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끊임없이 전화를 해대는 사람이 있다, 회사의 같은 층에서. 업무상 그럴 수밖에 없는 건 알겠는데, 하루종일 한다. 목소리가 그다지 크지도 않은데 묘하게 다 들린다. 아 거슬린다. 더더군다나 목소리가, 정말 거슬리는 목소리다. 가끔, 확 뛰쳐가서 "제발 나가서 전화하세요." 라든가 "전화를 좀 짧게 하면 안되요?" 라든가 "목소리를 좀 낮춰주세요." 라든가 윽박지르는 나를 상상하곤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냥 상상일 뿐. 그냥 이어폰으로 내 귀를 틀어막는 방법을 택하곤 하지.

 

그런데, 이어폰을 하루 종일, 그것도 회사에서 하루 종일 끼고 있을 순 없으니 잠시 이어폰을 내려놓을라치면, 아 저 목소리가 자꾸 내 귀에 들어온다. 거슬려 거슬려. 딱히 뭐라고 말하긴 곤란한데, 목소리가 참, 사람 심정을 벅벅 긁는 소리다. 만약 잠시만 듣는다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텐데, 계속 하니까 미치기 일보 직전이 되어 버린다.

 

<비밀의 숲>에서, 그러니까 내가 지난 달에 식음을 전폐하고 보았던 그 지나간 드라마 <비밀의 숲> 말이다. 주인공 조승우가 뇌수술을 받은 이유는, 소리에 너무 민감해서였다. 이십오년만인가 이십년만인가 만난 친구가 말했다. "너 그 때 왜 그랬어?" 그랬더니 조승우가 아주 무표정하게 이렇게 답했던 것 같다. "시끄러워서." 친구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물어본다. "시끄러워서?" 조승우는 다시 아주 쿨하게 "응 시끄러워서." .... 아 그 심정이 이해가 된다고 하면... 나보고 뇌수술을 받으라고 할 것인가. ㅜ

 

그런 수술을 받아서 조승우처럼 머리가 좋아질 수 있다면 좋긴 하겠는데... 흠... 감정이 없다면 괴롭겠지? 마음 속에 번민이 없으니, 말하자면 희로애락이 없으니... 일만 할 수 있는 상태. 뭘 느껴야 고민도 하고 상처도 받고 그럴 것인데, 아무 것도 안 느껴지니, 아 안 느껴지진 않겠지만, 역치가 너무 높아서 그게 잘 표출되지 않는 지경이면 생각할 거라고는 내 앞에 놓인 현안 뿐이지 않을까. 그런 조승우가 배두나로 인해, 그리고 여러가지 사건들로 인해 정말 조금씩 조금씩 바뀌어나가는 걸 보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말이다. <비밀의 숲> 시즌 2... 하면 이건 반드시 본방 사수야... 라고 계속 생각 중이다. 물론 그 전에 내가 <비밀의 숲> 보고 홀딱 반한 조승우가 나오는 의학 드라마도... 흠냐 흠냐. 이거 지난 번에 말했던 것 같기도 하다..캬캬.

 

어쨌거나, 퇴근해야겠다. 계속 듣고 있다가는 뇌수술 받겠다고 병원 가고 싶은 심정이 되겠다. .. 이게 사람이 까칠해지면 소리에 민감해진다고 하더라... 누군가에게 들었을 때 아 내가 까칠해서 그런가... 라는 생각에 잠시 자책도 되었음을 고백하며... 가서 맛난 밥이나 먹고 누워 책을 봐야겠다. 어제 리베카 솔닛의 책을 다 읽고 (좋은 책이다. 글을 참.. 어찌 그리 쓰는 지. 부럽소, 리베카 솔닛!) 펼쳐든 책은 이것이라오.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한 건강 격차에 대한 연구자로서는 세계 최고봉인 마이클 마멋의 책이다. 여성에 대한 불평등, 소외, 차별, 뭐 이런 내용들을 읽다 보면 진정 그 시야가 넓어져서 다른 불평등, 소외, 차별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 중 하나가 이 주제이고, 나는 이 주제에 예전부터 상당히 관심이 많다. 들어가는 글부터 읽고 있는데, 역시 이 사람. 체험에서 우러나는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풀어내는 솜씨를 보니, 이 책에 대한 기대는 한껏 가져도 좋겠다 싶었다.

 

가자가자. 집으로. 전화 또 시작하셨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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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1 17: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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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1 19: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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