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다,를 국어사전에서 찾아 벽에 적어놓은 상상마당. 이렇게 회색 벽에 하얀 글씨로 적어두었더라.
감정, 태도, 분위기 따위가 정답고 포근하다.
신경림, 김광진, 요조가 함께 꾸린 북 콘서트를 보고 나오다 마주친 코너에서의 이 자상함에 엄마 없는 어린 아이가 모처럼 아주 다정한 보살핌을 받았을 때 처럼 마음이 달뜨면서도 아릿했다.
딱 이렇게 생긴 신경림 시인은, 딱 찰리 브라운처럼 순진무구하고 솔직하며, 때로는 장난스럽고 때로는 진지하시다. 한마디로 귀여워 죽겠다!
알고보니 김광진과 요조는 시인의 신간 시집을 소개하기 위해 장만한 양념 같은 것이었지만, 양념이 제대로 쓰이지 않고 따로 놀 때의 음식 맛은 가히 최악임을 누구나 알고 있으렷다. 그런 점에서 이런 콘서트를 기획한 평화방송, 야무지다. 물론 창비와 알라딘과 예스24와 상상마당의 후원이 어우러진 결과물이겠지만, 그런 후원을 하는 것이 대운하를 위한 후원을 하는 누구누구보다야 백만배 더 낫지 않겠는가. 자본주의는 이렇게 씌여지면 그나마 참 어여쁘다.
얼핏 봐도 100여명 안짝인 방청객들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입장하여 자리를 탐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서 시 한 줄 한 줄에 대해 경청하고, 노래 가사 하나 하나에 귀 기울이는 모습.
광분은 없었으나 희열이 있었고, 모종의 공범의식이 조금의 냉소도 없이 한 자리에 온화하게 모인 채, 간혹 왠지 울고 싶어지지만 행복하다고 해야 할 그 아우라.
어디 가 무엇을 보고 들은 후에 질문을 하라고 하면 쭈삣거리기 일쑤이던 내게, 척 하니 손을 들어 인상 깊은 질문을 하는 방청객들 몇몇은 존경스러워 보였고, 그런 질문들에 단정하고 성의 있는 답변을 하면서, 누구 하나 흠 잡는 법 없이, 지나친 겸손은 커녕 척척 농담까지 하시는 우리의 신경림 시인은, 교과서에 자신의 시가 실려서 주변으로부터 '넌 이제 망했다'라는 악담을 들어도 끄덕하지 않으니, 가수 김광진이 겸업 한다는 펀드 매니저 일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셔도 당연히 위풍당당하시다.
그러나 그 위풍당당은 사람을 기죽게 하는 것이 전혀 아닌지라, 그저 배시시 웃으며 선생님 고맙습니다, 술 한잔 올리겠습니다, 하기만 하면 내 몸에도 어울릴 것 같은 자연스러움이라, 또 한없이 존경스러운 마음이 된다.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아직 있고, 세상에 이런 걸 나눌 친구들도 아직 있고, 찾으면 재미있는 일들 투성이라는 느낌, 너무 오랜만에 느껴서일까. 주책 맞게 눈시울이 자꾸 뜨거워졌던 봄밤.
꽃가루는 흩날리고, 쾌적하지 만은 않은 술 냄새 섞인 홍대 거리를 휘청휘청 취기를 얹고 돌아다니던 봄밤. 이걸 신청해보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아주 행복한 하루, 라고 마음 속에 일기를 썼고 친구에게는 '내 인생은 너무 대만족이야'라며 말도 안되는 호기를 부렸다. 당장 내일 대만족이 만족이 되고, 모레 만족이 불만족이 되더라도 그 순간 만큼은 모쪼록 그러고 싶었드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