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끓는 에너지, 피 터지는 싸움, 불굴의 의지, 같은 말들은 비등점이 낮은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
나는 비등점이 지나치게 높거나, 아예 없는 상태로 게으름을 가장하고 무연함을 가장하여, 도식적인 생활을 자못 유연한 듯 포장하면서 들끓는 에너지로 피 터지는 싸움을 하며 불굴의 의지를 불태우는 사람들을 소 닭 보듯 하는 것에 대한 자책감을 사전 차단해 왔던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지나친 자기합리화, 자기중심선언으로 내 멋대로 산답시고, 모든 사람들을 등 돌리게 하는 것은 아닌가.
갑자기 두렵다.
비가 쏟아지는 밤, 한번 깬 잠이 도무지 다시 들어올 기미가 보이지 않은 채 까만 천정을 감은 눈으로 응시하며 드는 생각들은 온통 두려움.
이렇게 살아서는 안돼, 라기보다는 이렇게 살아야 돼 라는 생각을 더 하고 싶다만은, 역시 그놈의 불굴의 의지도 긍정성도 부정성도 없는 상태라 여의치가 않다.
해묵은 공상과 유효기간이 이미 끝나버린 추억들을 끄집어내어 두려움의 불씨들을 소화 하려 하지만, 소화는 커녕 그것들이 대체 무슨 위로가 되나 하고 한숨만이 거세어지더라.
오늘은 오늘의 태양이 뜨지 않았고, 오늘의 비가 내렸다.
더 고민하고 더 찾아내라는 뜻일게다. 아직 내게 비춰질 태양 빛은 가물가물하다.
쉽게 결단하고 쉽게 걸음을 내 딛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닌 줄은 예전부터 알았다고 생각했건만, 아직 모르고 깝치는 거다.
더 살자, 일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