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 1000명의 죽음을 지켜본 호스피스 전문의가 말하는
오츠 슈이치 지음, 황소연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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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죽음을 피해 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죽음 앞에서는 직업의 귀천이나 사회적 지위 따위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누구에게나 병은 갑자기 찾아온다. 두 명에 한 명꼴로 암이 발생한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자신에게는 병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다. 다만 죽을 때 후회하지 않기 위해 지금부터 삶의 태도를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오랫동안 말기 환자를 진료했던 호스피스 전문가가 말했듯이 건강할 때 내일 죽을 것처럼 열심히 살아간다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삶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최근 들어 죽음에 관한 책을 자주 읽게 된다. 나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죽음은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라 곧 나의 이야기이자 우리의 이야기다. 암이라는 병은 초기에는 자각할 수 없다가 말기가 되어서야 알게 된다고 한다. 손써 볼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을 때 증상을 발견하게 된다. 호스피스 의사는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환자들과 그의 가족들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의 방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안내해 준다. 생명을 일분일초 단순히 연장하는 연명치료보다는 의미 있는 마무리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완화 치료를 권하는 것도 의료의 방법 중에 하나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환자마다 후회하는 유형은 여러 가지이지만 공통점은 주어진 시간이 짧다는 점이다. 꼭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후회하는 것들을 꼭 해 보고 싶다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고 한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이 길든 짧든 간에 우리에게 주어진 순간을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덜 후회하지 않을까 싶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내뱉은 환자들의 후회의 한 마디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불평하지 말고 살아 호흡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하며 살게 된다.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매 순간 웃으면서 지낼 수 있게 된다. 대수롭지 않은 작은 일에 평정심을 잃을 필요가 있을까? 머리끝까지 분노를 낼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오늘 우리가 평범하게 살고 있는 이 하루는 중환자실에서 임종을 앞두고 있던 환자들이 그토록 살기를 바라던 하루였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이 나온다.

삶의 건조하고 의미 없다고 느껴질 떼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보시라. 지금 당장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 자체가 사치라고 생각될 것이다. 죽음보다 두려운 것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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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교육은 야만이다 - 김누리 교수의 대한민국 교육혁명
김누리 지음 / 해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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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기 대표적으로 인류에게 야만적인 행위를 저지른 나라가 바로 독일이다.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은 국가적 테러를 넘어 비인간적인 모습의 끝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고 반면교사로 삼아 이런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 위해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할 역사적 기억으로 남아 있다.

특히 자국에서 일어난 부끄러운 역사를 씻기 위해 독일은 절치부심 끝에 해결의 실마리를 교육에서 찾기 시작한 것 같다. 그 이유는 불과 한 세기가 지나가기 전에 자신의 선조들이 저질렀던 과오를 다시 밟지 않기 위해 교육의 변모를 과감히 시도했기 때문이다. 이름하에 독일의 교육혁명, 교육개혁이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독일의 변방 작은 시골 마을인 보이텔스바흐에서 좌우의 지식인들이 모여 일종의 정치 에티켓을 논의하고 협약을 이끌어낸 '보이텔스바흐협약'을 보더라도 독일 교육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독일은 철저히 주입식 교육을 금지한다. 구구단을 외우도록 강요하는 학부모에게 경고를 날릴 정도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학문의 원리를 자신만의 방식대로 깨달을 수 있도록 해야 된다는 교육 철학이 독일 교육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즉 비판적 사유 능력을 길러주어 권력의 독점을 철저히 경계하도록 교육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독일의 비판적 사유 능력 기르기 교육은 책 읽기에서 시작된다. 그들의 대학 입학시험인 아비투어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독서에서 시작된 깊은 사유 습관이 오랫동안 쌓이지 않으면 분석하고 평가할 수 있는 글쓰기 능력이 나올 수 없다. 아비 투어의 역사 시험만 하더라도 300분의 시간 안에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야 하는 고도의 지적 능력이 요구된다. 책 읽기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A=B라는 식의 단답형 답을 찾아내는 교육이라든지 네 개 또는 다섯 개 중에 정답 하나를 고르라는 교육은 잠재적인 파시스트를 키워내는 위험한 행위라고 독일은 말한다. 경쟁이 발전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논리로 컴퓨터에게 채점을 일임하고 우수한 자원들은 고소득이 보장되는 의과대학에 쏠리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한국 교육과는 크게 대조되는 부분이다.

독일 교육개혁의 모토가 되었던 것이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라는 말이다. 독일의 철학자 테오도 아도르노의 말이기도 하다. 경쟁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독특한 이데올로기 즉 신념이라고 정의하며 자본의 권력에 교육이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독일은 누구에게나 대학 입학이 보장되어 있다. 시기와 방법이 다를 뿐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대학의 본연의 기능을 발휘하면서 경쟁 교육을 통하지 않고서도 노벨상을 다수 배출하는 교육 강국이 되었으며 무엇보다 세계적 리더 국가의 지표라 할 수 있는 포용성 지수가 난민 수용이라는 정치적 결단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타인을 이겨야만 승리를 할 수 있는 경쟁 교육에서는 나타날 수 없는 기현상이 독일에서 일어나고 있다.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모습이 오히려 기현상으로 불리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지금 우리 사회는 경쟁을 우상화하고 있지 않은가 돌아볼 때다.

현재 우리나라도 의료개혁, 교육개혁 등 각 분야에서 낡은 제도를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옷을 입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기득권의 저항이 만만치 않지만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본다. 김누리 교수의 대한민국 교육혁명에 관한 생각들이 작은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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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류시화 지음 / 더숲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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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급함은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조급함은 후회의 지름길이다. 편견은 관계를 단절시키고 비판은 대화를 중단시킨다. 교감으로 산다는 것은 욕 얻어먹는다고 생각해야 편하다.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 일개의 교감 한 사람이 학교의 수많은 일들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에는 실수가 있고 과오로 남는 일이 부지기수다. 수학 공식처럼 딱 떨어지는 문제라 할지라도 공식에 문제 삼는 경우가 사람 사는 세상에 비일비재하다.

잘 마무리된 것 같은 학부모 민원도 다음날이 되면 억울하다고 경직된 얼굴로 찾아오는 다른 편의 학부모가 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한다. 학교가 잘 대책을 세우라고 한다. 정답이 없는 문제를 던진다. 그렇다고 해서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하면 이번에는 학교를 상대로 문제를 제기할 판이다. 원론적인 답변을 하는 선에서 마무리를 하지만 대화의 대부분은 속상한 점을 다독거리며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라는 말처럼 우리 어른들이 한 발자국씩 멀찍이서 기다려는 주는 마음을 갖자는 식으로 위로의 말을 건넨다.

학기가 시작되고 네 번째 민원 접수다. 해답이 없는 민원이다. 화가 난 감정을 받아주는 것이 전부이고 학교로써는 좀 더 관심을 가지겠다는 말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이다. 사실 이런 말을 해 주고 싶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류시화 시인의 말처럼 삶은 설명을 듣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고 외부 상황에 대한 지나친 해석으로 내면의 전투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일은 인간 심리의 흔한 측면이다. 축복 blessing이라는 말은 프랑스어 '상처 입다 blesser '와 어원이 같다고 한다. 축복을 셀 때 상처를 빼고 세지 말아야 할 이유다. 파도가 후려친다는 것은 새로운 삶을 살 때라는 뜻이며 시도와 모험을 가로막는 것을 제거해야만 낡은 삶을 뒤엎을 수 있다. 교감으로 산다는 것도 편안한 삶을 살겠다는 생각은 애당초 갖지 말아야 한다. 교감의 삶이 상투화된다는 것은 자신을 절벽으로 밀어내는 것과 동일하다.

무엇을 보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보는가, 무엇을 듣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듣는가, 무엇을 느끼는가 아니라 어떻게 느끼는가가 교감의 삶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단단하게, 노련하게.

나는 교감의 일상을 매일 글로 남기고 있다. 마라톤 선수가 달리기가 쉬워서 달리는 것이 아니듯 글쓰기가 쉬워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계속 글을 쓰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글을 잘 써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계속 글을 쓰기 때문에 쓰게 된다.

교감으로 사는 삶이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알겠는가. 나 자신도 모를 때가 많다. 힘든 순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날도 있다. 좋은지 나쁜지 판단하기보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내려고 노력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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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테크로 확! 잡는 기초학력 -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모두를 위한 기초학습
김현숙 외 지음 / 앤써북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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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현장에 에듀테크가 도입되면서 교육 활동의 변화가 급속도로 바뀌고 있다. 특히 교사보다 현재 아이들의 에듀테크 접근 수준이 높아지면서 고민 또한 깊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반면 기술이 발달하면서 아이러니하게 등장하는 것이 문해력 저하 및 기초 학력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아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래전부터 기초학력 해결은 교육 관계자라면 간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의무이자 답을 찾아야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다인수 학급, 다양한 특성을 가진 학생들을 개별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학교 현실에서 학력과 흥미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고자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 것이 지금까지의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교육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기술적 도입을 권장하는 것이 에듀테크의 기본 방향이다. 다시 말하자면 기술로 대변되는 테큽보다 교육을 뜻하는 에듀가 우선이라는 말이다. 교육을 위한 테크 활용은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에듀테크는 시공간을 넘어 교사가 꿈꾸던 교육적 계획들을 펼쳐나가는데 희망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싶다. 다만 무엇이든 적재적소에 활용하고 배치하는 것이 금과옥조이듯이 에듀테크 또한 긍정적인 측면을 바라보고 활용한다면 교사들의 고민을 한 방에 날려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특히 기초학력 해결이라는 교육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에 에듀테크는 충분히 활용할 가치가 있음을 다방면에 걸쳐 확인되고 있다. 기초학력 진단에서부터 시작하여 학습능력 진담검사, 정서 심리 영역 검사, 학습 지원 역량 진단 검사, 학습유형 검사, 학습 저해요인 검사, 정서행동환경검사 등 검사 도구를 활용한 기초학력 해결을 위한 노력들은 과학적, 객관적 기반 아래 정밀하게 접근하는 것이 신뢰도가 높을 것이며 더불어 에듀테크의 활용은 시간적으로 절약될 뿐만 아니라 피드백 차원에서도 유용하리라 생각된다.

학습 지원 대상 학생을 지원하기 위한 법률도 제정되었고 최근 들어 특수교육의 경계에 있는 학생에 대한 지도가 많은 이들의 관심 영역이 되어 가고 있다. 이에 난독증이 의심이 되는 학생을 진단하고 지도하는 방법, 반응속도가 느린 학생들도 에듀테크를 활용하여 좀 더 심층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교실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초적인 에듀테크부터 전문적인 에듀테크까지 활용하되 기초학력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시도를 에듀테크로 할 수 있음을 현직에 있는 교사와 전문가들이 협업하여 가이드를 제작한 책이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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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끝에서 - 어느 교사의 마지막 인생 수업
다비드 메나셰 지음, 허형은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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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종양 교모세포종 암 말기 상태에서 마지막까지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 교단에 서서 가르칠 힘은 없지만 각자 진로를 찾아 삶의 구석구석에서 살아가고 있을 제자들을 만나는 다비드 메나셰 교사의 마지막 여정을 담은 이야기다.

학생들을 만나는 교사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교사로서 남다른 사명감이 필요한 이유를 삶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청천벽력과 같이 내려진 암 말기 진단 가운데에서도 힘이 닿는 한끝까지 교실을 지키고 학생들을 평소와 같이 가르쳤던 다비드 메나셰 교사의 모습은 나를 비롯한 학교에 근무하는 모든 선생님들에게 도전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책이다.

시력을 잃어가고 몸 한 쪽이 마비가 되어가고 있지만 지팡이에 의지해서 길을 나선다. 무모한 도전이고 의학적으로 보면 죽음을 재촉하는 방법이다. 페이스북에 자신의 마지막 삶의 여정을 공개하자 제자들이 반응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집에 초대하고 선생님의 힘겹지만 당찬 모습을 보고자 몰려들기 시작한다.

다비드 메나셰 교사의 간절한 소망은 다시 교단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지만 불가능한 소원임을 알기에 연명 치료를 거부하고 길에서 제자들을 만나는 쪽을 선택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참 어리석은 모습이고 바보 같은 선택임에 틀림이 없지만 한 번 사는 인생 교사로서 마지막 소명을 다하겠다는 각오는 칭찬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교실을 아이들이 들어오고 싶어 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교사로서 성공의 판단 지표를 연봉을 얼마나 많이 받는가에 기준을 두지 않고 오직 아이들에게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보여주기 원했던 교사가 바로 다비드 메나셰 선생님이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공기를 마시고 밥을 먹는 것과 같이 여겼고 학생들을 관찰하고 그들에 대해 배우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아이들이 하려는 말에 귀 기울이면서 새로운 교육법을 개발하려고 노력한 선생님이었다.

암 말기 상태에서 그를 하루하루 버티게 해 주는 것은 아이들과의 만남이었고 그만의 암 치료법은 기운차게 지내는 것, 행복해지는 것, 목적의식을 갖고 사는 것이었다. 그의 마지막 여행의 사명은 뇌종양으로 잃어버린 제자들과의 기억 되찾기였고 제자들의 인생에 변화가 일어났는지 관찰하는 것이었다.

두 다리로 걸어 다닐 힘이 있고 기억할 수 있는 건강한 뇌가 있다면 다비드 메나셰 교사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월요일 아침, 한 주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 무거운 날이지만 언젠가 나에게 찾아오는 '삶의 끝'을 생각하며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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