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한강 지음 / 비채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나에게는 굳이 표현하자면, 락 스피릿이 있는 모양이다.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가 싫다는 것은 아니지만, 가만가만 듣고 있자니 어느덧 숨이 조여져 오는 것 같았으니. 어쩌면 마음이 먼저 답답해 있으니 노래가 괜히 말썽이었을 거다. 미세한 바람에 파르르 떠는 작은 잎 같다가 폭풍우를 만나면 우어어 하고 있는 힘껏 목청을 돋우는 식의 노래들이었는데, 그 가사들이 시처럼 다가와야 좋을 시점에 영 다른 메마른 생각을 하고 있었어서, 첫 감흥은 물 건너 가버렸다. 음악에 있어서는 아직도 소녀인 양, 내가 좋아하지 않는 곡이 하나라도 나타나면 성마르게 도리도리를 해버리는 습관이 있는지라, 이 작가가 올린 리스트에 그런 음악이 끼어 있을까봐 괜히 조마조마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정태춘 박은옥이 들어가 있다. 그 꼭지를 읽고나니, 예의 답답한 듯 숨이 조여오는 노래의 느낌이 어디서 나왔는가 스스로는 알 것 같은 기분이 된다. 나는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이미지만으로 정태춘이 대국민(특히 대학생들) 상대로 거의 사기를 친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기억이 가물하지만 오래전 대학 시절에 그와 그의 부인인 박은옥씨를 축제에 불렀을 때 당연히 무료에 가까운 봉사를 해줄 것으로 착각하고 그들이 달라고 당당히 말했던 기백만원에 놀라 자빠졌던 경험 때문일 지도 모르겠지만, 그보다는 가사가 마음에 안 들어서 일거다. 송창식의 비슷한 가사들에는 마음이 끌렸는데 이들의 노골적인 사랑 노래에는 왜 그리 인색해지기만 했던지. 아마 대놓고 상업주의는 하지 않으면서 뒤로는 충분히 상업적이었다고 느껴지는 - 대중가수가 상업적이면 뭐가 어때서! - 분위기와, 당시 사회 상황에서 그들이 실제 한 것에 비해 지나치게 추앙 받는다는 느낌 따위에 편견으로 똘똘 뭉친 내가 어느새 낙인을 찍어버린 것임에 틀림없다. 이야기가 한참 삼천포로 샜다. 산문집을 먼저 읽고 본 작품을 나중에 읽는 두번째 작가가 될 한강 - 첫번째는 황인숙이었다 -, 에세이로만 보자면 그녀에겐 너무 유머가 없고 너무 진지하다. 자못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비교적 담백하게 적은 것 뿐인데도, 다 읽고난 느낌은 오래 앓는 친구를 지켜본 것처럼 무겁고 산뜻하지가 못했다. 아마 내게, 유머 강박증이나 진지함 거부증 같은게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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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 2009-02-10 0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싸 일빠! 혹시 나는 누군가와 경쟁을? ㅋ, 제가 이시간에 이러고 있는 이유는 어제는 좀 락스피릿 풍으로 술을 마셨다고 할 수 있고 어찌되었든 가만가만 마시질 못했고 그래서 새벽이 되자 뱃속이 상업주의적 반란을 일으켰는데... 아흑!ㅋ,

한강은 채식주의자 봤는데 소설도 좀 오래 앓는 친구느낌이 나긴 해요. 읽을만 하지만 보호본능을 일으키려는 혹은 일어나는 일어나야하는 진지함에는 발이 멈칫거려진다?


치니 2009-02-10 09:42   좋아요 0 | URL
^-^ 귀여운 니나님, 아직 숙취의 여운이 느껴지는데요. 요즘 술 못 마시게 되었다고 하시더니, 어제는 괜찮았던 거에요? 아무튼 술은 가만가만으로 시작하려다가도 대개 락 스피릿으로 끝나드라구요. ㅋㅋ
<채식주의자>가 <몽고반점>보다는 더 끌리는 편이라 다음 책은 그걸 볼까 하고 있어요. 음 근데 보호본능을 일으킨다는 말씀에 좀...

프레이야 2009-02-10 0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과의 만남도 타이밍이 맞을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전 이 책을 딱 그렇게 만났던 셈이에요. 좀 가뿐하지 못한 듯하면서도
은근히 서서히 다독여지는, 그런 느낌이랄까..
치니님 좋은아침 선물로 추천^^

치니 2009-02-10 09:44   좋아요 0 | URL
네, 정말요, 타이밍이 꽤 중요하게 작용해요.
마음이 너무 스산하고 짜증이 밀려오는데 억지로 읽은 것 같아요, 돌이켜보니.
그러니 괜히 책이 답답하고 가뿐하지 못하다고 더 투정을 한 셈이죠. 그런 상태가 아니었음 말씀대로 은근히 서서히 다독여지는, 그런 느낌 충분히 있었을 건데 아까워요.
아침부터 선물 받으니 기분 좋아요 ~ 헤.

이게다예요 2009-02-11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앓는 친구... 에서 웃을까 말까, 했어요. ^^
꽤 심통사나운 말이면서도 절묘한!!
아기가 자고 있는 아침, 너무 상쾌하네요. ㅋㅋ

치니 2009-02-11 11:05   좋아요 0 | URL
^-^;; 네 제가 적고도 심통사납다고 생각했으나, 그 느낌이 자꾸 들어서...
아기 치고는 늦잠 자는 아기군요, ㅎㅎ 보통 잠 습관은 엄마를 닮던데.
이렇게 다예요님 댓글 보니 저도 상쾌한 아침입니다 ~

이게다예요 2009-02-11 11:19   좋아요 0 | URL
늦잠이라니요,
새벽녁에 일어났다가 다시 자는거예요.
제가 이 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
지금은 제 무릎 위에 앉아서 마우스를 만지작 만지작. ㅋㅋ

치니 2009-02-11 16:28   좋아요 0 | URL
하하 역시, 아직은 그럴 때군요.
아기가 잘 때 잠시 짬이 나면 하고싶은 것들이 많아도 우선 같이 쪽잠부터 잤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많이 컸겠어요. 시간 되실 때 사진도 보여주세요 ~

2009-02-20 12: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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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0 12: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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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1 14: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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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1 20: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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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0 12: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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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0 12: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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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1 14: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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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1 20: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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