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비린토스 1 - 세 권의 책, 두 명의 여자, 하나의 비밀
케이트 모스 지음, 이창식 옮김 / 해냄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두 권을 다 읽고 난 느낌은, 그저 허탈이다. 요즘 읽는 것마다 감흥이 적은 것은 선정이 잘못된 탓일까 아니면 내 감성이 너무 메말라서일까 아니면 추리소설류를 쉴새없이 읽어댄 부작용인 것일까. 아뭏든 길고 길었던 이 책의 마지막장을 넘기며 아무 생각이 없었다는 것에 실망해서 나 혼자 잠깐 고민해본 사항이다.

800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역사를 배경으로 라비린토스 3부작의 책을 지키기 위한, 혹은 상대의 입장이라면 빼앗기 위한 긴 여정이 담겨진 책이다. 1200년대의 알라이스라는 여자는 2000년대의 앨리스라는 여자에게 영적으로 다가가 있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도 시간을 뛰어넘어 비슷한 관계와 굴레를 가지고 얽혀 있게 된다. 비밀의 책이 3권이나 되는 바람에, 그리고 그 3권을 다 가져야 비밀이 완수되는 바람에 남은 한 권을 차지하기 위한 사투는 결국 피를 부르고 시대의 단절을 초래한다.

사실, 이 책이 얘기하고자 했던 건 그런 '책'에 대한 건 아니었을 게다. 그 당시에 이루어졌던 십자군 전쟁, 그리고 그 속에서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 죄목은 있으나 그 죄로 인해서라기 보다는 정치적으로 혹은 제국주의적인 영토확장으로 인해, 또는 그냥 인간의 기저에 깔린 잔학성 때문에 뜻없이 죽어간 많은 사람들을 기억하며 과연 산다는 것, 그리고 성배라는 것이 우리에게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를 고민해가며 지은 소설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에 가서 오드리크 배야가 말하던 이야기들은 그런 걸 뜻하는 게 아닐까.

이런 소설을 역사추리소설이라고들 분류한다. 아마도 최근에 가장 인기가 많았고 논란의 여지가 되었던 것도 (역시 성배를 다룬) 다빈치 코드라는 비슷한 부류의 책이었다. 역사추리소설의 시초는, 내가 생각하기엔 뭐니뭐니 해도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라는 책이고 나는 그 이후에 숱한 동종의 책들을 읽었지만 이만한 책을 발견하기 힘들었다. 어쩌면 새로운 것을 접했던 예전의 기억이 너무나 강렬해서 역치 수준이 높아진 탓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책만한 깊이를 선사하는 작품은 별로 없었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많은 역사적인 사실들과 있었거나 없었던 사람들을 등장시켜 근사한 얼개를 만들어두었기에 읽는 내내 뭔가를 알아간다는 기쁨은 있었다. 하지만 일단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킨 것이 좀 산만했고 연계가 가끔 헐거워지기도 했다. 과거의 그(녀)와 현재의 그(녀)를 어떻게든 연결시키려다 보니 좀 억지스러운 부분도 눈에 띄였다. 무엇보다 사랑과 신의와 그 모든 것을 다루었음에도 내 마음에 남기는 흔적은 미미하다는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어쩌면 비슷한 얘기들을 많이 들어서였을까. 처음부터 얘기의 전개가 어떻게 될 지 너무 뻔하게 보여서 2권이라는 길이가 상당히 지루하게 느껴졌다.

물론 작품의 완성도나 작가의 능력에 대해 의심을 품는 것은 아니나 기대에 못 미쳤다는 것 뿐이다. 과거의 감흥에 상대적인 비교를 하는 내게도 잘못이 있는, 매우 주관적인 서운함이라는 걸 밝혀두고자 한다. 역사추리소설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한번쯤 접한다고 해서 나쁠 건 없는 책이다. 다만 '여자 댄 브라운' 어쩌고 하는 선전 문구에 너무 혹하지 말고, 전체적인 내용을 추리라는 거에만 집착하지 않고 본다면 말이다.

가을 하늘 아래, 가끔씩 팔랑이는 낙엽들을 바라보며 인생의 '성배'는 무엇일까를 곱씹어보기에 좋은 책이지 대단한 역사적 진실이나 신비주의가 담겨있는 책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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