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를 생각한다 - 90년대생은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임명묵 지음 / 사이드웨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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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홍택의 저서 <90년생이 온다>가 2020년 서점가를 강타한 적이 있다. 코로나19와 함께 찾아온 팬데믹 시대에 90년생들은 유감없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사회의 주류로 인정받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발군의 실력을 나타냈다. 아마도 <K를 생각한다>의 저자 임명묵님께서도 제1장 90년대생은 누구인가에서 이야기했듯이 '인터넷'이라는 도구를 자유롭게 쓸 수 있으며 비대면 상황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기술들을 어떤 세대들보다도 빠르게 창의적으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기에 팬데믹 시대에 최적화된 세대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90년생 저자가 90년대생이 누구인지를 서술한 부분은 어른의 시각에서 90년대생이 누구인지를 밝힌 책보다 상당히 설득력있게 다가왔다. 90년생 저자가 솔직하게 풀어낸 90년생의 특징은 이렇다. 

 

"90년대생이 결혼, 특히 출산을 기피하게 된 것은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안위가 아닌 다른 무언가에 시간과 힘을 너무 많이 쏟게 되는 것을 우려하는 심리적 문제가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81쪽)

 

이전 세대가 중요하게 붙잡고 있었던 가치 중의 하나가 '가족'과의 유대감이었다. 가족 안에서 상처도 받지만 위로를 얻기에 가족은 불변의 진리였다. 하지만 90년대생들은 좀 더 다른 시각으로 가족을 바라본다. 가족을 이룰 때 수반되는 제약과 부담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이다. 돈의 문제를 떠나 가족 안에서 시간과 힘을 빼앗긴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비혼, 비출산 경향도 이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국가에서 출산을 장려하기 위하여 육아수당, 아동수당을 파격적으로 도입한 것도 실제로 큰 효과가 없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결혼을 장려하기 위한 정책으로 보금자리 마련을 비롯한 결혼에 필요한 제반 사항을 최대한 지원하기 위한 정책들이 도입되고 있지만 90년대생이 느끼는 필요에는 십분 충족되지 않는 모양새다. 저자가 90년생의 시각으로 분석한 '심리적 문제'는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기에 묘안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문재인 정부가 대대적으로 홍보한 K방역에 대해서도 저자는 90년생의 시각으로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내가 K방역을 둘러싼 논란에서 이해할 수 없던 것은, 비자유의적, 대로는 반자유주의적인 수단을 통해 얻은 성취를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성취라고 이야기하는 해석들과 자화자찬이었다." (115쪽)

 

국가주의, 민족주의 사고 방식이 짙은 이전세대는 국가가 제시하는 방역수칙에 대해 자유를 손해보더라도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제일순위로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반면 90년생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국가가 정보를 수집하는 부분을 폭력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K방역은 민주주의와 자유의 위대함을 알릴 만한 것이 결코 아니다라고 말한다. 

 

민족주의와 다문화에 대한 관점도 독특한 면이 있다. 민족주의가 우세했던 이전세대에는 약자를 보호하는 일에 국가가 나서기 보다 먼저 이웃들이 돌보고 주변에서 관심을 먼저 가졌다. 서구 사회에서 시작하여 한국을 강타한 포퓰리즘으로 이제 사회적 약자를 도와주는 일은 국가 시스템이 해야 할 일이지 개개인이 해야 할 몫이 아니다. 치매 노인을 케어하는 일도 자녀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니라 국가가 해야 할일이며 무상복지, 무상교복, 무상급식 등도 부모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 국가의 몫이 되었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국가의식과 민족의식이 약화된 현상으로 분석한다. 90년생이 바라보는 난민 현상을 보더라도 뚜렷한 차이점이 보인다. 노동을 위해 한국에 들어온 이주민들과 갑자기 표류되어 제주도로 들어온 이민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국을 위해 일하러 온 이주민들은 최소한 선별 과정을 거친 이들이고 반면 표류되어 난민 신청을 한 이주민들은 그런 과정이 없기에 분명하게 구분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명 조국 사태로 촉발된 능력주의에 대한 관점도 90년생은 지금의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을 검증하는 시스템이 단지 일회적인 점을 비판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지탱해 왔던 것도 능력주의였고 학부모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속으로 갈망하는 사회적 지위 상승의 수단으로 교육이 일정 부분 공정해야 한다는 생각에 찬성한다고 이야기한다. 겉으로 보여지는 평등, 행복과 관련된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추상적인 용어가 과연 대한민국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동력이 될 수 있는지 의구심을 나타낸다. 90년생인 저자가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물론 교육 정책은 어떻게 보완되든 구설수에 오를 수 밖에 없다. 최상이 정책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늘 감안해야 할 것 같다. 

 

<이창수의 독서 향기> https://www.youtube.com/watch?v=MlxeVb-MYtk&t=44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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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 - 사람을 얻는 마법의 대화 기술 56, 개정판
샘 혼 지음, 이상원 옮김 / 갈매나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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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간의 갈등은 말에서 비롯된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 갚는다는 옛 속담이 있듯이 그 놈의 말 한마디 때문에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고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반면 웃음 낀 표정으로 말 한마디 던진 것 뿐인데 상대방이 분노를 가라앉히고 돌아가거나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말에 답이 있다. 말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기분이 좌우되기 때문에 직장인이라면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이라는 책을 옆에 꼭 끼고 반복해서 읽으며 내 것으로 만들어버린다면 천군만마를 얻는 듯한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회 생활 경험의 많고 적음의 문제로 돌릴 것이 아니라 말 사용법도 학습의 유무에 따라 천양지차임을 경험한다. 사회 경험이 많고 직장에서 오랫동안 근무하고 있는 분들도 말 한마디 잘못 사용함에 따라 갑질 가해자로 몰릴 수 있다. 사회 초년생이라도 싹싹하고 말 한마디 정갈하게 표현하면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한 몸에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 에서 제시한 56가지의 대화법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사례별로 짧게 짧게 정리해 놓았으며 하지 말아야 할과 해야 할 말을 실제 대화 사례로 정리하고 있으니 독자들은 그 문장을 통째로 줄줄 외우고 다녀도 좋을 듯 싶다. 상황은 언제 어떻게 다가올 지 모르니 말이다.

 

"내 의견을 더하는 것이 사태에 도움이 될까?"

"전 아무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위 대화 사례처럼 상대방을 혐담하게 되는 상황에서는 가차없이 이렇게 말해 보면 어떻까? 외우다보면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해야 할 말을 명확하게 할 수 있게 되고 적을 만들지 않게 될 수 있겠다.

 

학교 현장에서 자주 경험하는 것은 교사와 학부모의 갈등이다. 사회에서 두 부류의 사람들이 만날 경우는 거의 없다. 보통 학생을 가운데 두고 만나는 대상이 교사와 학부모다. 평소처럼 무난하게 학생이 학교에 잘 다니고 건강하게 생활하면 그다지 교사와 학부모는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굳히 대화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생에게 무슨 일이 있거나 나쁜 상황이 전개되면 교사 또는 학부모는 대화를 요청한다. 말이 대화이지 불편한 사항을 알아달라는 요구다. 편안한 대화가 될 수 없다. 만날 때부터 따지고 들기 때문이다. 예기치 못한 언어적 공격에 누군든지 발끈하게 되면 이미 덫에 걸린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누구든지 침묵을 활용해야 한다. 최소한 말은 자제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끝까지 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중간에 끼어 자신의 정당성을 말로 표현하다보면 충돌이 생기고 서로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게 된다.

 

"입 다물기는 텅후의 기본입니다"

 

텅후(Tongue fu)란 말로 하는 쿵후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상대방이 말로 공격해 올 때 방어하는 기술을 텅후라고 저자는 말한다. 텅후의 기법이 곧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이다. 학교로 걸려오는 여러 민원인들의 전화에도 입 다물기는 유효하다. 반박을 하거나 반론을 제기하는 순간부터 본질을 떠나 말투에 대해 꼬투리를 잡히게 된다. 해결의 실마리가 더 꼬이게 된다. 대화법 공부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특히 조직의 리더라면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을 꼭 휴대해서 가지고 다니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그건 무슨 뜻이죠?" 라고 물어보면 분명한 정보를 추가적으로 얻을 수 있다. 그러면 서로에 대한 오해와 불신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다. 뼈 속같이 공감되는 내용들이 책 속에 담겨 있으니 누구든지 읽어도 결코 손해되지 않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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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 - 괄호 안의 불의와 싸우는 법
위근우 지음 / 시대의창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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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 발화란 언제나 의미론이 아닌 화용론의 영역에 있다" 

"중요한 건 원론적으로 옳은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안에서 화용론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287~288쪽

 

어려운 책은 사람들과 함께 나눌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것을 다른 이의 생각을 통해 정리되기도 한다. 사실 이 책은 개인적으로 참 불편한 책이다. 50을 바라보는 나이, 소위 말해서 사회의 기득권층, 남성, 병영 문화를 뼈속 깊이 받아들인 세대, 가부장적 문화에서 살아본 세대가 저자의 생각에 모두 다 받아들이기에 책장을 쉽게 넘길 수 없었다. 가령 페미니즘만 해도 그렇다.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살펴보고, 여성이 사회 제도및 관념에 따라 억압되고 차별받고 있다는 것을 밝혀내는 여러 가지 사회적, 정치적 운동과 이론을 가리키는 개념이라고 하지만, 수용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책의 말미에서도 저자가 말했듯이 화용론 측면에서 우리 사회 현상을 서술했다고 이야기한다. 

 

화용론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자. 

 

▶'화용론(話用論)'은 '언어 분야 전문 용어'로서 '말하는 이, 듣는 이, 시간, 장소 따위로 구성되는 맥락과 관련하여 문장의 의미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려는 의미론(意味論/여기서는 '단어와 문장의 뜻과 실제 상황에 나타나는 발화(發話/소리를 내어 말을 하는 현실적인 언어 행위. 또는 그에 의하여 산출된 일정한 음의 연쇄체.))의 뜻을 연구하는 학문')의 한 분야'입니다.

예를 들어 집 안에 환기가 필요한 경우, 직접 "창문을 열어 환기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집 안이 좀 답답하지 않아?", "창문을 좀 열었으면 좋겠는데."와 같이 문장을 단순히 글로만 보지 않고 여러 맥락 등을 통해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을 '화용론적('화용론'에 바탕을 둔. 또는 그런 것.) 접근'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 네이버 지식in-

 

즉, 맥락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공적으로 의사소통을 하게 될 경우 구체적으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다른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의 책 내용을 보면 화용론보다 의미론에 치중하고 있다는 의견이 있다. 공적으로 주요 쟁점들을 다루고 있으면서 맥락에 치중하기보다 의미에 치우친 것은 아닌가라는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책의 내용 전부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읽은 내내 불편했다. 보통 우리는 이런 말을 많이 해 왔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고. 그런데 저자는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것이라고 외친다. 적당히 넘겨서는 안되며 반드시 틀린 것을 지적하고 고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혐오, 차별, 정체성 등 각계 각층에서 무의식적으로 틀리게 사용되어 온 언어라든지 사고 방식을 비판하고있다. 

 

한 문장의 길이가 제법 긴 편이다. 문해력이 초보이신 분을은 읽어내기 어려운 부분이 몇군데 있다. 짧게 이해하기 쉽도록 써 내려갔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용기있게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대중매체에서 불편한 진실을 독자들에게 고발한다. 그가 예로 든 사례들은 논거를 충분히 뒷받침하고 있다. 논거 자체를 의심할 필요는 없을 듯 싶다. 다만, 독자들 중에는 저자와 생각의 대척점에 있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불편하더라도 저자의 생각을 외면하기보다 한 번 쯤 정독해서 읽어볼 것을 권한다. 다변화된 우리 사회에 나와 정반대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나도 읽는 내내 불편했던 것이 사실이다.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체 넘어간 부분도 있다. 한 번 더 정독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 전에는 남녀 차별에 대해 수긍하면서 결혼 후에 완전히 달라진 배우자의 모습을 보고 실망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결혼이라는 환경이 사람을 완전히 바꾸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결혼은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집안끼리의 연결이기 때문일 것이다. 결혼한 당사자의 생각도 중요하지만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집안의 문화방식과 가치관이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비판적 사고는 시간이 지날수록 갈등으로 증폭되거나 희석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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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가게 이야기 - 마트와 편의점에는 없는, 우리의 추억과 마을의 이야기가 모여 있는 곳
박혜진.심우장 지음 / 책과함께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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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적인 책이다. 저자들이 발품 팔아 찾아낸 전라남도 구멍가게 이야기다. 작은 학교 앞에 있는 구멍가게, 연산상회, 구판장, 점빵, 수퍼 등으로 남아 있는 유물에 가까운 가게 이야기다. 저자들이 구멍가게를 찾아내 독자들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일까? 맞다. 사람 냄새다. 삶을 이야기하고 싶은게다. 자본을 쫓지 않고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그 작고 작은 구멍가게에는 아이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마을 사람들이 편하게 들고 나갈 수 있는 곳이다. 돈이 없으면 외상으로도 거래가 가능한 곳이다. 아니, 사람이 먼저이기에 돈은 그저 나중의 일이다. 여행자들이 숨은 맛집을 찾아내듯 사람 냄새 나는 곳을 찾아 지도에 고스란히 담아낸 저자의 창의성이 돋보인다. 그럼 한 번 우리 마을 구멍가게 지도를 그려볼 일은 바로 여러분, 독자들에게 달려있다.

우리 동네에도 수퍼가 있다. 마트와 편의점이 빼곡히 들어서고 있는 추세에 유일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손바닥만한 점빵이 있다. 남산수퍼다. 훤히 보이는 가게 안에는 진열대가 몇 개 없다. 까자(과자), 생필품, 휴지 등 손으로 세도 대충 가름 잡을 수 있을만큼의 물건들이 놓여 있다. 과연 이곳에 사람들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공원을 찾는 사람들도 외면하는 곳이다. 조금만 걸어가면 번듯한 대형 편의점들이 있으니 말이다. 보기도 좋고 종류도 많은 편의점에 밀려 나들가게들은 이미 폐점한 지도 오래다. 이제 이곳도 머지 않아 생명력을 다하지 않을까 싶지만 끈질기다. 퇴근하고 나서 저녁을 먹은 뒤 가족과 함께 가끔 산책을 다녀온다. 지나는 길목에 그 수퍼가 있다. 해가 지고 저녁 쯤되면 그 구멍가게 수퍼에는 가로등이 커진다. 그리고 하나둘 사람들이 모인다. 하루는 몇 몇 아저씨들이 생선을 다듬고 있다. 누군가가 낚시질로 잡아것이다. 놀래미 비슷한 생선인데 옹기종기 모여 앉아 군침을 흘리듯 손질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구멍가게 수퍼 밖에 놓인 플라스틱 둥그런 테이블과 의자에는 소주병과 안주로 과자가 놓여 있다. 예전에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어렸을 적 마실에 나가면 늘 이런 모습들을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달했다고 하는 지금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구멍가게 슈퍼 안에는 가끔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뭔가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화투인가 보다. 구멍가게 수퍼는 만남의 장소이자 놀이터가 둔갑해 버렸다. 손님들도 찾지 않는 곳이지만 사람들은 자주 모여 있다. 주인장께서는 뭘 먹고 살지? 손님은 없고 사람들만 모이니 말이다. 그런데도 구멍가게 수퍼는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사람들이 모이기를 간절히 바라듯 활짝 문을 열고.

사람 사는 이야기가 그립다. 사람 냄새 맡기 쉽지 않다. 뭐 이리 바쁜지 말이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도 그렇다. 뭐가 그리 바쁜지 맨날 컴퓨터 모니터와 씨름한다. 교무실 안에 네다섯명이 함께 지내고 있는데 삶을 풀어내놓고 얘기할 시간이 없다. 출근해서 조금 있다보면 점심 먹을 시간이다. 점심 시간도 예전같지 않다. 코로나 감염병 예방을 위해 칸막이를 모두 설치해 놓고 있으니 말이다. 식사 중에는 말도 가급적 삼가해야 한다. 아이들 보고 조용히 하고 밥만 먹으라고 해 놓고 어른들이 얘기하면 말이 아니다. 늘상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미묘한 표정에 나타난 감정도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코로나 시대, 구멍가게 이야기가 더 정겹게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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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 - 심리학은 어떻게 행복을 왜곡하는가
김태형 지음 / 갈매나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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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심리학자 김태형은 가짜 행복 팔이를 하는 주류심리학에 대해 날선 비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가 진단하는 현재 주류심리학의 특징은 이렇다.

 

첫째, 행복의 척도를 '소확행' 으로 축소하고 있다. 소소하면서도 확실하게 행복을 누리자는 소확행은 사실 씁씁한 웃음을 만들어낸다. 사회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없기에 스스로 작은 행복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많다는 반증이다. 맛집을 찾아 인증샷을 올리는 행복, 아름다운 곳을 찾아 잠깐이라도 행복을 누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하는 행위등을 볼진대 눈물겹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는 행복을 찾는 것을 오직 개인의 몫으로 돌리고 있다. 국가 또는 사회가 국민의 행복을 책임지는 북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갈리는 나라다. 행복도 경쟁인 나라가 우리나라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둘째, 행복의 기준을 '개인'의 노력 여부로 판단하고 있다. 주류 심리학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라고 부추킨다. 좋은 생각, 긍정 마인드를 가지면 어려운 환경도 극복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좋은 생각을 가지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은근히 종용한다. 명상을 통해서 마음을 정화시키고, 좋은 글을 읽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전환시키라고 말이다. 행복을 개인이 만들 수 있다면 그 누가 행복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심리학은 사회에 무게감을 두기 보다 점점 더 개인에게, 개인의 심리에 집착하고 있다. 심리학이 불공정한 사회 제도를 언급하기 보다 각 개인의 성품이나 자질을 체크하고 개선시키는데에만 몰두한 점을 저자는 꼬집어 비판한다. 

 

셋째, 행복하다는 평가를 만족감이 아닌 쾌감으로 여기고 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단지 좋고 나쁨 즉 쾌감-불쾌감일까? 저자는 행복함을 만족과 불만족으로 구분한다. 단지 감정으로 느끼는 좋고 나쁨을 행복으로 말하지 않는다. 개인이 현실에서 살아내는 삶을 만족하느냐가 곧 행복이라고 말한다. 

 

사회심리학자 김태형은 주류 심리학 뿐만 아니라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서도 비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가 대안으로 삼고 있는 사회는 국가가 복지를 책임지는 북유럽형 사회제도다. 대표적인 국가로 덴마크를 예로 들고 있다.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는 의외로 중미에 있는 코스타리카라고 한다. 잘 산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다라는 것은 코스타리카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미국형 자본주의 사회를 모델로 삼고 있는 우리나라가 점점 행복 척도가 뒤떨어져가는 것을 보더라도 물질과 행복의 연관성은 그리 높지 않는 듯 싶다. 참고로 김태형 저자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월소득액에 따른 행복여부의 수치를 430만원으로 설정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가구당 월소득액이 430만원이 될 때까지는 돈이 많아질수록 행복 수치가 커지지만 430만원 이상부터는 완만한 곡선을 그리다가 어느 순간부터 돈 때문에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현격히 적어진다고 한다. 언론에서도 심심치 않게 보는 바와 같이 재벌의 자녀들이 마약을 하거나 이탈행동을 하면서 좀 더 쾌감을 느끼고자 하는 모습들을 접하게 된다. 그들이 돈이 없어서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돈으로 행복을 느낄 수 없기에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돈으로 쾌감을 느낄 수 없기에 다른 수단을 찾는 것이다. 따라서, 돈은 행복의 수단이 될 수 없다. 

 

행복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문제이며 나아가 사회와 국가의 문제라고 평가한다. 개인이 행복을 쟁취하기 위해 경쟁의 장으로 내몰리는 사회나 국가는 불행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반면, 국가가 국민의 행복을 책임져 주는 사회는 만족감을 누리며 자아실현을 위해 살아갈 수 밖에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 모두 행복해 지기를 바란다. 강원도교육청의 슬로건도 '모두가 행복한 학교' 다. 이미 행복이 사회적 화두가 된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행복이 구호로만 그친다면 그 행복마저도 허무할 수 밖에 없다. 저자의 행복론에 대해 모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와 사회가 제도적으로 행복을 주기에 완비되었다고 하더라도 모두가 행복한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북유럽 사회에서도 마약하는 사람, 총격 사건, 일탈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가난하거나 불편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스스로 만족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에서 저자가 진단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행복을 소비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현실은 누구든지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진정한 행복은 소소한 곳에서 개인이 찾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인간관계와 공동체에서 누리는 것이라는 주장에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행복을 철저히 개인화하려는 요구 앞에서는 당당히 저항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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