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를 그릴 수 있을까? 화가 정문주의 그림을 보면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돌봐줄 사람 없이 홀로 끼니를 걱정하며 사는 공주네 집의 곰팡이 냄새 나는 공기도( 이은정 『소나기 밥 공주』), 동생에게 가려져 관심 받지 못한 채로 도벽이 생겨버린 수현이네 널찍한 거실 공기도(방미진 『금이 간 거울』), 우정을 지킬 줄 몰랐던 자신에게 실망한 재희가 서성이는 지하도의 차가운 공기도(최나미 『셋 둘 하나』) 화가는 그려냈다. 축축하거나 말끔하거나 서늘한 푸른색으로 그린 공기는 인물이 처한 환경뿐 아니라 인물의 기분까지 묘사한다. 화가는 특이한 기법을 동원해 강렬한 인상을 만들기보다 이야기의 분위기를 잘 전달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독자 역시 푸른색 공기 속에서 인물의 마음이 되어 보라고 하는 것 같다.


화가는 보이지 않는 공기로 분위기를 보여주듯이 보이지 않는 얼굴로 표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정형외과 출입금지 구역』(신지영)의 진솔이네는 고향인 시골을 떠나 도시의 작은 병원 곁방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병원 허드렛일을 하면서 ‘직원 외 출입금지 구역’에서 살게 된 것이다. 도저히 집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단칸방의 옹색한 삶이 부끄러워서, 진솔이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다시 찾아간 시골집이 폐허가 된 걸 보고는 돌아서서 울고, 병원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면 잔뜩 움츠린 채 고개를 들지 않는다. 잘못을 추궁하는 어른들을 피해 ‘출입금지 구역 밖으로’ 뛰쳐나갈 때도 진솔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을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독자가 대신 주인공의 얼굴을 하고 책을 읽게 된다.


정문주의 세심한 그림들은 사춘기 초입 아이들의 불안하고 쓸쓸한 심리를 잘 드러낸다. 그렇다고 마냥 괴롭고 혼란스러운 것은 아니다. 부드러운 선과 차분한 색감, 동글동글한 인체 묘사 덕분이다. 또 『바보 1단』(김영주) 같은 저학년 동화에서는 여기에 유머와 활기를 더한 그림으로 ‘1단 밖에 못 외우는 바보’들을 응원한다. 손발이 큼직하고 움직임도 시원시원해 즐거운 그림이다. 그렇지만 나는 어쩐지 푸른색 공기와 보이지 않는 얼굴들에 더 마음이 간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책 속의 분위기에 젖어, 주인공의 마음을 생각해보는 시간이 좋아서다. 화가의 마음도 비슷할 것 같다.













* 계간 『창비어린이』 2016년 여름호에 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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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6-07-03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기를 그린다,저도 참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 지더군요.비싼 카메라오 유명한 라이카를 쓰는 사람들이 흔히 공기도 찍을수 있다고 자랑(비싼 카메라를 쓰는 이유에 대한 자기변명이긴 한데..)하던데 정말 공기 모습을 어떨지 궁금해 집니다^^

네꼬 2016-07-03 20:4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카스피님. 저도 그림을 보기 전에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보고 나서야, 아 이게 공기구나, 싶더라고요. 화가들은 정말 멋져요. 저는 강아지발(=제 손)을 써서 요새 그려보고 있는데 (이하생략)

기회가 되시면 감상하시면 좋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