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만큼 신선하지 않은
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샤워를 하면서 문득, 생각했다.

박민규는 신라면이다, 라고.

박민규는 카스테라이다, 라고 했으면 그가 유일하게 작품을 통해 이루기 원했던 '달콤하고 따뜻하게 추운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는'작가가 되는 거겠지만, 다 읽고 나니, 깊은 사고도 없이 나 같은 독자는 샤워하는 동안에 아주 무심결에, 박민규는 신라면이다, 로 결론 지어 버리는 거다.

억울할까, 아닐 거다.

카스테라가 되고 싶어한 박민규가 신라면이 된다는 것이 뭐 어떤가.

신라면은 내가 알기로 농심에서 가장 공을 들여 만드는 라면일 거다. 신라면이 예전 같지 않아, 라고 사람들이 말하거나 이젠 신라면이 정말 지긋지긋하다 뭐 다른 거 없니, 라는 소리가 들리면 약간은 뉴-한 신라면을 만들기 위해 고심할 것이다.

또 신라면은 우리나라 사람들 중 라면이라면 무슨 독약이라도 들은 줄 아는 호들갑쟁이들 빼고는 다 먹었을게고, 이젠 라면 그만 먹어야지 하고 잊고 있다가도 또 찾게 되는 대표적인 브랜드이며, 어떤 사람에겐 외국에 나갈 때조차도 컵으로 된 것이나마 챙겨가게 되는 물건이다.

그러니 뭐 어떤가. 위안을 주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카스테라 처럼 우아한 공정을 거치는 것이 아니더라도 신라면 정도면 충분치 않은가.

그런데 신라면은 그 맛을 음미하고 다시 찾게 되는 최고급요리에 끼지 못하는 숙명이 있다는게 문제라면 문제다.

뭐 달리 좋은 밥상이 안 차려질 때, 라면이나 먹지, 하고 찾는게 또한 신라면인 것. 맛이 잊혀지지 않는다는 점에서야 고급요리랑 다를 바가 없는데, 이것이 음미한 맛이라기 보다는 자극적인 스프 때문인지 어째 위장 속에 인이 박힌 그런 의미의 리와인드로 인식 되는거다.

그러니 신라면에게 대단한 것을 기대하지도 않을 뿐더러, 당사자인 신라면 역시 애시당초 나에게 그런 걸 기대는 말라,고 이미 말한 듯 하다.(얼마전 김혜리 기자가 박민규씨랑 했던 인터뷰를 참고해보면)

지난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 클럽]을 읽고 끄적인 글을 찾아 읽어보니 나도 참 가소롭다. 내 기대에 못 미친다고 불평을 잔뜩 써놨으니 원. 이 사람은 신라면인데.

맛이 있는데 그윽하지 못한 점이 어디서 연유하는 걸까, 늘 애매했던 부분이, 이 두번째 책으로 첫 작품에서 남겨 두고 말았던 미미한 갈증은 이제 해소 된 듯, 신라면을 먹고 싶어지는 주기가 꽤 긴 편인 나에게 다음 작품은 한참이나 늦게 손에 걸릴 거 같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8-05-05 17: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05 2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haire 2008-05-05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박민규가 제대로 걸렸군요.
신라면 비유, 꽤 적절한데요. 근데, 대한민국 국민이 결코 끊지 못하는 신라면만큼이라도
된다는 것, 것도 대단하다 싶어요. 최근에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실린 박민규의 작품 '낮잠'을 읽어보심 어쩌면 신라면을 넘어 '너구리' 정도의 깊이는 느껴지실지도..^^

치니 2008-05-05 20:31   좋아요 0 | URL
네, 그래서 억울하지 않을거라 생각한거에요, 외람되지만.
저도 첫 작품 읽고 두번째부턴 아마 안 읽을거 같다 속으로 그래놓고 끊지 못하고 또 읽게 된 것 처럼, 또 카이레님 뿐 아니라 위에 비밀글 달아주신 믿음직한 리뷰어께서도 [낮잠]은 꽤 읽어볼만하다며 아직도 챙기시는 거처럼, 그에게는 그야말로 무언가가 있는 거겠죠.
다만 제 취향에 꼭 맞지만은 않는 무언가도 계속 존재하므로, 투썸즈 업이 잘 안되는 것뿐. ^-^

누에 2008-05-08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요즘 신라면 안먹은지 오래됐는데, 대신 '낮잠'은 맛을 봐야겠네요. ^^

치니 2008-05-08 17:35   좋아요 0 | URL
아 , 거긴 라면 비싸지 않나요?
낮잠은, 흠, 누에님의 리뷰를 참고하고 맛을 볼랍니다.
 

따뜻하다,를 국어사전에서 찾아 벽에 적어놓은 상상마당. 이렇게 회색 벽에 하얀 글씨로 적어두었더라.

감정, 태도, 분위기 따위가 정답고 포근하다.

신경림, 김광진, 요조가 함께 꾸린 북 콘서트를 보고 나오다 마주친 코너에서의 이 자상함에 엄마 없는 어린 아이가 모처럼 아주 다정한 보살핌을 받았을 때 처럼 마음이 달뜨면서도 아릿했다.

 



 

딱 이렇게 생긴 신경림 시인은, 딱 찰리 브라운처럼 순진무구하고 솔직하며, 때로는 장난스럽고 때로는 진지하시다. 한마디로 귀여워 죽겠다!

 

알고보니 김광진과 요조는 시인의 신간 시집을 소개하기 위해 장만한 양념 같은 것이었지만, 양념이 제대로 쓰이지 않고 따로 놀 때의 음식 맛은 가히 최악임을 누구나 알고 있으렷다. 그런 점에서 이런 콘서트를 기획한 평화방송, 야무지다. 물론 창비와 알라딘과 예스24와 상상마당의 후원이 어우러진 결과물이겠지만, 그런 후원을 하는 것이 대운하를 위한 후원을 하는 누구누구보다야 백만배 더 낫지 않겠는가. 자본주의는 이렇게 씌여지면 그나마 참 어여쁘다.

얼핏 봐도 100여명 안짝인 방청객들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입장하여 자리를 탐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서 시 한 줄 한 줄에 대해 경청하고, 노래 가사 하나 하나에 귀 기울이는 모습.

광분은 없었으나 희열이 있었고, 모종의 공범의식이 조금의 냉소도 없이 한 자리에 온화하게 모인 채, 간혹 왠지 울고 싶어지지만 행복하다고 해야 할 그 아우라.

어디 가 무엇을 보고 들은 후에 질문을 하라고 하면 쭈삣거리기 일쑤이던 내게, 척 하니 손을 들어 인상 깊은 질문을 하는 방청객들 몇몇은 존경스러워 보였고, 그런 질문들에 단정하고 성의 있는 답변을 하면서, 누구 하나 흠 잡는 법 없이, 지나친 겸손은 커녕 척척 농담까지 하시는 우리의 신경림 시인은, 교과서에 자신의 시가 실려서 주변으로부터 '넌 이제 망했다'라는 악담을 들어도 끄덕하지 않으니, 가수 김광진이 겸업 한다는 펀드 매니저 일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셔도 당연히 위풍당당하시다.

그러나 그 위풍당당은 사람을 기죽게 하는 것이 전혀 아닌지라, 그저 배시시 웃으며 선생님 고맙습니다, 술 한잔 올리겠습니다, 하기만 하면 내 몸에도 어울릴 것 같은 자연스러움이라, 또 한없이 존경스러운 마음이 된다.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아직 있고, 세상에 이런 걸 나눌 친구들도 아직 있고, 찾으면 재미있는 일들 투성이라는 느낌, 너무 오랜만에 느껴서일까. 주책 맞게 눈시울이 자꾸 뜨거워졌던 봄밤.

꽃가루는 흩날리고, 쾌적하지 만은 않은 술 냄새 섞인 홍대 거리를 휘청휘청 취기를 얹고 돌아다니던 봄밤. 이걸 신청해보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아주 행복한 하루, 라고 마음 속에 일기를 썼고 친구에게는 '내 인생은 너무 대만족이야'라며 말도 안되는 호기를 부렸다. 당장 내일 대만족이 만족이 되고, 모레 만족이 불만족이 되더라도 그 순간 만큼은 모쪼록 그러고 싶었드랬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urnleft 2008-05-03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도 달착지근하니 따뜻하군요 :)

치니 2008-05-03 13:36   좋아요 0 | URL
TurnLeft님, 계신 곳은 어떤가요. 따뜻한가요.
부디, 항상 따스하게 지내시길요.

네꼬 2008-05-03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하하. 신경림 선생님과 찰리 브라운이라니. 나 부들부들 떨면서 추천했어요. 좋아서.

치니 2008-05-03 14:15   좋아요 0 | URL
사진만으로는 정말 닮았다고 생각 못하실지 모르지만, 실물을 보시면 제 말에 동감하실거에요, ㅎㅎ
네꼬님이 북 콘서트에 오신다면 저는 척 알아볼텐데, 네꼬님은 절 모르시겠죠? 으흐 다음엔 그런 기회가 있었음 좋겠다. (은근 파파라치 근성이 있는 치니)
 
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빼어나게 잘 쓴 수작이다 라고 쉽게 말할 수 없는 작품이지만, 세련된 가공이 가히 입이 쩍 벌어질 만큼은 아니지만, 도대체 이 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뭘까 하고 궁금증이 치솟아 화장실도 못가게 하다가 기어이 뒤통수를 철썩 때려주는 반전으로 숨을 멎게 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읽는 중간 중간 눈물이 왈칵 하게 하는 작품이 있다.

그런 작품은, 결국 남들에게 권한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 갚는다는 속담이 떠오른다면 오바일까, 아니면 이 작가에게 너무 낮은 점수를 주고 있는걸까.

우리나라에 소위 청소년 문학이라는게 있는지도 몰랐다. 아니 있다 해도 문학전집 같은 것들에 포함되어 있는 명작임이 증명된 문학 이외에, 청신하게 요즘의 작가가 요즘의 청소년들에 대해 쓴 것이 있는지도 잘 몰랐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내 아이는 지금 청소년이고, 어릴 때 그림책은 그렇게 호들갑을 떨어가며 많이 읽어주었는데 막상 지금은 내가 우선 자신 있게 읽히고픈 책의 목록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런 면에서, 완득이는 문학계의 효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만하다. 이런 정도의 소설 하나를 읽고 아이들이 바뀌면 얼마나 바뀌겠어, 라고 진부한 성인의 눈으로 읽지만 않는다면.

모름지기, 소설이란 자기가 처한 환경에 비슷한 이야기를 다루거나 자기가 고민하고 있는 것에 가까이 다가가 있으면서 재미까지 있으면 충분히 손에 잡힌다. 그러니 효자라는 소리다. 요즘 아이들이 논술이나 지식욕, 정보를 위한 책 이외에 정말 내 주변의 이야기 같고 재미도 있어서 읽는 책이 그다지 많지는 않겠다 싶으니.

그런 상황에 요렇게 아기자기하게 오락의 하나로써 읽히면서도 잔잔한 감동을 주는 책들을, 만화건 소설이건 많이 대했으면 싶어서, 잡자마자 순식간에 읽은 이런 책이 있음에 마음이 한결 든든하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ooni 2008-04-28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전에 다른 블로거 포스팅에서도 봤는데, 그때도 검색만 해보고 말았는데요, 제목이랑 줄거리랑 그리고 다른 리뷰들 읽어보면, 엄청 뻔할 것같은 책인데. 치니님도 이리 말씀하시는 걸 보면, 은근 그 뻔한 걸 뛰어넘는 뭔가가 있나보군요. +_+ 컨츄리틱하나 왠지 잊혀지지 않는 네이밍 센스가 역시 굳. ㅋ

치니 2008-04-28 17:23   좋아요 0 | URL
네 솔직히 스토리나 구성만 놓고 보자면 뻔해요. 그런데도 눈물이 왈칵, 그 몇마디가 굵어요. 저도 네꼬님 리뷰에 반해서 샀지만, 그 리뷰가 없었드라면 마하연님 처럼 미뤘을거에요.

2008-04-28 1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4-28 1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4-30 1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4-30 16: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꼬 2008-05-01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그에 추천. 완득이 엉덩이를 툭툭 치며. 히히.

치니 2008-05-02 08:43   좋아요 0 | URL
네꼬님이 아니었다면 결국 그냥 안 읽고 말았을거에요. 출판사에서는 네꼬님의 엉덩이를 툭툭 쳐야 하겠는걸요 (ㅋㅋ)

토니 2010-07-09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하라는 사서 일은 안하고 혼자 열심히 책만 읽고 있습니다. 언니 말처럼 빤하긴 하지만 가끔은 빤한 이야기가 더 가슴에 와닿을 때가 있는 것 같아요. 넘 재밌게 잘 읽었어요. 특히 담임 똥주, 그가 실제 인물이라면 제가 목숨걸고 좋아했을 것 같아요. 완전 제 스탈이예요.

치니 2010-07-11 10:28   좋아요 0 | URL
아앗, 똥주 스타일이에요? 오호호. 알았어요. 딱 감이 오네요. ㅋㅋ

하라는 사서 일은 안하고 열심히 책만 읽어도 되는 그런 일, 완전 좋구만요 ~ 부럽부럽.
 
그녀에게 말하다 김혜리가 만난 사람 1
김혜리 지음 / 씨네21북스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대화나 글에서, 크게 압도적이지 않으면서도 조목조목 말하되, 이기려 하거나 위선/위악을 전혀 담지 않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알리면서 상대방의 말을 또한 제대로 듣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고 또한 그것이 꽤 아름답고 감동적이기까지 한 경우는 실제로 굉장히 드물다.

김혜리라는 사람이 바로 그렇다, 고 하면 알지도 못하면서 너무 단언을 하는 과오를 저지른 것이 될까. 아닐 것 같다.

이런 90%의 확신은 이 책 뿐 아니라 씨네21을 꼬박꼬박 사 읽던 시절에 느껴졌던 호흡과 냄새에도 기인할 것이다. 어쨌든 나는 그녀를 믿는다. 뿐 아니라 내가 즐겨 읽던 시절에 편집장이었던 조선희씨의 찬사도 믿고 인터뷰이들이 공통적으로 '생애 가장 인상적인 인터뷰'로써 그녀와의 인터뷰를 꼽는 것도 당연히 믿는다.

그 이유가 또 나만의 오해에서 비롯 된 건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몇몇 처음 뵙는 분들을 제외하고는 - 물론 영화나 다른 분야의 예술 작품들 속에서 그들을 이미 만나 봤겠지만 그분이 그분인 줄 모르고 있었던 거지 - 내가 이사람은 이럴거야 라고 추측해온, 바로 그 내용과 느낌 그대로 인터뷰 기록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대중들에게 보여지는, 즉 나같은 선무당이 봐도 느껴지게 하는 어떤 진심을, 이 기자가 누에 고치 뽑듯이 아주 정교하게 뽑아주니, 과연 그렇구나 하고 안도를 하는거랄까.

그런 점에서 여러가지 이유로 함께 묶지 못했다는 배두나씨와의 인터뷰가 궁금하다, 씨네21 이전 기사들을 뒤져보면 나오려나... (어제 드디어 '린다린다린다'를 보았는데 아, 배두나, 사랑스러워 죽겠어서 그렇다)

질투가 나도록 상대에게 가장 적절한 질문을 가장 객관적이면서도 무장해체 시키는 언어로 (물론 대면에서의 얼굴 표정이나 행동도 작용했겠지만) 몇 마디 건네고 듣는 그녀는, 소리가 없어도 활자로 표현되지 않아도 이 세상 누구보다 영리하게 그것을 이해하고 이해를 넘어 교감하는 순간에 이르고서야 인터뷰를 끝내는데 이건 뭐, 하나 하나가 그 자체로 연결이자 똑부러짐이니. 트집을 못 잡겠어서 조금이나마 애정이 덜 가는 듯한 인터뷰이를 눈에 불을 켜고 찾아보는 심뽀까지 불러 일으키고 있다.

간혹, (예를 들어 이창동 감독) 인터뷰이가 잔뜩 경계하고 살짝 무시하는 언조를 내뱉어도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고 인터뷰 중간에는 이미 이 사람도 넘어갔네 라고 느껴지게 하는 질문들은 촌철살인이라기보다는 짝사랑 하는 사람만이 아는 진정한 구애의 한 면목으로 오히려 안타까우면서 존경스럽기도 하고,

처음부터 자기 딸과도 같은 이쁜 처자로 대해주는 임현식 선생이나 나문희 선생 앞에서는 영락없는 초년생이자 맹탕인 소녀에 어리광마저 살짝 보인다.

구러구러 자신의 터가 영화이다보니 배우들과 하게 되는 인터뷰는 '내가 너보다 너를 잘 알 수도 있지 않겠니'라고 떠볼만도 한데, 이 사람 그저 정직하게 그사람의 내면을 보여줄 때까지 잘 기다리고 성마르게 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요즘 들어 내가 좀 못마땅했었다.

....한 사람이 되고 싶다, 라는 사춘기적 감성으로 모토를 몇 개 잡아보려고까지 했다. 이렇게 계속 살아선 안될 거 같아서.

여러가지 ...싶다가 있었지만, 이제 하나를 더 보탠다.

내 이야기를 단 하나도 하지 않은 채, 김혜리 같은 사람이 쏟아내는 자기만의 이야기를 종일 가만히, 아주 가만히 있는 듯 없는 듯 앉아서 온 노력을 다해 듣고 '싶다'. 그러면 내가 생각해오던 '싶다'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나에게 하나 하나 다가와 저절로 그걸 위해 나아가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만 같아서.


댓글(2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게다예요 2008-04-28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못마땅한 게 한 두 해가 아닌데, 이런 사람의 글을 읽으면 더더욱 그러할 때가 있죠.
잘 지내셨어요? 문득 오랜만인 거 같아서! ^^

치니 2008-04-28 12:17   좋아요 0 | URL
요즘 들어 유난히 그렇더라 싶더니 급기야는 질투 왕창 느끼게 되는 이런 사람의 책을 읽고 더해졌어요.
하지만 좋은 자극으로 써먹어야겠죠.
안그래도 오래 업데이트 없으시길래, 설마 벌써 아기 낳을 준비? ^-^;; 그랬다구요.

프레이야 2008-04-28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관심 가더군요. 보관함에 담아가요^^

치니 2008-04-28 12:17   좋아요 0 | URL
네 혜경님도 영화랑 사진은 관심이 누구보다 높으시니, 그것만으로도 재미있으실거에요. :)

nada 2008-04-28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지금도 "~한 사람이 되고 싶다"를 걸핏하면 메모하는 스타일이죠. -.-
내가 나임을 받아들이는 게 왜 이리 어려운 거죠? 젠장젠장.
혜리 언니 글을 읽으면 한숨이 모락모락. 하튼 미워할 수조차 없다니까요.

아 참, 하린 군 바뀐 얼굴 반가워요.^-^

치니 2008-04-28 17:20   좋아요 0 | URL
꽃양배추님, 메모하는 그 습관, 저도 배워야겠어요. 만날 생각만 하다 마니까 사람이 이 모냥인거에요.
가끔 꽃양배추님 글에서 많은 메모 덕에 나온 결론처럼 보이는 글귀들이 있드라구요. ^-^
하린군, 무럭무럭 자라는 중.

chaire 2008-04-28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사람이 되고 싶다, 는 거, 전, 포기한 지가 꽤 되었어요.
대신 오래 전부터 그렇게 바뀌었지요. --한 사람은 되지 말자, 는 쪽으로. ㅡㅡ
어째 갈수록 어둡고 비겁해지는 것 같지만..^^

치니 2008-04-28 17:21   좋아요 0 | URL
아 맞다, --한 사람은 되지 말자, 이것도 중요해요!
휴휴 메모할 거 많고요. ^-^;;
(이래도 인간이 성숙하지 못하면, 저 한대 때려주셔야 해요)

2008-04-28 1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4-28 1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8-04-28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여기저기 이 책에 대한 칭찬이 가득하군요. 그렇다면 저도 이제 읽어야 할까봐요. 조용히 가만가만 그녀의 글을 추천하시는 것 같아 저도 조용히 가만가만 보관함에 넣겠습니다.

치니 2008-04-28 18:07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이 좋아하실거라는 예측에 한표. :)

2008-04-29 0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4-29 0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turnleft 2008-04-29 0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찜!

치니 2008-04-29 09:27   좋아요 0 | URL
앗 , 은근히 이 책의 인기가 오르고 있는게 실감 되네요. :)

누에 2008-05-01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해지네요. ^^ 여긴 이제 비만 주룩주룩 내리네요.

치니 2008-05-02 08:45   좋아요 0 | URL
아, 누에님 ~
너무 오래 안 보이셔서 어디 여행이라도 가신건가, 그랬어요.
비가 오는 파리, 멀리서는 낭만적이지만 실제로는 참, 거시기 할 때가 많았던 기억이...ㅎㅎ
비가 온다는데, 왠일인지 먹을 거가 떠오르네요. 뜨끈한 쇼콜라랑 맛있는 초코바 같은거. ^-^

파고세운닥나무 2009-12-30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딴죽 거는 인터뷰가 좋은데, 인터뷰어가 인터뷰이에게 푹 빠져 있어 그게 조금 아쉬웠어요.

속으론 김혜리가 머지 않아 소설도 쓸 것 같다는 생각도 하구요.

직장 선배인 고종석, 조선희처럼 말이죠.

치니 2009-12-30 15:22   좋아요 0 | URL
무려 2008년 4월에 쓴 글이네요. 다시 읽어보니 쑥스럽기도 하고. ^-^;
이후로도 김혜리 기자의 씨네21블로그에 자주 들러서 글들을 읽어 왔어요. 요즘은 조금 지치신 건지, 블로그는 잘 맞지 않으신지, 뜸해요. 소설을 쓸까, 글쎄, 왠지 안 그랬으면 싶은 마음이 드네요, 지금으로썬. :)
 
불만의 겨울 청목정선세계문학 38
스타인 벡 지음, 김준호 옮김 / 청목(청목사) / 1990년 3월
평점 :
절판


책을 겨우겨우 다 읽고난 후, 난독성의 극치를 달리는 이 책에 대한 원망은 번역가이신 김준호씨와 이런 번역을 그대로 방치한 채 여전히 책을 팔고 있는 청목사로만 향했다.

사실 마지막 책장을 덮었던 어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너무 끔찍해, 청목사에 연락하여 이 책을 절판하라고 할까'

씩씩거리다 잠이 들고나서, 오늘 아침 알라딘에 들어와 검색해보니 예의 청목사 말고도 을지문서에서 더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번역하신 분의 이름도 다르다. 아 , 을지문서였다면 달랐을까. 달랐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결국 내탓이오 내탓이오, 신중하지 못한 책 고르기로 모든 원망은 종결되었다만...

그렇다. 다른 나라 말이 원서인 책을 읽으려면, 그 나라 언어를 모두 알고 있을 수 없으니, 번역가와 출판사를 꼼꼼이 챙겨야 한다. 모든 번역에 의심을 품겠다는 것도 아니고 모든 출판사가 게으르다는 것도 아니지만, '청목사'에서 나온 '불만의 겨울'을 읽으면 그런 각오를 하게 된다.

엄마가 편지에서 가끔 옛 말투(예를 들면 이렇다. "아내는 얼굴에 가만히 미소를 짓고 나는 따스한 마음을 갖여지고,... 개가 지나가면서 인사를 했읍니다.)를 쓰면 피식 웃고 말지만 책에서는 그럴 수 없다, 엄청나게 거슬린다. 게다가 화자가 두 명 이상일 때, 계속되는 대화체는 누가 누구에게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게 되어 있다. 즉, 주인공인 이선이 한 마디를 하면 상대방이 가끔 두마디도 하고 세마디도 하는 거 같다가, 갑자기 또 이선이 말을 하는 식이다. 원작자가 고의로 이렇게 했을까?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1판 발행 연도를 보니 1990년 밖에 안되었다. 아무리 너그럽게 보려해도 , 이 번역을 출판사의 편집자가 꼼꼼이 검수했다는 생각이 안든다.

불쌍한 스타인벡은 한국에서 자신의 위대한 작품이 이렇게 번역된 것을 알면 얼마나 통탄을 할까.

그런 엄청난 오역과 오타 투성이의 책을 접한 나로서도 스타인벡의 이 작품이 갖는 진중한 무게와 당시 미국 사회에 대한 통찰력, 인간에 대한 집요한 탐구정신은 그나마 그대로 전달 되었으니, 제대로 읽었다면 정말 훌륭한 작품이었을 거라고, 이 책을 읽은 노력과 시간에 대해 위안을 하고 있다. 휴.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토니 2008-05-01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구나… 제가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나름 좋은 책이라 생각하고 권했는데... 번역이 허접하면 원문도 함께 평가절하되는 거라.

치니 2008-04-24 15:57   좋아요 0 | URL
아니에요, 마지막 문장에 적었듯이, 좋은 책인 것 만큼은 분명 알았어요. 다만 그 좋은 책을 이런 번역본으로 읽은 제가 한심한거였죠.ㅠㅠ

mooni 2008-04-24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책 이미지 눌러보면요, 저자 자리에 번역자 이름 나와요. 하하. 그야말로 이런 불만성 리뷰를 차단하는 멋진 링크군요.ㅋㅋ

전 불만의 겨울은 못봤는데, 분노의 포도는 봤군요. 인상적인 책이죠. 아직 어릴때였는데, 책 내용도 내용이고, 뒤에 작가소개에 스타인벡은 작가가 되기전엔 기자를 했는데 사회현실에 대해서 너무나 편파적이고 주관적인 발언을 일삼다가 해고되었다던가 하는 내용이 써있더라구요. 스타인벡 소설이 굉장히 실물감이 있잖아요. 그 현실적 무게감이 실은 주관성을 강조하는 문투에서 비롯된 거라, 작가의 자기방식의 시야확보에 대해서 좀 생각했더랬는데요.

아, 그러고보니, 의심스러운 싸움도 집에 있는데, 안읽고 굴리고만 있고요. 헤헤

치니 2008-04-25 09:03   좋아요 0 | URL
아흑, 마하연님은 불만성 리뷰, 이해해주실거라 믿어요.

스타인 벡이 기자 생활을 하다가 짤린 건 이 책 뒤에도 실려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내내 번역이 이상하고 이상하다가 맨 뒤 저자에 대한 후기 글은 하나도 안 이상한 거 있죠? 아마 그건 제대로 맘 먹고 썼나봐요, 아니면 어디 다른데 있는거 베꼈는지...-_-; 자기방식의 시야확보, 음, 저도 생각해보게 되네요.

마하연님이 좋은 번역가나 좋은 출판사를 좀 알려주세요, 저는 그런 걸 왜 이리 모르고 아무거나 사대는지.-_ㅠ

2008-04-24 2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4-25 0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울의 달 2013-09-18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너무도 공감이 가는 이야기입니다. 실은 나도 이 글을 쓰는 바로 몇일전에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저도 창작과 관련한 일을 하는데 참고가 될 만한 책을 읽고 싶어 신촌에 헌 책 방에 가서 이것저것 뒤적이다가 스티븐 킹의 소설 "헌터"를 찾게 되었죠. 스티븐 킹의 초기 작품으로 아놀드 슈왈츠제네거 주연으로 런닝맨이란 영화로 만들어지기 까지 했는데요.. 정말이지 번역 때문에 화가 나고 실망이 크더군요. 번역도 번역이지만 왜 그렇게 오자가 많은건지요..도대체 이 번역가가 누구인지 보려해도 번역가 약력조차 없더군요. 이 책에 출판사는 도서출판 '민' 번역가는 김은우. 그저 그런 영세출판사가 그럴듯한 책 하나 서둘러 번역한 거라는게 눈에 선하더군요. 책을 고를 때는 출판사와 번역가를 보고 꼼꼼하게 골라야 할 필요가 있어요.

치니 2013-09-27 10:23   좋아요 0 | URL
아이고, 오래 전 지금보다 더 철이 없을 때 쓴 글인데, 얼굴이 화끈거리네요.
저 역시 번역 일을 조금 하다 보니, 함부로 누군가의 번역에 대해 뭐랄 수 없다는 건 잘 알게 되었고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아서 반성도 하는데, 이 책에서처럼 기본적인 성의가 없는 경우는 문제란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경제적 여건상 이런 경우도 생기는 걸 테고. 단순하게 욕만 해서 고쳐질 일은 아닌 듯하네요.
그저 말씀 대로 책을 고를 때 독자가 좀 더 성의를 갖고 출판사와 번역가를 꼼꼼하게 고를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