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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말하다 ㅣ 김혜리가 만난 사람 1
김혜리 지음 / 씨네21북스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대화나 글에서, 크게 압도적이지 않으면서도 조목조목 말하되, 이기려 하거나 위선/위악을 전혀 담지 않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알리면서 상대방의 말을 또한 제대로 듣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고 또한 그것이 꽤 아름답고 감동적이기까지 한 경우는 실제로 굉장히 드물다.
김혜리라는 사람이 바로 그렇다, 고 하면 알지도 못하면서 너무 단언을 하는 과오를 저지른 것이 될까. 아닐 것 같다.
이런 90%의 확신은 이 책 뿐 아니라 씨네21을 꼬박꼬박 사 읽던 시절에 느껴졌던 호흡과 냄새에도 기인할 것이다. 어쨌든 나는 그녀를 믿는다. 뿐 아니라 내가 즐겨 읽던 시절에 편집장이었던 조선희씨의 찬사도 믿고 인터뷰이들이 공통적으로 '생애 가장 인상적인 인터뷰'로써 그녀와의 인터뷰를 꼽는 것도 당연히 믿는다.
그 이유가 또 나만의 오해에서 비롯 된 건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몇몇 처음 뵙는 분들을 제외하고는 - 물론 영화나 다른 분야의 예술 작품들 속에서 그들을 이미 만나 봤겠지만 그분이 그분인 줄 모르고 있었던 거지 - 내가 이사람은 이럴거야 라고 추측해온, 바로 그 내용과 느낌 그대로 인터뷰 기록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대중들에게 보여지는, 즉 나같은 선무당이 봐도 느껴지게 하는 어떤 진심을, 이 기자가 누에 고치 뽑듯이 아주 정교하게 뽑아주니, 과연 그렇구나 하고 안도를 하는거랄까.
그런 점에서 여러가지 이유로 함께 묶지 못했다는 배두나씨와의 인터뷰가 궁금하다, 씨네21 이전 기사들을 뒤져보면 나오려나... (어제 드디어 '린다린다린다'를 보았는데 아, 배두나, 사랑스러워 죽겠어서 그렇다)
질투가 나도록 상대에게 가장 적절한 질문을 가장 객관적이면서도 무장해체 시키는 언어로 (물론 대면에서의 얼굴 표정이나 행동도 작용했겠지만) 몇 마디 건네고 듣는 그녀는, 소리가 없어도 활자로 표현되지 않아도 이 세상 누구보다 영리하게 그것을 이해하고 이해를 넘어 교감하는 순간에 이르고서야 인터뷰를 끝내는데 이건 뭐, 하나 하나가 그 자체로 연결이자 똑부러짐이니. 트집을 못 잡겠어서 조금이나마 애정이 덜 가는 듯한 인터뷰이를 눈에 불을 켜고 찾아보는 심뽀까지 불러 일으키고 있다.
간혹, (예를 들어 이창동 감독) 인터뷰이가 잔뜩 경계하고 살짝 무시하는 언조를 내뱉어도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고 인터뷰 중간에는 이미 이 사람도 넘어갔네 라고 느껴지게 하는 질문들은 촌철살인이라기보다는 짝사랑 하는 사람만이 아는 진정한 구애의 한 면목으로 오히려 안타까우면서 존경스럽기도 하고,
처음부터 자기 딸과도 같은 이쁜 처자로 대해주는 임현식 선생이나 나문희 선생 앞에서는 영락없는 초년생이자 맹탕인 소녀에 어리광마저 살짝 보인다.
구러구러 자신의 터가 영화이다보니 배우들과 하게 되는 인터뷰는 '내가 너보다 너를 잘 알 수도 있지 않겠니'라고 떠볼만도 한데, 이 사람 그저 정직하게 그사람의 내면을 보여줄 때까지 잘 기다리고 성마르게 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요즘 들어 내가 좀 못마땅했었다.
....한 사람이 되고 싶다, 라는 사춘기적 감성으로 모토를 몇 개 잡아보려고까지 했다. 이렇게 계속 살아선 안될 거 같아서.
여러가지 ...싶다가 있었지만, 이제 하나를 더 보탠다.
내 이야기를 단 하나도 하지 않은 채, 김혜리 같은 사람이 쏟아내는 자기만의 이야기를 종일 가만히, 아주 가만히 있는 듯 없는 듯 앉아서 온 노력을 다해 듣고 '싶다'. 그러면 내가 생각해오던 '싶다'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나에게 하나 하나 다가와 저절로 그걸 위해 나아가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만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