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보다 개가 더 좋아
캐롤라인 냅 지음, 고정아 옮김 / 나무처럼(알펍)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자신의 개에 관한 이야기로 유명세를 떨친 책은 이미 <말리와 나>가 있고, 애견 키우기에 대한 정보 관련 책들은 이미 수도 없이 나와 있는데, 나는 그 많은 책들 중에 역시 <말리와 나>를 읽었고 정보 서적으로는 지금은 제목도 기억 나지 않는 만화 같은 형식의 책 한 권을 읽은 것이 전부다. 이 책은 그 두 책 뿐 아니라 대부분의 개를 모티브로 한 책과 분명히 차별되는 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라면 무조건 읽어볼만한 책이자 관계에 대한 성찰, 나아가 그 관계들을 어떻게 영위하면서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 역시 읽어보면 참 좋을 책이다. (써놓고 보니 마치 자기계발서에 가까운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지는 않아요)

나는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인 - 예의 말리와 같은 종이다 - 우리 '두리'에 대한 사랑이 누구보다 지극하다고 자부하면서도 막상 개에 대한 애착이 지나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은 은연 중에 싫어했던 것이 틀림 없다. 또 어느샌가 자신을 무엇에도 깊이 빠지지 못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개에 대한 관심 역시 그래주길 바랬을 지도 모른다. 그래야 편하니까. 빠지면 힘들어지니까.

책을 읽어가면서, 나 역시 작가 캐롤라인 냅처럼 인간에게 지나친 애착심을 표현했을 때, 분명히 넘어가면 안되는 줄 알면서도 넘어간 경계선의 뒤를 밟아 버렸을 때, 그 결과가 꽤나 처참했던 기억들이 무의식에 깔려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당당하지 못하게 내 개를 사랑하고 있었던 거구나 라는 자각이 드니 슬쩍 자기연민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니까, 모두, 그랬다. 거의 모든 인간과의 사랑이 말이다. 

처음에는 분명히 서로가 반짝이는 순간이 있었고 둘만의 각별함을 둘만이 안다고 생각하여 시작되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혹은 물리적인 상황이 바뀜에 따라, 혹은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찬란하던 색깔은 흐려지고 바래지고, 매일이다시피 만나야만 풀렸던 초반의 그리운 감정을 미련하게 오래 전달하면 '부담을 느낀다'는 답변을 들어야 했다. 그런 부담이 생기지 않는 유일한 관계는 소위 '장애'가 있어서 포기할까 싶다가도 그 장애 덕분에 자꾸만 꺼져가는 불씨라도 활활 태우게 되는 관계 뿐이었다. 오래 사귄 친구 역시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변하면 견딜 수 없어 했고 나도 그렇지 않으리라는 장담을 할 수 없었다. 애착이 싹 터 오르는 순간을 즐기기는 했지만 지나치게 커진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 시작하면 어줍잖은 자존심을 챙기기 바빴고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일 지, 구차하지는 않은 지만 따지느라 정작 사랑은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났다. 어떤 상황에서도 솔직하게 내 사랑을 마음껏 표현한다는 건 , 인간사에서 불가능해보였다. 남과의 관계 뿐 아니라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서조차 , 우리 인간들은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상태에서, '두리'를 만났다. 

이쯤에서 나는 작가가 자신의 개 루씰에 대해 표현한 것과 전혀 다르지 않은 내용의 이야기를 반복할 수 밖에 없다. 

두리는 따지지 않았다. 두리는 어디로도 가버리지 않았다. 두리는 내가 너무 지나치다 싶은 애정을 주어도 귀찮아하기는 커녕 더욱 더 나를 따랐다. 두리는 내가 바쁘고 기분이 안 좋아서 애정을 주지 않고 내버려둬도 잠깐 나를 귀찮게 할 망정 비난하지 않았다. 두리는 나를 판단하지 않았다. 외모로도 판단하지 않았고, 지성을 가늠하려 하지도 않았고, 성격이 좋네 나쁘네 라고 평가하지도 않았다. 두리는 그냥, 나를 좋아하고 내가 자신을 그냥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우리가 함께 있는 시간에 나는 모든 것을 단순하게 바라볼 수 있는 깨끗한 마음을 선사 받는다. 우리 둘의 포근한 교감을 훼손할 나쁜 생각이나 골치 아픈 생각 따위는 그 순간 만큼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그것도 매번! 이것을 경험한 이상, 개를 키우는 행위가 '외로움에 대한 대안' 정도로 요약 되기에는 또 다르게 표현되어야 할 - 딱히 표현할 길이 마땅치 않은, 그러나 이 작가는 그 표현들을 너무나도 잘해주고 있어서 신기한 - 정서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걸 깨달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개를 안 키우는 사람들이 그 부분을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책을 읽고 무한 공감을 하면서도 다른 이들에게 섣불리 두리 이야기를 하기 힘들다만, 사진 한 장 올리고픈 마음은 억제하기 어렵다. ^-^; 



  눈이 펑펑 온 날에 신나게 뛰어 다니고 눈 뭉치를 먹던 두리가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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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4 13: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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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4 14: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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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4 22: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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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5 19: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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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i 2009-02-25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태그는 대G군, H군 보신용이군요...ㅎㅎ
두리는 겨울이 좀 행복해보여요. 털이 있어서 따뜻해도 보이고요. ^^ 사진 귀여워요.

치니 2009-02-25 19:18   좋아요 0 | URL
저 털이 사람에게는 옷 같은 작용을 하는지, 더워진다 싶으면 털 갈이를 해서 털을 숭숭 뽑아내요. 그게 옆에 있는 우리에겐 죽을 맛이지만 개 입장에서는 옷 갈아 입는 거죠. ㅎㅎ
태그가 그렇게도 읽히겠구나, 후후, 안 그래도 G군이 이 책의 제목에 아주 강한 불만을 표시했었죠. ㅋㅋ

2009-02-25 16: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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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5 19: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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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3 12: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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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3 13: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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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롬이 2009-12-25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리뷰글 보고 마음에 남아 인사남기고 갑니다.
두리 예뻐요. ^-^

치니 2009-12-26 10:54   좋아요 0 | URL
새롬이님, 반갑습니다. ^-^
두리 예쁘죠 ~ 헤헤.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한강 지음 / 비채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나에게는 굳이 표현하자면, 락 스피릿이 있는 모양이다.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가 싫다는 것은 아니지만, 가만가만 듣고 있자니 어느덧 숨이 조여져 오는 것 같았으니. 어쩌면 마음이 먼저 답답해 있으니 노래가 괜히 말썽이었을 거다. 미세한 바람에 파르르 떠는 작은 잎 같다가 폭풍우를 만나면 우어어 하고 있는 힘껏 목청을 돋우는 식의 노래들이었는데, 그 가사들이 시처럼 다가와야 좋을 시점에 영 다른 메마른 생각을 하고 있었어서, 첫 감흥은 물 건너 가버렸다. 음악에 있어서는 아직도 소녀인 양, 내가 좋아하지 않는 곡이 하나라도 나타나면 성마르게 도리도리를 해버리는 습관이 있는지라, 이 작가가 올린 리스트에 그런 음악이 끼어 있을까봐 괜히 조마조마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정태춘 박은옥이 들어가 있다. 그 꼭지를 읽고나니, 예의 답답한 듯 숨이 조여오는 노래의 느낌이 어디서 나왔는가 스스로는 알 것 같은 기분이 된다. 나는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이미지만으로 정태춘이 대국민(특히 대학생들) 상대로 거의 사기를 친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기억이 가물하지만 오래전 대학 시절에 그와 그의 부인인 박은옥씨를 축제에 불렀을 때 당연히 무료에 가까운 봉사를 해줄 것으로 착각하고 그들이 달라고 당당히 말했던 기백만원에 놀라 자빠졌던 경험 때문일 지도 모르겠지만, 그보다는 가사가 마음에 안 들어서 일거다. 송창식의 비슷한 가사들에는 마음이 끌렸는데 이들의 노골적인 사랑 노래에는 왜 그리 인색해지기만 했던지. 아마 대놓고 상업주의는 하지 않으면서 뒤로는 충분히 상업적이었다고 느껴지는 - 대중가수가 상업적이면 뭐가 어때서! - 분위기와, 당시 사회 상황에서 그들이 실제 한 것에 비해 지나치게 추앙 받는다는 느낌 따위에 편견으로 똘똘 뭉친 내가 어느새 낙인을 찍어버린 것임에 틀림없다. 이야기가 한참 삼천포로 샜다. 산문집을 먼저 읽고 본 작품을 나중에 읽는 두번째 작가가 될 한강 - 첫번째는 황인숙이었다 -, 에세이로만 보자면 그녀에겐 너무 유머가 없고 너무 진지하다. 자못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비교적 담백하게 적은 것 뿐인데도, 다 읽고난 느낌은 오래 앓는 친구를 지켜본 것처럼 무겁고 산뜻하지가 못했다. 아마 내게, 유머 강박증이나 진지함 거부증 같은게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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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 2009-02-10 0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싸 일빠! 혹시 나는 누군가와 경쟁을? ㅋ, 제가 이시간에 이러고 있는 이유는 어제는 좀 락스피릿 풍으로 술을 마셨다고 할 수 있고 어찌되었든 가만가만 마시질 못했고 그래서 새벽이 되자 뱃속이 상업주의적 반란을 일으켰는데... 아흑!ㅋ,

한강은 채식주의자 봤는데 소설도 좀 오래 앓는 친구느낌이 나긴 해요. 읽을만 하지만 보호본능을 일으키려는 혹은 일어나는 일어나야하는 진지함에는 발이 멈칫거려진다?


치니 2009-02-10 09:42   좋아요 0 | URL
^-^ 귀여운 니나님, 아직 숙취의 여운이 느껴지는데요. 요즘 술 못 마시게 되었다고 하시더니, 어제는 괜찮았던 거에요? 아무튼 술은 가만가만으로 시작하려다가도 대개 락 스피릿으로 끝나드라구요. ㅋㅋ
<채식주의자>가 <몽고반점>보다는 더 끌리는 편이라 다음 책은 그걸 볼까 하고 있어요. 음 근데 보호본능을 일으킨다는 말씀에 좀...

프레이야 2009-02-10 0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과의 만남도 타이밍이 맞을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전 이 책을 딱 그렇게 만났던 셈이에요. 좀 가뿐하지 못한 듯하면서도
은근히 서서히 다독여지는, 그런 느낌이랄까..
치니님 좋은아침 선물로 추천^^

치니 2009-02-10 09:44   좋아요 0 | URL
네, 정말요, 타이밍이 꽤 중요하게 작용해요.
마음이 너무 스산하고 짜증이 밀려오는데 억지로 읽은 것 같아요, 돌이켜보니.
그러니 괜히 책이 답답하고 가뿐하지 못하다고 더 투정을 한 셈이죠. 그런 상태가 아니었음 말씀대로 은근히 서서히 다독여지는, 그런 느낌 충분히 있었을 건데 아까워요.
아침부터 선물 받으니 기분 좋아요 ~ 헤.

이게다예요 2009-02-11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앓는 친구... 에서 웃을까 말까, 했어요. ^^
꽤 심통사나운 말이면서도 절묘한!!
아기가 자고 있는 아침, 너무 상쾌하네요. ㅋㅋ

치니 2009-02-11 11:05   좋아요 0 | URL
^-^;; 네 제가 적고도 심통사납다고 생각했으나, 그 느낌이 자꾸 들어서...
아기 치고는 늦잠 자는 아기군요, ㅎㅎ 보통 잠 습관은 엄마를 닮던데.
이렇게 다예요님 댓글 보니 저도 상쾌한 아침입니다 ~

이게다예요 2009-02-11 11:19   좋아요 0 | URL
늦잠이라니요,
새벽녁에 일어났다가 다시 자는거예요.
제가 이 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
지금은 제 무릎 위에 앉아서 마우스를 만지작 만지작. ㅋㅋ

치니 2009-02-11 16:28   좋아요 0 | URL
하하 역시, 아직은 그럴 때군요.
아기가 잘 때 잠시 짬이 나면 하고싶은 것들이 많아도 우선 같이 쪽잠부터 잤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많이 컸겠어요. 시간 되실 때 사진도 보여주세요 ~

2009-02-20 12: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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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0 12: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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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1 14: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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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1 20: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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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0 12: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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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0 12: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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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1 14: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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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1 20: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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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다이 獨 GO DIE - 이기호 한 뼘 에세이
이기호 지음, 강지만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언젠가 다른 블로그에 '소년이여, 야망을 (제발) 갖지 말아라'는 요지의 글을 끄적거린 기억이 난다. 아마 4-5년 전이었지 싶다. 

이기호 작가의 글을 읽고 있자면, 마치 그렇게 소년들에게 읍소했던 내 심정을 대변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그러니까 이 책의 제목 그대로, 소년들이 남들이 뭐라던 독고다이로 좀 살았음 싶은 내 그 때 심정이 맛깔나고 재미난 글 속에 속속 담겨 있는 것 같아서 흐뭇해지는 기분이다. 

그럼에도 이 책의 전체적인 점수는 별 세개. 재미있다고, 낄낄 거릴 수 있다고, 공감이 된다고, 간혹 눈물도 찔끔 난다고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지는 않은 책이라 그렇다. (벌써 많은 내용들이 가물가물하고, 기억 나는 것은 이기호의 아내가 참 멋진 여인인 것 같다는 정도)

한 뼘 에세이라는 제목으로 어느 일간지에 실었던 글들을 모은 것이라니, 그 소재와 표현공간의 제한성에 고개가 주억거려지는 일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일상에 대한 강렬한 공감이 오히려 작가만이 지니는 신선한 시각이나 저항적인 시각을 가려버리기도 하나보다. 어쩌면, 우리가 소위 블로거들이 쓰는 짧고도 공감을 주는 글들을 너무 많이 접해버렸기 때문에 차별화가 안되는 것일 수도.

공감의 파노라마가 지나고 나면, 작은 에피소드를 가지고 한 뼘 정도의 글로 써내는 재주가 참으로 부럽기는 하지만, 깊은 여운에 대한 갈증이 생기는 것이다. 

이래서 독자는 변덕스럽고 욕망의 덩어리이며, 끊임없이 더 달라고 칭얼대는 존재, 이런 야그는 무시하시고 계속 독고다이 하시다가, 멋진 장편소설로 짠! 나타나주시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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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7 02: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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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7 12: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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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자유다 - 수전 손택의 작가적 양심을 담은 유고 평론집
수잔 손택 지음, 홍한별 옮김 / 이후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읽는다는 행위를 보는 행위보다 상위 개념으로 두는 것이, 습관처럼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당연할진대, 우리는 언젠가부터 읽는 것처럼 하면서 보고 있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어김없이 책을 읽는다는 것에 대해서, 그 중에서도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 읽는 책이 아니라 문학작품을 읽는다는 것에 대해서, 알 수 없는 무력감과 창피함을 동시에 느낀다. 

수잔 손택을 접하기 위해 죽기 직전 4년에 걸쳐 강연한 원고들을 모아놓은 이 유고집을 택한 것은, 그런 점에서 잘한 일이다. 

문학작품(이 책에서는 소설을 주로 주제로 삼고 있지만)을 읽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의무에 가까운 행위인지 다시금 깨달았을 뿐 아니라, 최근 질할 같은 정세에 기가 죽었다가 타인의 고통에 무감해져가는 자신을 보며 소스라치게 놀라는 일이 한두번이 아닌지라 손택과 같은 문학인이자 활동가가 예술과 정치, 아름다움과 아름답지 않은 것에 대한 투쟁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온 역사를 책 속에서 가늠해보는 것은 내게도 옅은 희망을 주었기 때문이다. 

용기와 저항에 대해 손택이 했던 말만 잊지 않더라도 희망은 보인다. 아니 적어도, 어떻게 해야 잘 사는 건지 모르겠다는 소리를 하지 않게 된다. 

"용기 자체에는 도덕적 가치가 없습니다. 용기는 도덕적 가치가 아닙니다. 사악한 악당, 살인자, 테러리스트도 용감할 수 있습니다. 용기를 덕행으로 설명하려면 형용사가 하나 더 붙어야 합니다. "도덕적 용기"라고 말해야 합니다. 도덕과 무관한 용기도 있기 때문이지요.( .......................) 다시 말하지만 저항 자체에는 우월한 점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저항이 정당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저항하는 사람이 정의의 이름으로 주장하는 바가 옳으냐 그르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명분이 정당하냐 아니냐는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의 도덕성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그 사람의 도덕성에 뒷받침될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온전히, 정말 부당하고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상황에 대한 설명이 얼마나 진실한가에 달려 있습니다. (......................) 저항해 보았자 부당함을 막을 수 없다고 해서, 진심으로 깊이 숙고하여 자기가 속한 사회의 최선의 이익이라고 믿는 것을 위해 행동하는 걸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결국 위에 적은 글귀가 정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손택 여사는 (내게는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이 정답을 도출하기 위한 이야기들도 모두 참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하는 재주를 가졌다.  

이외에도 1부에서 다루고 있는 비평(이라기보다는 좋아하는 작품들에 대한 열렬한 찬사)들은 모르고 있었던 문학작품에 대한 (역시)열렬한 호기심을 일깨워주고 있어서, 내게 이 책을 계기로 더 깊고 황홀한 문학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는 것이 또 다른 장점. 

* 책 속에 나온 책들 (나중에 읽어보려고 적어둔다)   

- 안전통행증 (파스테르나크 작) 

- 바덴바덴에서 보낸 여름 (레오니트 칩킨 작) 

- 아르테미시아 (안나 반티 작) 

- 빅토르 세르주의 책들 

- 빙하 아래 (할도르 락스네스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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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3 11: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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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3 11: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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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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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시,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이 나를 자꾸 어디론가 데려가려 하는 것 같아서 못 견딜 때, 그 바람을 다독이고 나를 편안하게 잠 재워 줄 사람이 있다면, 누구라도 그런 사람은 평생 내 곁에 두고 말겠다는 욕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매일 새벽 세시까지 잠들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매일 북풍이 창가로 불어오는 날씨인 것도 아닌데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그 사람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져버려요. 

그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 10할에서 다만 1할이 모자라는 수준이라면, 9할이 모자란 사람보다 더 욕심사납게 1할을 갈망하고 사는 존재. 슬프지만, 변명하거나 비난하기보다는 그저, 우리 모두가 그런 존재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이 작가는 로맨스 소설이라는 이쁘장한 포장으로 슬며시 일러주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우리나라 영화 <접속>이나, 외국 영화 <유브 갓 메일>이랑 별반 다를 바가 없는 이 소설의 내용이 다 읽고나면 뜨끔한 구석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사랑한다고 여기는 사랑이, 정말 모두 사랑일까요. 진부하지만 다시 이런 질문을 되뇌이게 하는 힘이 있는 소설입니다. 누구도 함부로 좋아하거나 함부로 싫어하지 말라는, 말은 쉽지만 참 따르기 어려운 주문을 하고 있는 소설이에요.  우리는 정말, 다른 사람의 입장 같은 거, 제대로 생각하면서 사랑하고 있을까요. 어쩌면 사랑이라는 미명 하에, 특히나 얼굴이 보이지 않는 온라인 교감에서, 마음껏 내 주장만 하고 내 본연의 모습만 펼치는데서 자위하고 마는 걸 사랑이라고 오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버렸어요.

날만 밝으면 또 여의도 어디선가 병신 꼴깝 (죄송합니다. -_-) 하는 꼬락서니를 보고 열을 받느니, 난 그냥 말랑말랑한 로맨틱한 이야기나 읽을래 하고 집어든 이 소설은 그런 저를 비웃기라도 하듯 더 원초적으로 무거운 생각을 하게 만들어버렸지만, 그래도 참, 사랑스러운 소설이라는 점에서,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뻔한 줄다리기처럼 보이는데도 남과 여가 다른 무엇도 아닌 글이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마음을 표현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참 매력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작가의 다른 책들을 찾아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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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y 2009-01-09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을 착하게 가라앉히는 리뷰네. 제목에 끌려 찜해두었던 책인데.
제목 한줄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것 같아^^

치니 2009-01-09 12:25   좋아요 0 | URL
사실 언니가 좋아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곧 들었어. 그 이유는 읽어보면 알 것이네. 후후.

가시장미 2009-01-09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좋네요. ^^ 사실 이 책 저도 읽고 있는데..마침 이 리뷰를 보니 참 반갑네요!
소설 속 두 사람. 참 매력적이고 한치의 양보도 허락하지 않는 그 재치와 유머와 센스..
참 부럽다는 생각도 들고,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크크

치니 2009-01-09 13:37   좋아요 0 | URL
네, 재치,유머,센스를 쉼 없이 따라가다보면 어느덧 인생을 생각하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더군요. 연애소설, 정말 아무나 쓰는게 아니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 읽고 있는 중이시라니, 이거 좀 스포일러가 되나 싶기도 한데요. ^-^

2009-01-09 2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0 1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9-01-10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재미있는 연애 소설은 저도 오랜만이었어요. 대부분은 유치해지느라 재미가 휙 사라져버렸는데 말이어요.

치니 2009-01-10 12:18   좋아요 0 | URL
네, 그 점에서 작가의 역량을 높이 사게 되더라구요, 저도.
쥬드님이 올해에 가장 인상적인 책으로 꼽아놓으신 것도 이 책을 고르게 하는데 한 몫한 거 아시죠? ^-^

라로 2009-01-10 0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것 나름 재밌게 읽었어요~. 뭔가 가벼운듯 하면서 묵직한,,,묵직한 정돈 아닌가? 암튼ㅎㅎㅎ
조근조근 말하는 듯한 님의 리뷰가 정겨워요~.
새벽7시(요즘은 7시도 넘 어두워서리~) 눈이 내리나요?
여긴 내려요,,,^^

치니 2009-01-10 12:20   좋아요 0 | URL
가벼운 것도 무거운 것도 아닌, 이런 연애소설에 적합한 용량을 가진 센스가 돋보여였어요.
거긴 눈이 내리는군요. 아, 부러워요. 서울은 너무 오래 눈이 안오네요.

2009-01-11 2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1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니나 2009-01-12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재밌죵. 한번쯤 실행해보고픈?

치니 2009-01-12 17:56   좋아요 0 | URL
니나님도 읽으셨군요. 이 책이 알라디너들에게 인기가 좋네요. ^-^
실행은, 저더러 하라면 노우입니다. 아이고 골 아파라, ^-^;;

니나 2009-01-13 14:31   좋아요 0 | URL
저도 치니님 처럼 멋진 아들내미가 있다면 귀찮을 듯 해요 ^^(잠 안오는 날 치니님 서재 클릭클릭하다가 아드님 기타치는 동영상에 쓰러진~ )

치니 2009-01-13 15:10   좋아요 0 | URL
하핫, 니나님 그 옛날 동영상 보셨구나. 이젠 그 때의 보송보송함이 거의 사라지고 콧수염까지 났답니다.
음, 아들내미가 있어 든든하기도 하지만 (쿨럭 ㅋㅋ), 그보다는 제가 소위 줄다리기 라는 걸 못해서요.
연애할 때도 그냥 내가 좋으면 확 좋아하고 말면 말지,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고 그래보질 못했어요. 그러니 이 책의 여성처럼 행간을 잘 들여다봐야 하는 언어 구사를 하기란 글렀고, 상상만 해도 머리 아포요. ㅋㅋ

2009-01-12 14: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2 1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2 14: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2 18: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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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3 0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3 13: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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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6 1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6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9-01-18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이 작가의 다른 책을 찾아보고 싶었는데, 국내에 번역된 게 없는 것 같더라구요. 나오기만 해봐요, 어디. 쏜살같이 읽어주겠어요. 흐흣.

치니 2009-01-21 10:12   좋아요 0 | URL
저도 찾아봤는데 없드라구요. 이 책은 이메일이지만 대화체를 쓴 형식이라, 다른 형식에서는 어떤 필력을 보여줄 지, 그게 궁금한데 말이죠. 혹시 나왔는데 제가 모르면 다락방님이 쏜살같이 알려주시기에요 ~ :)

다락방 2009-01-30 08:08   좋아요 0 | URL
걱정마시어요, 치니님. 흐흣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