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M.T. 키케로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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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기에는 노인이 되면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한다. 그리고 노년에는 노년이기 때문에 상실되는 것들에 대해 슬퍼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노년이라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무엇인가? 흔히들 말하는 남은 시간 여생(餘生)일 뿐이란 말인가...

  이 문제에 대한 시원하고 명쾌한 대답이 이 책 안에 적혀 있다. 이천 년 전 키케로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서 말이다.

  젊은이들을 비롯하여 노년에 부정적인 사람들에 따르면 노년에는 네 가지 불행이 있다.

  첫째, 노년에는 큰일을 할 수가 없다.

  둘째, 노년에는 몸이 쇠약해 진다.

  셋째, 노년은 거의 모든 쾌락을 앗아간다.

  넷째, 노년이 되면 죽을 날이 멀지 않다.




  이것에 대해 키케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노년에는 큰일을 할 수가 없는가?

  키케로의 경우 노년에는 정치 활동과 정신 활동은 물론 농사일도 할 수가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정치 활동은 키케로 자신이 당시 최고의 이상향이라고 믿었던 공화정에 대한 믿음이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현재의 상황에서 해석해도 연륜과 학식이 있는 어른들이 각계에서 정치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에 키케로의 대답은 시대를 뛰어넘는 정견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농사일이야말로 몸과 마음을 정결케 하는 최고의 노동으로 보았다.

  노년에 몸이 쇠약해 진다고 하는 이야기에 대하여는

  노년에는 대부분의 젊은이들보다 체력적으로 힘이 부족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곧 슬픔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한다. 그 젊은이들 역시 특출한 힘의 누군가에게는 부족한 힘을 갖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힘이라는 것은 각자의 능력에 맞게 사용하면 되는 도구라는 설명이다.

  쾌락에 관해서는

  노년의 육체적 쾌락에 대한 상실은 슬픔의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노년의 축복이라 표현한다. 키케로는 정신의 즐거움이 육체의 쾌락보다 중요하다고 하였는데 정신활동과 농사일에서 절도 있는 쾌락을 느낄 수 있다고 하였다.

  노년의 죽음에 대하여

  키케로는 노년만이 죽음의 대상 시기가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오히려 젊은이들이 바라는 장수를 이미 누린 후의 노년이라면 재앙이 아니라 바람직한 현상이라 말하고 있다.

  이 네 가지 세간의 걱정은 모두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기에 따라 재앙이 될 수도 있고 행복한 노년의 이유가 될 수도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노년의 또 하나의 특권인 권위는 하얀 백발의 머리와 주름진 얼굴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노년의 권위란 명예롭게 보낸 지난 시간의 마지막 결실이라는 키케로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다.

  아직까지 노년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는데 <노년에 관하여>를 읽고 아름다운 노년을 위해 지금부터 내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생각할 수 있었다.

  걱정거리일 뿐이었던 노년이 나의 아름다운 인생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보람은 충분하다.

  내가 존중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나부터 우리 사회의 어른들에게 예의를 갖추고 대접을 잘 해 공경하는 마음과 행동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시간은, 너무나 소중한 옛 성현의 말씀을 듣게 되어 너무나 의미 있는 시간이었고 노년에 대한 나의 생각에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합본되어 있는 <우정에 관하여> 역시 많은 생각을 하며 읽었는데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미덕이라는 것이었다. 인간으로서 미덕을 지니고 행동하는 것이 우정에 있어, 노년에 있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생각하며 이 책을 읽었다. 평생을 곁에 두고 읽을 가치 있는 책을 만난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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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8 15: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18 16: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잊혀진 소망 자끄 엘륄 총서 4
자크 엘륄 지음, 이상민 옮김 / 대장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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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이 잊혀졌다구?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지만 사랑에 버금가는 가치이기에 성서에는 믿음, 사랑과 함께 배치하며 일상적으로 외는 그리스도인 최고의 덕목이 소망 아니었던가?

'자끄 엘륄'이 '잊혀졌다.'라고 단언하는 '소망'.
그리스도인이기에 앞서 인간이기에 성취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고 소망하는 것이 있기에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무언가 바라고 희구하는 마음이야 말로 인간의 본능이다.
학생들이 좋은 상급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이고, 청년들이 대기업에 취업하여 이 사회의 인정 받는 일원이 되고자 노력하고,  어른들은 사회적 존경을 받기 위해 더 많이 벌고 그 번것을 자선 사업에 쓰기도하며 자식들에게 물려주기도한다. 그런데 소망이 잊혀졌다고?

'소망와 희망'
'자끄 엘륄'의 말대로라면 윗 단락에서 내가 소망하고 있는 인간의 예는 말의 가치 변화로 생긴 오해였던 것이다. 소망과 희망 언 듯 같아 보이는 이 두 단어는 (특히)그리스도인에겐 큰 차이가 있다고 한다. 더 많은 물질을 가지고 편히 살려는 욕구는 희망의 범주에 든다. '희망'은 "그것은 잘 될 것이다."라는 믿음을 전제로 하는 단어이고, '소망'은 그것이 이루어지든 안 이루어지든 바라는 마음이 '소망'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취 가능한 범위 안에서 목표를 정하고 그것의 달성을 위해 노력하고 기도하는데 그것이 '희망'이라는 것이다. '희망'은 지극히 인간적인 욕구의 표현인 반면 소망은 그것이 가능하지 않을 때, 성취 여부와는 상관없이 더 이상 의지 할 곳이 없어 간절한 마음으로 믿고 의지할 때 생기는 마음이 소망이라고한다.

스스로 물어 본다,
"나는 교회에 나가며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무엇을 소망하고 있나?"
요즘에는 기도도 안 하지만 생각을 해 보면, 나와 가족의 건강을 부탁했었고, 성적향상을 바랐고, 막연하지만 구원도 바랐다. 목사님과 함께 중보기도도 했는데 북한 사람들의 기아를 면케 해달라고 했고 세계평화를 위해 기도했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달라고만 한것은 아니었다. 교회에 빠지지 않겠다고 헛된 약속도 진심으로 했었고 십일조도 하겠다며 거짓말했고 무엇보다 그리스도인답게(?) 착하게 살아보겠다고 했었던 것 같다. 그 정도 조건이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뤄주시리라 나는 믿었고 목사님은 '믿으라!'했었다.
나와 우리 가족은 아직 건강하다. 성적은 신통치 않았지만 결과에 만족 못한 경우는 없었다. 뉴스를 보면 우리교회 중보기도의 효험인지 가끔 희망적인 뉴스가 나오기도 했고 간절한 중보 기도에도 불구하고 자연재해, 전쟁 등의 비극적인 뉴스가 나오면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더 빡.시.게. 기도를 하기도 했다. 우리의 죄인 양 함께 회개를 했고 불신자들을 위해 중보했다.

자크엘륄은 이런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 침묵'을 이야기한다.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침묵하고 있고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침묵하는 이상 어떤 인간적 희망도 하나님께 전달될 수 없다고 ... 이미 세상은 인간들과 과학의 지배하에 놓여 있고 여기에 하나님이 개입할 요소는 없는 것이라고... 지금은 '하나님과의 단절시대'라고 말이다. (독실한 자들이여 무섭지 않은가?)

하나님이 침묵하고 우리와 단절되었다는 자끄엘륄의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 힘든 분들도 계시겠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현실을 명쾌하게 진단해준 엘륄에게 많은 공감을 했다. 내가 엘륄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지금 하나님은(신이 있다는 전제하에) 분명 침묵하고 계시며 하늘나라와 지금 세상과는 어떤 통로도 없어 보인다. 그리스도가 그 통로라고 하지만 그리스도는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우리 마음속에?
소망은 이런 하나님과의 단절 상태에 놓인 인간에게 남겨진 유일한 통로이자 침묵하는 하나님에 대한 도발의 도구라는 게 엘륄의 주장이다.
역설이지만 하나님은 인간에게 순전한 소망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 때에 하나님의 침묵이 인간들이 소망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말 장난 같다고?  그렇다면 엘륄의 생각을 전한 내 전달이 문제일 뿐이다. 말 장난인지 사실인지 자끄엘륄의 <잊혀진 소망>을 보면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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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 2009-10-17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다 읽었구나~ 빌려줘. 리뷰 읽으니까 읽어보고 싶네.(근데 아직 [1984]도 다 못읽었어;;) 리뷰 제목이 참 향편답게 유머러스(?)하네...
내 생각에 인간에게 하나님이 침묵하는 걸로 비춰지는건 하나님의 사랑때문이 아닐까 싶네.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분이라 인간에겐 침묵으로 바춰지는 거 아닐까. (사랑이 무능력으로 보여지는 세상이니까.) 침묵=사랑, 엔도 슈샤쿠 읽을 때도 그리 생각했는데. 그 때문에 또한 인간이 소망을 품게 된다면 이도 하나님 뜻이라고 생각하는 게 믿음? 뭐,,,그래. 어쨌든 빌려줘~~^^

차좋아 2009-10-17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서 본건지..(아마도~) 구약의 하나님은 여러 방법으로 인간과 직접 소통을 했다는거야(우리가 성경을 통해 알고있듯이)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 명했고 아브라함에게 모세에게, 가나안에서 사사들에게.
예수 나시기 전 300년이(아마도~) 하나님과 유대인들의 단절의 시기인데 그 시기에 가장 갈절히 소통을 원했다지() 그 시기에 집필된 유디트서 마카베오서가 정경으로 승인을 못 받는 원인도 그 때문인 걸로 읽었어.(이건 보충 설명이 필요함'만나자')
소망에 대한 새로운(웰륄에 따르면 새로운게 아니라 내가 잊은거겠지) 관념이 생겼어. 나 누구말 곧이 듣는 사람은 아니지만 엘륄의 논리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침묵=사랑 맞다고 생각해.엘륄 논리의 귀결도 그리로 갈거야~
인간이 독립적 개체인것을 인정한 하나님이 불개입일 뿐이고 그 인간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인간이 극한의 순간 신께 의지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지. 빌려줄게 빨리 읽어~ 빨리 읽어야 이야기해보지^^
1984는 너 읽고 내가 다시 한번 읽어야겠다. 너는 <잊혀진 소망>읽고 나는<1984>읽고..참 어제그제 카탈로니아 찬가 읽었는데 다시 봐도 좋더라 그것도 빌려줄까?
 
파우스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정경석 옮김 / 문예출판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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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대 이상... 사실 기대보단 걱정이 앞섰던 파우스트. 
찬찬히...주석 하나하나 떠들어 가면서 공간이 바뀔 때마다 무대 설명 곁들여 가면서 연속극 보듯 연극 한 편 보고 있다. 완전히 대하드라마다. 대하판타지희곡서정드라마 ㅋㅋㅋ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텔레스와의 만남과 그 둘의 대화는 이야기의 축이다(드라마). 이 둘만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 내용 그대로인데(이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다) 괴테가 이 둘의 관계설정 후 담은 수 많은 에피소드들을 읽고 생각하는 즐거움과 괴로움에 파우스트만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이든다. 사실 이 둘의 드라마적 요소가 매력임에도 작품속 뼈대만 이룰 뿐이라 이야기를 기대하는 사람에겐 힘겨운 책이 될 것 같다.  

악의 없는 성실한 악마 메피스토텔레스(악의란 선의를 전제하므로... 메피스토는 악마로서 사명에 충실할 뿐..)  

어리숙하고 진지한 메피스토 덕에 간간히 웃음. 반면 주인공 파우스트의 끝없는 세속적 욕망엔 인간 본성이 그러함을 이해할 수 있음에도 내 모습이 그려려니 생각이 들면서 짜증...
돈은 화폐로서의 역할이 있을 뿐 그냥 가치부여된 종이일 텐데 돈에 부정적 관념을 만들고 그러면서 돈을 원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메피스토텔레스의 존재에 대해 나름대로 의미 부여.(그래 그게 파우스트적인 거야! 메피는 순수 악일 뿐 사회적 개념의 도덕률에 구속되지 않잖아~)   

메피스토텔레스 완전 매력적임. 매피가 없었다면 이 정신없는 책을 어찌 읽을 수 있었을까...

중세 기독교적 사상을 바탕으로 고대 그리스 신화와 유대설화, 성서, 가깝게는 니체의 실존주의 철학까지... 아! 프랑스 대혁명. 다 담았다. 위에 열거한 거 다 내가 적당히 관심있었던 것들인데 이걸 한 데 다 슬어담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었던가?  악마에게 양심을 판 파우스트 이이야기라는 단선적 이야기는 확실히 접수했다,만... 한계 절감.  주석 철저히 확인하고 희곡이라는 거 계속 생각하고 관객인 양 고통의 일주일. 이걸 극으로 하면 몇 시간이나? 끙끙 즐겁게 읽었는데 섣불리 이해했다라고 말은 못하겠다. 파우스트 풀이를 봐야 할까? ('존심 상할 필요 없어~ 네가 이해 못 한 거 당연하지!' -메피스토텔레스-)  

가물가물한 그리스.로마 신들의 이름을 주석을 찾으며 옛적 생각에 즐거움. 유럽 사람들이라면 얼마나 유쾌한 이야기였을까 짐작이 갔다.  

단국신화, 홍길동, 장화홍련, 구운몽, 세종대왕 등등  주석이 필요 없는 인물과 신화로 한 편의 희곡을 만들 수 있을까? 괴테는 만들었다. 57년에 걸쳐...  

파우스트가 구원을 받았는데 음... 내가 이해하는 신과 비슷해서 결말도 좋았음. 할리우드식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가 아니라... 신 마음이니까. 그래도 헛물 켠 메피스토가 좀 안쓰럽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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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 <파우스트>에서 <당신들의 천국>까지, 철학, 세기의 문학을 읽다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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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스러운 종합선물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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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좋아 2009-06-12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거 편한데~~40자평을 이제야 사용하다니...

무해한모리군 2009-06-12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번 집었다가 내려놓았어요.. 이런 책을 읽으면서 영화 읽는 법을 갈고 닭아야 할텐데.. 이상하게 잘 안집어진단 말이죠 ^^

차좋아 2009-06-12 21:59   좋아요 0 | URL
술술 잘 읽히고 조금 생각할 꺼리도 있게 만들고..좋던데요^^
장바구니 구매액 5만원에 조금 부족할 때 담아보세요^^ㅋㅋ
 
초기 그리스도교의 사회사 - 고대 지중해 세계의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볼프강 슈테게만.에케하르트 슈테게만 지음, 손성현.김판임 옮김 / 동연출판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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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그리스도교의 삶의 방식과 그들의 신앙관
알아가면 갈수록 예수의 가르침과는 멀어지고 희석되어 가는 지금의 교회를 보면서 초기 그리스도교의 신앙관이 알고 싶어진다. 

(세상에)나면서부터 다닌 교회를 여지껏 다니고(대안없음에..), 이웃종교의 가르침엔 뭐가 있나? 궁금하여 예저기 기웃거려 보지만 내 볼땐 대동소이...   
교회에 대한 불신에 불신자들을 감화?시킬 정도로 독설을 퍼붓고 다니나 , 내 근본이 한!국! 기독교라는 슬픈 현실에 누워서 침 뱉기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가학적 신앙생활을 지속하는 내가 혐오스럽다.

제목 말고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누가 추천해 준 책도 아닌 따땃한 신간을 산건 초기 그리스도 인들이라면 내게 도움이 될 말을 해 주지 않을까 하는 바람 때문이다.  

신학생들이 레포트 쓸 때는 요긴할 듯 한 주후 2,3세기에 대한  방대한 자료집이다. 
친구놈이 오면 집어갈 듯 하니 뒤집어서 꽂아놔야지... 

이건 차차 읽기로하고.... 읽은 후에 좀 정리를 해볼까 한다.
(언젠가 읽겠지....한 책들 하나도 안보는데~ 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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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9-06-07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읽고 리뷰라니 ㅋ

차좋아 2009-06-07 14:39   좋아요 0 | URL
사진 구경은 했는데 ㅋㅋ

무해한모리군 2009-06-12 09:58   좋아요 0 | URL
아하하 정말 기대평이네요 ㅎㅎ

차좋아 2009-06-12 22:02   좋아요 0 | URL
기대하고 샀는데 사고 시간이 지나니 기대가(관심이)사라져 버렸어요~~
이게 다 예수전 때문이야...ㅎㅎ
냅뒀다 봐도 좋을 것 같기는 한데...내년에 반값세일만 안했으면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