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자유다 - 수전 손택의 작가적 양심을 담은 유고 평론집
수잔 손택 지음, 홍한별 옮김 / 이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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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읽는다는 행위를 보는 행위보다 상위 개념으로 두는 것이, 습관처럼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당연할진대, 우리는 언젠가부터 읽는 것처럼 하면서 보고 있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어김없이 책을 읽는다는 것에 대해서, 그 중에서도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 읽는 책이 아니라 문학작품을 읽는다는 것에 대해서, 알 수 없는 무력감과 창피함을 동시에 느낀다. 

수잔 손택을 접하기 위해 죽기 직전 4년에 걸쳐 강연한 원고들을 모아놓은 이 유고집을 택한 것은, 그런 점에서 잘한 일이다. 

문학작품(이 책에서는 소설을 주로 주제로 삼고 있지만)을 읽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의무에 가까운 행위인지 다시금 깨달았을 뿐 아니라, 최근 질할 같은 정세에 기가 죽었다가 타인의 고통에 무감해져가는 자신을 보며 소스라치게 놀라는 일이 한두번이 아닌지라 손택과 같은 문학인이자 활동가가 예술과 정치, 아름다움과 아름답지 않은 것에 대한 투쟁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온 역사를 책 속에서 가늠해보는 것은 내게도 옅은 희망을 주었기 때문이다. 

용기와 저항에 대해 손택이 했던 말만 잊지 않더라도 희망은 보인다. 아니 적어도, 어떻게 해야 잘 사는 건지 모르겠다는 소리를 하지 않게 된다. 

"용기 자체에는 도덕적 가치가 없습니다. 용기는 도덕적 가치가 아닙니다. 사악한 악당, 살인자, 테러리스트도 용감할 수 있습니다. 용기를 덕행으로 설명하려면 형용사가 하나 더 붙어야 합니다. "도덕적 용기"라고 말해야 합니다. 도덕과 무관한 용기도 있기 때문이지요.( .......................) 다시 말하지만 저항 자체에는 우월한 점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저항이 정당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저항하는 사람이 정의의 이름으로 주장하는 바가 옳으냐 그르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명분이 정당하냐 아니냐는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의 도덕성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그 사람의 도덕성에 뒷받침될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온전히, 정말 부당하고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상황에 대한 설명이 얼마나 진실한가에 달려 있습니다. (......................) 저항해 보았자 부당함을 막을 수 없다고 해서, 진심으로 깊이 숙고하여 자기가 속한 사회의 최선의 이익이라고 믿는 것을 위해 행동하는 걸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결국 위에 적은 글귀가 정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손택 여사는 (내게는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이 정답을 도출하기 위한 이야기들도 모두 참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하는 재주를 가졌다.  

이외에도 1부에서 다루고 있는 비평(이라기보다는 좋아하는 작품들에 대한 열렬한 찬사)들은 모르고 있었던 문학작품에 대한 (역시)열렬한 호기심을 일깨워주고 있어서, 내게 이 책을 계기로 더 깊고 황홀한 문학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는 것이 또 다른 장점. 

* 책 속에 나온 책들 (나중에 읽어보려고 적어둔다)   

- 안전통행증 (파스테르나크 작) 

- 바덴바덴에서 보낸 여름 (레오니트 칩킨 작) 

- 아르테미시아 (안나 반티 작) 

- 빅토르 세르주의 책들 

- 빙하 아래 (할도르 락스네스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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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3 11: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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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3 11: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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