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소망 자끄 엘륄 총서 4
자크 엘륄 지음, 이상민 옮김 / 대장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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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이 잊혀졌다구?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지만 사랑에 버금가는 가치이기에 성서에는 믿음, 사랑과 함께 배치하며 일상적으로 외는 그리스도인 최고의 덕목이 소망 아니었던가?

'자끄 엘륄'이 '잊혀졌다.'라고 단언하는 '소망'.
그리스도인이기에 앞서 인간이기에 성취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고 소망하는 것이 있기에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무언가 바라고 희구하는 마음이야 말로 인간의 본능이다.
학생들이 좋은 상급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이고, 청년들이 대기업에 취업하여 이 사회의 인정 받는 일원이 되고자 노력하고,  어른들은 사회적 존경을 받기 위해 더 많이 벌고 그 번것을 자선 사업에 쓰기도하며 자식들에게 물려주기도한다. 그런데 소망이 잊혀졌다고?

'소망와 희망'
'자끄 엘륄'의 말대로라면 윗 단락에서 내가 소망하고 있는 인간의 예는 말의 가치 변화로 생긴 오해였던 것이다. 소망과 희망 언 듯 같아 보이는 이 두 단어는 (특히)그리스도인에겐 큰 차이가 있다고 한다. 더 많은 물질을 가지고 편히 살려는 욕구는 희망의 범주에 든다. '희망'은 "그것은 잘 될 것이다."라는 믿음을 전제로 하는 단어이고, '소망'은 그것이 이루어지든 안 이루어지든 바라는 마음이 '소망'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취 가능한 범위 안에서 목표를 정하고 그것의 달성을 위해 노력하고 기도하는데 그것이 '희망'이라는 것이다. '희망'은 지극히 인간적인 욕구의 표현인 반면 소망은 그것이 가능하지 않을 때, 성취 여부와는 상관없이 더 이상 의지 할 곳이 없어 간절한 마음으로 믿고 의지할 때 생기는 마음이 소망이라고한다.

스스로 물어 본다,
"나는 교회에 나가며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무엇을 소망하고 있나?"
요즘에는 기도도 안 하지만 생각을 해 보면, 나와 가족의 건강을 부탁했었고, 성적향상을 바랐고, 막연하지만 구원도 바랐다. 목사님과 함께 중보기도도 했는데 북한 사람들의 기아를 면케 해달라고 했고 세계평화를 위해 기도했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달라고만 한것은 아니었다. 교회에 빠지지 않겠다고 헛된 약속도 진심으로 했었고 십일조도 하겠다며 거짓말했고 무엇보다 그리스도인답게(?) 착하게 살아보겠다고 했었던 것 같다. 그 정도 조건이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뤄주시리라 나는 믿었고 목사님은 '믿으라!'했었다.
나와 우리 가족은 아직 건강하다. 성적은 신통치 않았지만 결과에 만족 못한 경우는 없었다. 뉴스를 보면 우리교회 중보기도의 효험인지 가끔 희망적인 뉴스가 나오기도 했고 간절한 중보 기도에도 불구하고 자연재해, 전쟁 등의 비극적인 뉴스가 나오면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더 빡.시.게. 기도를 하기도 했다. 우리의 죄인 양 함께 회개를 했고 불신자들을 위해 중보했다.

자크엘륄은 이런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 침묵'을 이야기한다.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침묵하고 있고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침묵하는 이상 어떤 인간적 희망도 하나님께 전달될 수 없다고 ... 이미 세상은 인간들과 과학의 지배하에 놓여 있고 여기에 하나님이 개입할 요소는 없는 것이라고... 지금은 '하나님과의 단절시대'라고 말이다. (독실한 자들이여 무섭지 않은가?)

하나님이 침묵하고 우리와 단절되었다는 자끄엘륄의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 힘든 분들도 계시겠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현실을 명쾌하게 진단해준 엘륄에게 많은 공감을 했다. 내가 엘륄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지금 하나님은(신이 있다는 전제하에) 분명 침묵하고 계시며 하늘나라와 지금 세상과는 어떤 통로도 없어 보인다. 그리스도가 그 통로라고 하지만 그리스도는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우리 마음속에?
소망은 이런 하나님과의 단절 상태에 놓인 인간에게 남겨진 유일한 통로이자 침묵하는 하나님에 대한 도발의 도구라는 게 엘륄의 주장이다.
역설이지만 하나님은 인간에게 순전한 소망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 때에 하나님의 침묵이 인간들이 소망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말 장난 같다고?  그렇다면 엘륄의 생각을 전한 내 전달이 문제일 뿐이다. 말 장난인지 사실인지 자끄엘륄의 <잊혀진 소망>을 보면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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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 2009-10-17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다 읽었구나~ 빌려줘. 리뷰 읽으니까 읽어보고 싶네.(근데 아직 [1984]도 다 못읽었어;;) 리뷰 제목이 참 향편답게 유머러스(?)하네...
내 생각에 인간에게 하나님이 침묵하는 걸로 비춰지는건 하나님의 사랑때문이 아닐까 싶네.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분이라 인간에겐 침묵으로 바춰지는 거 아닐까. (사랑이 무능력으로 보여지는 세상이니까.) 침묵=사랑, 엔도 슈샤쿠 읽을 때도 그리 생각했는데. 그 때문에 또한 인간이 소망을 품게 된다면 이도 하나님 뜻이라고 생각하는 게 믿음? 뭐,,,그래. 어쨌든 빌려줘~~^^

차좋아 2009-10-17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서 본건지..(아마도~) 구약의 하나님은 여러 방법으로 인간과 직접 소통을 했다는거야(우리가 성경을 통해 알고있듯이)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 명했고 아브라함에게 모세에게, 가나안에서 사사들에게.
예수 나시기 전 300년이(아마도~) 하나님과 유대인들의 단절의 시기인데 그 시기에 가장 갈절히 소통을 원했다지() 그 시기에 집필된 유디트서 마카베오서가 정경으로 승인을 못 받는 원인도 그 때문인 걸로 읽었어.(이건 보충 설명이 필요함'만나자')
소망에 대한 새로운(웰륄에 따르면 새로운게 아니라 내가 잊은거겠지) 관념이 생겼어. 나 누구말 곧이 듣는 사람은 아니지만 엘륄의 논리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침묵=사랑 맞다고 생각해.엘륄 논리의 귀결도 그리로 갈거야~
인간이 독립적 개체인것을 인정한 하나님이 불개입일 뿐이고 그 인간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인간이 극한의 순간 신께 의지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지. 빌려줄게 빨리 읽어~ 빨리 읽어야 이야기해보지^^
1984는 너 읽고 내가 다시 한번 읽어야겠다. 너는 <잊혀진 소망>읽고 나는<1984>읽고..참 어제그제 카탈로니아 찬가 읽었는데 다시 봐도 좋더라 그것도 빌려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