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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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시,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이 나를 자꾸 어디론가 데려가려 하는 것 같아서 못 견딜 때, 그 바람을 다독이고 나를 편안하게 잠 재워 줄 사람이 있다면, 누구라도 그런 사람은 평생 내 곁에 두고 말겠다는 욕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매일 새벽 세시까지 잠들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매일 북풍이 창가로 불어오는 날씨인 것도 아닌데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그 사람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져버려요. 

그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 10할에서 다만 1할이 모자라는 수준이라면, 9할이 모자란 사람보다 더 욕심사납게 1할을 갈망하고 사는 존재. 슬프지만, 변명하거나 비난하기보다는 그저, 우리 모두가 그런 존재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이 작가는 로맨스 소설이라는 이쁘장한 포장으로 슬며시 일러주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우리나라 영화 <접속>이나, 외국 영화 <유브 갓 메일>이랑 별반 다를 바가 없는 이 소설의 내용이 다 읽고나면 뜨끔한 구석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사랑한다고 여기는 사랑이, 정말 모두 사랑일까요. 진부하지만 다시 이런 질문을 되뇌이게 하는 힘이 있는 소설입니다. 누구도 함부로 좋아하거나 함부로 싫어하지 말라는, 말은 쉽지만 참 따르기 어려운 주문을 하고 있는 소설이에요.  우리는 정말, 다른 사람의 입장 같은 거, 제대로 생각하면서 사랑하고 있을까요. 어쩌면 사랑이라는 미명 하에, 특히나 얼굴이 보이지 않는 온라인 교감에서, 마음껏 내 주장만 하고 내 본연의 모습만 펼치는데서 자위하고 마는 걸 사랑이라고 오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버렸어요.

날만 밝으면 또 여의도 어디선가 병신 꼴깝 (죄송합니다. -_-) 하는 꼬락서니를 보고 열을 받느니, 난 그냥 말랑말랑한 로맨틱한 이야기나 읽을래 하고 집어든 이 소설은 그런 저를 비웃기라도 하듯 더 원초적으로 무거운 생각을 하게 만들어버렸지만, 그래도 참, 사랑스러운 소설이라는 점에서,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뻔한 줄다리기처럼 보이는데도 남과 여가 다른 무엇도 아닌 글이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마음을 표현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참 매력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작가의 다른 책들을 찾아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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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y 2009-01-09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을 착하게 가라앉히는 리뷰네. 제목에 끌려 찜해두었던 책인데.
제목 한줄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것 같아^^

치니 2009-01-09 12:25   좋아요 0 | URL
사실 언니가 좋아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곧 들었어. 그 이유는 읽어보면 알 것이네. 후후.

가시장미 2009-01-09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좋네요. ^^ 사실 이 책 저도 읽고 있는데..마침 이 리뷰를 보니 참 반갑네요!
소설 속 두 사람. 참 매력적이고 한치의 양보도 허락하지 않는 그 재치와 유머와 센스..
참 부럽다는 생각도 들고,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크크

치니 2009-01-09 13:37   좋아요 0 | URL
네, 재치,유머,센스를 쉼 없이 따라가다보면 어느덧 인생을 생각하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더군요. 연애소설, 정말 아무나 쓰는게 아니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 읽고 있는 중이시라니, 이거 좀 스포일러가 되나 싶기도 한데요. ^-^

2009-01-09 2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0 1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9-01-10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재미있는 연애 소설은 저도 오랜만이었어요. 대부분은 유치해지느라 재미가 휙 사라져버렸는데 말이어요.

치니 2009-01-10 12:18   좋아요 0 | URL
네, 그 점에서 작가의 역량을 높이 사게 되더라구요, 저도.
쥬드님이 올해에 가장 인상적인 책으로 꼽아놓으신 것도 이 책을 고르게 하는데 한 몫한 거 아시죠? ^-^

라로 2009-01-10 0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것 나름 재밌게 읽었어요~. 뭔가 가벼운듯 하면서 묵직한,,,묵직한 정돈 아닌가? 암튼ㅎㅎㅎ
조근조근 말하는 듯한 님의 리뷰가 정겨워요~.
새벽7시(요즘은 7시도 넘 어두워서리~) 눈이 내리나요?
여긴 내려요,,,^^

치니 2009-01-10 12:20   좋아요 0 | URL
가벼운 것도 무거운 것도 아닌, 이런 연애소설에 적합한 용량을 가진 센스가 돋보여였어요.
거긴 눈이 내리는군요. 아, 부러워요. 서울은 너무 오래 눈이 안오네요.

2009-01-11 2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1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니나 2009-01-12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재밌죵. 한번쯤 실행해보고픈?

치니 2009-01-12 17:56   좋아요 0 | URL
니나님도 읽으셨군요. 이 책이 알라디너들에게 인기가 좋네요. ^-^
실행은, 저더러 하라면 노우입니다. 아이고 골 아파라, ^-^;;

니나 2009-01-13 14:31   좋아요 0 | URL
저도 치니님 처럼 멋진 아들내미가 있다면 귀찮을 듯 해요 ^^(잠 안오는 날 치니님 서재 클릭클릭하다가 아드님 기타치는 동영상에 쓰러진~ )

치니 2009-01-13 15:10   좋아요 0 | URL
하핫, 니나님 그 옛날 동영상 보셨구나. 이젠 그 때의 보송보송함이 거의 사라지고 콧수염까지 났답니다.
음, 아들내미가 있어 든든하기도 하지만 (쿨럭 ㅋㅋ), 그보다는 제가 소위 줄다리기 라는 걸 못해서요.
연애할 때도 그냥 내가 좋으면 확 좋아하고 말면 말지,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고 그래보질 못했어요. 그러니 이 책의 여성처럼 행간을 잘 들여다봐야 하는 언어 구사를 하기란 글렀고, 상상만 해도 머리 아포요. ㅋㅋ

2009-01-12 14: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2 1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2 14: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2 18: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3 0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3 1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6 1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6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9-01-18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이 작가의 다른 책을 찾아보고 싶었는데, 국내에 번역된 게 없는 것 같더라구요. 나오기만 해봐요, 어디. 쏜살같이 읽어주겠어요. 흐흣.

치니 2009-01-21 10:12   좋아요 0 | URL
저도 찾아봤는데 없드라구요. 이 책은 이메일이지만 대화체를 쓴 형식이라, 다른 형식에서는 어떤 필력을 보여줄 지, 그게 궁금한데 말이죠. 혹시 나왔는데 제가 모르면 다락방님이 쏜살같이 알려주시기에요 ~ :)

다락방 2009-01-30 08:08   좋아요 0 | URL
걱정마시어요, 치니님. 흐흣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