴 상처는 대상이 되는 재화를 얻음으로써 치료가 되기도 하지만 원할 기회를 갖지 못한 경험에 의해 생긴 상처를 낫게 할 재화는 없다. 그는 단지 구하는 경험을 되풀이할 뿐인데, 그렇게 하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상처가 치료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그 상처의 고유한 증상이기 때문이다. 구한 것이 구해져도 그의 구하기는 멈추지 않는다. 그는 다만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구하는 행위를 되풀이함으로써 자기가 누구인지를 고백한다. 그는 구걸하는 자이다. 

처참하고 비굴한 것들이 얼굴을 찡그리게 하는 것은 불쾌함 때문이 아니라 불편함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것들은 보는 사람을 궁지로 몬다. 보인 것의 의도와 상관없이 보는 사람은 공격당한 상태에 들어간 자신을 느끼게 된다. 피할 수는 있지만 공격할 수는 없다. 피할 수는 있지만 벗어날 수는 없다. 약한 것은 힘으로 누를 수 있다. 그러나 처참하거나 비굴한 것은 그러기가 어렵다.

강한 자는 무기를 가지고 위협해야 할 정도로 약하고, 약한 자는 무기를 가질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강하다. 약함 자체가 무기이니까 따로 무기를 가질 필요가 없다. 대부분 자각하지 못하지만, 어떤 이에게 약함은 치명적인 무기이다. 그렇다고 약한 이가 자기의 약함을 무기로 사용한다는 뜻은 아니다. 약한 이는 자기의 약함이 유인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므로 약함을 무기로 사용할 수 없다. 자기가 약해서 상대가 끌린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월한 자가 되지 못한다. 약함 자체가 무기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로 그는 유인하고 끌어들인다. 넝쿨식물이 갈참나무나 참나무에게 그런 것처럼. 

의심하는 사람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만족이 아니라 의심이기 때문이다. 의심하는 사람의 의심은 확신하는 사람의 확신보다 언제나 확고하다. 

질투는 사랑의 크기가 아니라 그가 느끼는 약점의 크기를 나타내 보인다. 사랑해서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약점이 있어서 질투하는 것이다. 맹렬하게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열등감을 느껴서 맹렬하게 질투하는 것이다. 

우리는 때로 자기의 사랑을 얻거나 지키기 위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이미지의) 훼손을 감수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사랑을 내놓지 않으려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랑의 크기를 보증한다는 관념이 있는 것이 사실이고, 이 관념을 전혀 근거 없다고 할 수도 없다. 이런 관념의 배후에 사랑의 이기심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사랑의 ‘이기심’이 아니라 ‘사랑’의 이기심이라는 사실을 아는지. 지키려고 하는 것은 ‘그, 또는 그녀’의 사랑이 아니라 그, 또는 그녀의 ‘사랑’이다. 

배려는 이기심을 넘지 못한다. 배려보다 이기심이 더 큰 사랑의 증거로 간주된다. 사랑하기 때문에 떠난다는 수사가 이 세계에서 위선과 변명의 표현으로 인식되는 이유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떠나는 사람은 사랑하기 때문에 파멸에 이르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 자기는 물론 연인(사랑하는 ‘사람’)의 파멸조차 감내하는 극한의 이기심을 사랑은 요구한다. 그, 또는 그녀가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사랑이 이기적인 것이다. 

충고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행위이다. 더구나 자기가 관련되어 있을 경우 충고가 오해 없이 충고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데, 그 상당한 용기는 상당한 우월감의 바탕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형식과 내용의 조화라는 통념은 강력하지만 항상 진실한 것은 아니다. 형식과 내용을 일대일로 결합시키는 생각은 전제적이거나 편의적이다. 내용이 오로지 하나의 형식으로만 표현된다고 믿는 사람은 단순함이 주는 기쁨을 누리겠지만 그 기쁨이 위조된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는 못한다. 그 사실을 알면 기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깨달으면 안 될 것이다. 

진정으로 살지 않는 자가 삶이 무엇인지 묻는다. 참으로 사랑하지 않는 자가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자 한다. 중요한 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 ‘삶을 하고’ 사랑을 하는 것이다. 정의 내리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다. 그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어떻게 해도 정의되지 않는 것이 신이고 삶이고 사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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