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 이어폰이란 걸 써본 중학생 때 알게 된 게 있다. 어떤 음악을 듣고 있는가에 따라 보는 풍경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중학생 네꼬는 그때 왬!의 Careless Whisper를 들으며 걷고 있었는데 심장에 어찌나 강한 전류가 흘러들었는지. 주위를 살펴보니 옆에 걷고 있는 언니 오빠 아저씨 아줌마 강아지 들이 제각기 곧 터질 울음을 간신히 참고 마지못해 걷는 것처럼 보였다.
운전 중 횡단보도 앞에 차를 세우고 막간을 이용해 CD를 바꾸면, 같은 풍경인데도 음악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비오는 아침, 귀여운 비옷을 입고 우산을 쓰고 길을 건너는 초등학생들이, 슈베르트의 가곡에 맞추어 우아하게 걷기도 하고, 린킨파크의 롹에 따라 생(生)을 걸고 학교에 가는 전사처럼 보이기도 하고, 김광석의 음악에 따라 인생의 비의를 알아버린 시인처럼 걷기도 하는 것이다.
친구들의 미니홈피를 방문하다 보면 음악 때문에 놀랄 때가 많다. 얘가 이런 음악을 다 듣네? 하고 그들의 리스트를 살피기도 하고, 설정해 놓은 음악을 배경으로 사진을 보면서 친구의 현재 마음의 상태를 가늠해보기도 한다. 선곡이 정말 좋은 홈피를 발견하면, 다른 일을 할 때도 그 홈페이지를 열어두기도 한다. 다만, 때로 음악이 내가 친구의 마음을 너무 넘겨 짚게 하는 것 아닐까 조금 걱정도 하면서.
그런데 알라딘 서재에는 음악을 설정하는 기능이 없다. 나는 이 점이 참 마음에 든다. 물론 음악이 있다면 한편으로는 더 풍성한 느낌을 주겠지만, 나는 아무런 편견 없이 이웃들의 글을 읽게 해주는 지금이 더 좋다. 그리고 이런 게 있다-- 그러니까,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아무 설정이 되어 있지 않아도 가끔은, 서재에서마다 다른 음악이 들려오는 것만 같을 때가 있는 것이다.
다락님의 서재에서는 들릴 듯 말듯 콧노래가 들리고, 꽃양배추님 서재에서는 도어즈의 외침(!)이 들리고, 몽님 서재에선 심벌즈 연주가 들린다. 혜경님 서재에서는 우아한 피아노 연주곡이, 아프님 서재에서는 팻 매스니 연주가, 무스탕님 서재에서는 젓가락 행진곡이, 메피님 서재에서는 마징가 제트가 들린다. 그런가 하면 마노아님 서재에서는 여행스케치 노래가 들리고, 산사춘님 서재에서는 경극(!)이 들린다. 산타님 서재에선 캐롤이 들린다고 하면 너무 단순해 보이겠지만 난 캐롤을 좋아하니까 뭐! 향기님 서재에서는 편안한 재즈가, 한사님의 서재에선 엄정한 클래식이, 민서님 서재에서는 동물원의 노래가, 도넛공주님 서재에선 씩씩하게 부르는 현대판 동요가, 엘신님 서재에서는 모스 부호 소리가(응? 이건 음악이 아닌가?) 들린다. 홍수맘님 서재에선 "시리동동 거미동동"이, 요즘 잘 보이지 않는 션님의 서재에서는 기타 연주가 들리고, 주이님 서재에선 인디밴드의 연주곡이 들린다. 특히! 우리 교주 체셔님 서재에서는 귀엽고 야한 올드팝이 들린다. (다들 동의를 하시든 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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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에 대해서는 시간이 더 지나고 얘기하고 싶다. 그래서 지금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을 때이다. 하지만 조만간 내 서재의 방문 수가 5,000번을 넘어설 것 같아서 뭐라도 적고 싶었다. (설마 4982에서 끝나진 않겠죠?!) 인기 서재들에 비하면 소박한 숫자이지만, 게으른 네꼬 씨의 랜덤한 운영과 싱거운 글들에 비하면 당황스러울 만큼 과한 숫자다. 우연이었든 일부러의 관심이었든 5,000번의 관심을 받았다니, 개근상 받았을 때처럼 쑥스러우면서도 자랑스러운 기분이다.
5,000번, 여길 오신 분들은 어떤 음악을 들으셨을까? 기왕에 쑥스러운 김에 솔직하게 말해보자면 나는 나의 서재가 오르골 소리를 냈으면 좋겠다. 비누방울처럼 가볍게 손가락과 얼굴을 간지럽히고 아련하게 무언가를 떠오르게 하지만 꼭 지금 기분이 어떻다고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소리. 들으면 언제나 기분이 좋아지지만, 감은 태엽이 다 풀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뚝 끊기고 마는 그런 소리. 그래서 당신의 일상을 조금도 침범하지 않는 그런 서재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