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만의 겨울 청목정선세계문학 38
스타인 벡 지음, 김준호 옮김 / 청목(청목사) / 1990년 3월
평점 :
절판


책을 겨우겨우 다 읽고난 후, 난독성의 극치를 달리는 이 책에 대한 원망은 번역가이신 김준호씨와 이런 번역을 그대로 방치한 채 여전히 책을 팔고 있는 청목사로만 향했다.

사실 마지막 책장을 덮었던 어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너무 끔찍해, 청목사에 연락하여 이 책을 절판하라고 할까'

씩씩거리다 잠이 들고나서, 오늘 아침 알라딘에 들어와 검색해보니 예의 청목사 말고도 을지문서에서 더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번역하신 분의 이름도 다르다. 아 , 을지문서였다면 달랐을까. 달랐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결국 내탓이오 내탓이오, 신중하지 못한 책 고르기로 모든 원망은 종결되었다만...

그렇다. 다른 나라 말이 원서인 책을 읽으려면, 그 나라 언어를 모두 알고 있을 수 없으니, 번역가와 출판사를 꼼꼼이 챙겨야 한다. 모든 번역에 의심을 품겠다는 것도 아니고 모든 출판사가 게으르다는 것도 아니지만, '청목사'에서 나온 '불만의 겨울'을 읽으면 그런 각오를 하게 된다.

엄마가 편지에서 가끔 옛 말투(예를 들면 이렇다. "아내는 얼굴에 가만히 미소를 짓고 나는 따스한 마음을 갖여지고,... 개가 지나가면서 인사를 했읍니다.)를 쓰면 피식 웃고 말지만 책에서는 그럴 수 없다, 엄청나게 거슬린다. 게다가 화자가 두 명 이상일 때, 계속되는 대화체는 누가 누구에게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게 되어 있다. 즉, 주인공인 이선이 한 마디를 하면 상대방이 가끔 두마디도 하고 세마디도 하는 거 같다가, 갑자기 또 이선이 말을 하는 식이다. 원작자가 고의로 이렇게 했을까?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1판 발행 연도를 보니 1990년 밖에 안되었다. 아무리 너그럽게 보려해도 , 이 번역을 출판사의 편집자가 꼼꼼이 검수했다는 생각이 안든다.

불쌍한 스타인벡은 한국에서 자신의 위대한 작품이 이렇게 번역된 것을 알면 얼마나 통탄을 할까.

그런 엄청난 오역과 오타 투성이의 책을 접한 나로서도 스타인벡의 이 작품이 갖는 진중한 무게와 당시 미국 사회에 대한 통찰력, 인간에 대한 집요한 탐구정신은 그나마 그대로 전달 되었으니, 제대로 읽었다면 정말 훌륭한 작품이었을 거라고, 이 책을 읽은 노력과 시간에 대해 위안을 하고 있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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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2008-05-01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구나… 제가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나름 좋은 책이라 생각하고 권했는데... 번역이 허접하면 원문도 함께 평가절하되는 거라.

치니 2008-04-24 15:57   좋아요 0 | URL
아니에요, 마지막 문장에 적었듯이, 좋은 책인 것 만큼은 분명 알았어요. 다만 그 좋은 책을 이런 번역본으로 읽은 제가 한심한거였죠.ㅠㅠ

mooni 2008-04-24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책 이미지 눌러보면요, 저자 자리에 번역자 이름 나와요. 하하. 그야말로 이런 불만성 리뷰를 차단하는 멋진 링크군요.ㅋㅋ

전 불만의 겨울은 못봤는데, 분노의 포도는 봤군요. 인상적인 책이죠. 아직 어릴때였는데, 책 내용도 내용이고, 뒤에 작가소개에 스타인벡은 작가가 되기전엔 기자를 했는데 사회현실에 대해서 너무나 편파적이고 주관적인 발언을 일삼다가 해고되었다던가 하는 내용이 써있더라구요. 스타인벡 소설이 굉장히 실물감이 있잖아요. 그 현실적 무게감이 실은 주관성을 강조하는 문투에서 비롯된 거라, 작가의 자기방식의 시야확보에 대해서 좀 생각했더랬는데요.

아, 그러고보니, 의심스러운 싸움도 집에 있는데, 안읽고 굴리고만 있고요. 헤헤

치니 2008-04-25 09:03   좋아요 0 | URL
아흑, 마하연님은 불만성 리뷰, 이해해주실거라 믿어요.

스타인 벡이 기자 생활을 하다가 짤린 건 이 책 뒤에도 실려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내내 번역이 이상하고 이상하다가 맨 뒤 저자에 대한 후기 글은 하나도 안 이상한 거 있죠? 아마 그건 제대로 맘 먹고 썼나봐요, 아니면 어디 다른데 있는거 베꼈는지...-_-; 자기방식의 시야확보, 음, 저도 생각해보게 되네요.

마하연님이 좋은 번역가나 좋은 출판사를 좀 알려주세요, 저는 그런 걸 왜 이리 모르고 아무거나 사대는지.-_ㅠ

2008-04-24 2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4-25 0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울의 달 2013-09-18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너무도 공감이 가는 이야기입니다. 실은 나도 이 글을 쓰는 바로 몇일전에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저도 창작과 관련한 일을 하는데 참고가 될 만한 책을 읽고 싶어 신촌에 헌 책 방에 가서 이것저것 뒤적이다가 스티븐 킹의 소설 "헌터"를 찾게 되었죠. 스티븐 킹의 초기 작품으로 아놀드 슈왈츠제네거 주연으로 런닝맨이란 영화로 만들어지기 까지 했는데요.. 정말이지 번역 때문에 화가 나고 실망이 크더군요. 번역도 번역이지만 왜 그렇게 오자가 많은건지요..도대체 이 번역가가 누구인지 보려해도 번역가 약력조차 없더군요. 이 책에 출판사는 도서출판 '민' 번역가는 김은우. 그저 그런 영세출판사가 그럴듯한 책 하나 서둘러 번역한 거라는게 눈에 선하더군요. 책을 고를 때는 출판사와 번역가를 보고 꼼꼼하게 골라야 할 필요가 있어요.

치니 2013-09-27 10:23   좋아요 0 | URL
아이고, 오래 전 지금보다 더 철이 없을 때 쓴 글인데, 얼굴이 화끈거리네요.
저 역시 번역 일을 조금 하다 보니, 함부로 누군가의 번역에 대해 뭐랄 수 없다는 건 잘 알게 되었고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아서 반성도 하는데, 이 책에서처럼 기본적인 성의가 없는 경우는 문제란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경제적 여건상 이런 경우도 생기는 걸 테고. 단순하게 욕만 해서 고쳐질 일은 아닌 듯하네요.
그저 말씀 대로 책을 고를 때 독자가 좀 더 성의를 갖고 출판사와 번역가를 꼼꼼하게 고를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