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좋은 문장을 만나면 공책에 옮겨 적고 싶어지는 것처럼, 동화책을 읽다 보면 따라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만나기도 한다. 나처럼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도 왠지 따라 그릴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내 손으로 그려보고 싶을 만큼 정이 가는 그림이다. 이를테면 김유대가 그린 개돌이(『학교에 간 개돌이』)가 그렇다. 빡빡하게 난 짧은 털이며 좀 어벙해 보이는 눈이 영락없는 시골 개다. 만지면 손에 어떤 냄새가 묻을지 알 것만 같은 친근한 개. 그런데도 따라 그리자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친근하면서도 개성 있는 김유대의 그림은 인상적인 ‘캐릭터’를 만들기에 딱 맞다. 『김치는 국물부터 마시자』『떴다 떴다 김치치』는 야채족 마을에서 쫓겨난 김치치가 인간들과 어울려 살면서 겪는 일을 그린 이야기다. 날마다 배추김치 한 통을 먹어야 기운을 쓰는 야채족 김치치를 김유대는 배추 같은 얼굴을 한 낙천적이고 활달한 인물로 형상화했다. 김치치가 이를 다 드러내고 시원하게 웃는 모습은 사진 찍을 때 외치는 “김치”를 연상시킨다. 깍두기를 좋아하는 그의 친구 깍두두 역시 이름에 걸맞게 각진 얼굴에 무 다리다. 동화의 묘사를 그대로 옮긴 것이라 해도 이만큼 친근하게 그려낸 것은 분명 화가의 공로다. 그림 전체의 주조색을 김치를 연상시키는 빨강과 초록으로 한 것도 재미있다. 거의 내내 김치의 우수성을 설파하는데도 이야기가 평면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데는 이런 세심함이 한 몫 했을 것이다.


김유대는 동화, 동시, 그림책, 논픽션 등 다양한 분야의 책에 많은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의 그림은 표정과 몸짓이 과장되고 구도가 분방해서 만화 같기도 하고 어린이가 그린 그림 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자칫 비슷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상관없다. 그가 아니면 누가 어린이 마음속의 화가 만들어낸 괴물을 그렇게 속 시원하게 그리고(『싸움 괴물 뿔딱』), 태국인 할아버지의 깡마른 몸에 넘치는 힘을 유쾌하게 그리며(『무에타이 할아버지와 태권 손자』), 그가 아니라면 누가 중증장애아의 뒤틀리는 몸을 저렇게 당당하게 그릴 수 있을까(『도토리 사용 설명서』). 인물의 매력을 크게 보는 돋보기를 가진 화가가 앞으로 더 많은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가 그린 동화 캐릭터로 가방도, 수첩도, 스티커도 나왔으면 좋겠다. 곁에 두고 자주 보면서 열심히 따라 그리다 보면 나도 언젠가는 개돌이도 김치치도 비슷하게 그릴 수 있지 않을까?















* 계간 『창비어린이』 2016년 봄호에 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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