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만큼 신선하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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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평점 :
샤워를 하면서 문득, 생각했다.
박민규는 신라면이다, 라고.
박민규는 카스테라이다, 라고 했으면 그가 유일하게 작품을 통해 이루기 원했던 '달콤하고 따뜻하게 추운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는'작가가 되는 거겠지만, 다 읽고 나니, 깊은 사고도 없이 나 같은 독자는 샤워하는 동안에 아주 무심결에, 박민규는 신라면이다, 로 결론 지어 버리는 거다.
억울할까, 아닐 거다.
카스테라가 되고 싶어한 박민규가 신라면이 된다는 것이 뭐 어떤가.
신라면은 내가 알기로 농심에서 가장 공을 들여 만드는 라면일 거다. 신라면이 예전 같지 않아, 라고 사람들이 말하거나 이젠 신라면이 정말 지긋지긋하다 뭐 다른 거 없니, 라는 소리가 들리면 약간은 뉴-한 신라면을 만들기 위해 고심할 것이다.
또 신라면은 우리나라 사람들 중 라면이라면 무슨 독약이라도 들은 줄 아는 호들갑쟁이들 빼고는 다 먹었을게고, 이젠 라면 그만 먹어야지 하고 잊고 있다가도 또 찾게 되는 대표적인 브랜드이며, 어떤 사람에겐 외국에 나갈 때조차도 컵으로 된 것이나마 챙겨가게 되는 물건이다.
그러니 뭐 어떤가. 위안을 주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카스테라 처럼 우아한 공정을 거치는 것이 아니더라도 신라면 정도면 충분치 않은가.
그런데 신라면은 그 맛을 음미하고 다시 찾게 되는 최고급요리에 끼지 못하는 숙명이 있다는게 문제라면 문제다.
뭐 달리 좋은 밥상이 안 차려질 때, 라면이나 먹지, 하고 찾는게 또한 신라면인 것. 맛이 잊혀지지 않는다는 점에서야 고급요리랑 다를 바가 없는데, 이것이 음미한 맛이라기 보다는 자극적인 스프 때문인지 어째 위장 속에 인이 박힌 그런 의미의 리와인드로 인식 되는거다.
그러니 신라면에게 대단한 것을 기대하지도 않을 뿐더러, 당사자인 신라면 역시 애시당초 나에게 그런 걸 기대는 말라,고 이미 말한 듯 하다.(얼마전 김혜리 기자가 박민규씨랑 했던 인터뷰를 참고해보면)
지난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 클럽]을 읽고 끄적인 글을 찾아 읽어보니 나도 참 가소롭다. 내 기대에 못 미친다고 불평을 잔뜩 써놨으니 원. 이 사람은 신라면인데.
맛이 있는데 그윽하지 못한 점이 어디서 연유하는 걸까, 늘 애매했던 부분이, 이 두번째 책으로 첫 작품에서 남겨 두고 말았던 미미한 갈증은 이제 해소 된 듯, 신라면을 먹고 싶어지는 주기가 꽤 긴 편인 나에게 다음 작품은 한참이나 늦게 손에 걸릴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