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페미니스트 - 불편하고 두려워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사이행성 / 201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쁜 페미니스트』를 읽었다. 긴 책을 잘 못 읽는 나도 어렵지 않게 읽을 만큼 재미있는 책이었다. 저자는 미국의 영화, 드라마, 쇼, 대중음악 등 다양한 문화 매체에 드러나는 문제들을 지적한다. 미국식 실용적 글쓰기일까? 아주 효율적으로 줄거리와 메시지를 요약하면서도 논지를 잃지 않는 점이 좋았다. 게다가 대중문화에 스며든, 아니 뿌리 박힌 여성 혐오 정서와 피해자를 비난하고 가해자를 걱정하는 성폭력 뉴스 얘기는 우리나라의 상황과 거의 정확하게 일치한다.


인종 차별주의에 대한 자세하고도 진보적인 비판도 밑줄을 그어 가면서 읽었다. 예를 들어 성공한 흑인이 '문화적으로 용인된 방식으로' 성공해 차별을 이겨내야 한다고 설파하는 데 대한 비판,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노예 서사(기록적인 영화)를 넘어선 새로운 이야기 요구 들이 그랬다. 미국에 살고 있는 흑인들의 이슈는 한국인 여성에게도 별다르지 않게 적용된다. 성공한 여성 CEO가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발언권을 얻을 수 있다고 어린 여성을 몰아붙이는 일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완성한 위안부 기록 영화이니 부적절한 강간 장면을 문제 삼지 말자고 하는 일, 우리나라 상황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내가 이 책에 밑줄을 그은 부분은 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은 부분보다 동의를 표시하고 싶은 부분이다.


그런데 나는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저자의 포지셔닝에 의문이 들었다. 추천사에서도 이야기되고 책 전체에서 이해되듯 여기서 '나쁜'은 도덕적으로 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여기에는 몇 겹의 의도가 있는 것 같다.


먼저 저자 자신이 완벽한 이론가 또는 운동가가 아니라는 점을 어필해서 더 많은 논의를 자유롭게 시작할 무대를 만든다. 이것은 좋은 전략이다. 독자들도 기꺼이 가벼운 마음으로 저자의 얘기를 들을 수 있다. 그런데 때로 이 가벼움이 문제 제기 이후 손을 떼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남성 파트너의 폭력을 용인하는 여성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데 그치는 것이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내용의 얼토당토않은 부분을 지적하느라 이 책에 열광한 사람들에 대한 분석이나 비판을 덮는 것 등이 그랬다. 물론 나 역시 저자에게 완벽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오슬로 테러 사건 때 노르웨이 국왕의 기품 있는 성명에 대해 '비극이. 부르면. 연민이. 응답한다.'는 아름다운 문장을 쓴 저자가, 사건 이후 받은 신경을 거스르는 전화에 대해 '비극이. 부르면. 전화벨이. 응답한다.'고 스스로 비튼 것은 별로 재치 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아직 비극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있었으니까. 그 밖에도 더러 꼭 필요하지 않은 재치를 만나곤 했다. 그래도 너무 딱딱하기만 한 책보다는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나쁜 페미니스트'를 자처한 더 중요한 이유는 페미니즘이 완결된 하나의 이념이 아니며 페미니스트에도 다양한 결이 있다는 걸 상기시키기 위함일 것이다. 그래서 '완벽주의 또는 근본주의 페미니스트'라는 게 있다 치고 그걸 공격하는 사람들을 비판한다. 물론 '완벽주의 또는 근본주의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이들도 있으므로 그들도 비판한다. 나도 동의한다. 나도 제사를 좋아하는 페미니스트니까. 문제는 이런 저자가 자신이 왜 '나쁜 페미니스트'인지 설명하는 대목이다. "이런 내가 멋대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고 다니다니 진정 훌륭한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죄송스럽다."라면서 든 이유들. 그것은 자신이 독립적이기 원하면서도 가족에게 의지할 때가 있다는 것, 때로 여성비하적인 노래에 흥이 나고, 재미로 보그 잡지를 읽는다는 것, 차에 대해 모르지만 알고 싶지 않다는 것, 남자를 좋아한다는 것 등이다. 이게 '나쁜/부족한' 일일까? 인간적으로도 그렇지 않고, 페미니즘적으로도 그렇지 않다. 페미니즘은 완벽한 게 아니라고 저자도 말했는데, 완벽하지 않은 자신은 왜 '나쁜/부족한' 페미니스트란 말인가? 아무래도 모순된다.


페미니즘은 모든 지점에서 평등을 지향한다. 이 큰 이념 안에서 대립되는 이념들이 있고, 합의가 되지 않는 대목이 있으며 꼭 합의해야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페미니즘이라는 큰 틀의 합의는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페미니스트 개인은 완벽한 인간이 아니지만, 잘못과 실수를 인정하고 고쳐가는 것은 결국 결국 완벽을 추구하는 길이다. 죽을 때까지 완벽하지 못할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완벽하려고, 즉 모든 점에서 평등을 이루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에서 밝혀진 바, 저자는 '나쁜/부족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한 명의 페미니스트'이다. 심지어 이 책을 쓸 만큼 훌륭한 페미니스트다. 그런 저자 자신을 나쁘다/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에 진짜 완벽한 페미니즘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책의 좋은 점에 대해서는 많은 리뷰가 있고, 나 역시 대부분의 평과 생각이 비슷하다. 확실히 좋은 책이다. 더 많이 읽히고 더 많이 얘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가 어지간하게 만든 흑인 영화나 드라마에 만족할 수 없던 것과 비슷한 이유로 이 책에 만족하지 못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나는 이 책을 무척 좋아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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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6-07-07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속이 시원해요, 네꼬님. 읽지도 않고서 평만 보고도 뭔가 이 책이 마뜩치 않았던 부분을 이렇게 속시원하게 써주시다니! 특히 마지막 문단은 달달 외우고 싶을 만큼 제 생각과 일치합니다. (생각은 일치하면서 글은 절대 이렇게 못 쓰는 스스로에게 약간 자괴감 ㅠ)

네꼬 2016-07-08 09:22   좋아요 0 | URL
치니님.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생각할 것도 많이 있는 좋은 독서였어요. 읽으면서 생각한 걸 정리하고 싶어서 (왠지 좋은 책에 토다는 것 같아서 망설이기도 했지만) 적어 봤습니다. 이렇게 늘 격려해주시니 저는 늘 감사합니다.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