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시는지요.
이렇게 한 줄 적고 나니, 잘 지내냐고 묻는 말 한 마디가, 그 어투가 다정하냐 건성이냐에 따라서 울고 웃던 시절이 생각나네요. 이 인사는 아무에게나 건넬 수 있어서 몹시 시시하다가도, 상대방이 정말 나를 궁금해하는구나 라고 느끼기만 하면 오랜 세월 묵어온 모든 질문을 하나로 명쾌하게 정리해주는 인사라서, 그랬던 거 같아요.
지금 저는 잘, 지내시냐고, 못내 목이 메어 어렵사리 온 마음을 담아 물어보고 싶지만, 솔직히 누구에게랄 것도 없는 편지를 쓰고 있으니, 예의 궁금함을 가득 담은 다정함과는 좀 거리가 있지 싶습니다.
그저, 오늘 따라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져서 말이에요.
어제는 하루종일 천둥과 번개와 벼락이 오락가락하는 날씨였어요. 마음도 역시 좀 그랬던가봅니다. 한달에 한두번 겨우 집에 와 자고 가는 아들 녀석이 낮잠을 자고 일어나더니 '속이 몹시 찌뿌등해'라며 인상을 찌푸리는 걸 보면, 내 마음이 그래서 그녀석에게까지 전달이 되었던가봐요.
시름이 있어도 훌훌 털어내는 것이 쿨하게 보이는 세상이라 그런지, 조금만 회색 마음이 오래 가도 안절부절인 건, 예전보다 더해지는 것 같아요.
자꾸만 지금 내 나이, 지금 내 상황, 즐기기보다는 그럼 앞으로 어떻게 살지? 라는 식의 생각만 하는 저를 보면서, 아마도 매우 태평스럽게 살아갈 당신을 부러워만 합니다.
돌아보지도 말고 내다보지도 말고 살아야할텐데, 라는 생각이 요즘 부쩍 자주 들어서 그런가봅니다.
오늘은 점심 시간에 우연히 들어간 넷 뉴스에서 클릭 클릭 파도를 타고 들어가다가, 노간지라는 이름의 동영상들을 보고 있자니, 다른 사람들처럼 '감동'스러운 것이 아니라 마음이 어째 씁쓸해집니다. 그야말로 왜 있을 때 잘하지 못하고, 이제 와서 그립다 그립다 하는 건가 싶어서요. 쉽게 욕하고 쉽게 추앙하고, 몰이해 속에서 이해하는 척 하는, 이런 세태에 저 역시 일조를 하고 있구나 싶어서요.
그리고, 제가 마구 사랑하는 시간, 누군가에 대한 행복감을 누리기 무섭게 곧장 '이것이 만일 깨어지는 날엔 어쩔까'라는 무용한 근심거리로 몰아가는 악습도 버리지 못해서요.
지나간 것도 앞으로의 일들도 그 때가 아니면 생각지 않고, 그저 지금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힘을 쏟고 지금 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잘하고 보듬으면 되겠는데, 왜 자꾸 그게 마음 먹은대로 안되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제가 우둔한 탓이겠죠.
오늘도 이곳의 날씨는 흐립니다. 어제만큼은 아니어도 또 비가 올 모양이에요. 날씨 따라 변덕이 잦은 제 마음은, 이미 몽롱해요. 어제만큼 부잡스럽지는 않아도 축 가라앉은게, 아무도 없는 수면 밑에서 혼자 심심하게 노는 물고기 같아집니다. 이 유영이 조금은 재미나고 행복한 유영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예요. 그리고 그 방법도 간절히 찾고 있기는 하죠.
아, 오늘은 오래간만에 집에서 밥을 해먹어야겠어요. 몽유병자처럼 세상에 발을 못딛고 돌아다니는 저의 초라한 단발성 허허로움은 어쩌면 근 십일 넘게 패스트푸드와 식당 밥, 술 안주 등만을 섭취하고 다녀서 빚어진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도무지 내용이라고는 없는 횡설수설인데다 푸념이 길었습니다. 그러나 이해해주시길. 어차피 보내지지 않는 편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