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이고, 간밤에 더워서 잠을 설치고, 그래서 오늘따라 새옷을 그것도 하늘거리는 파란색 상의를 걸쳐 입고 나서는데 엄마가 말씀하신다. "비가 많이 오는데.." 헉. 분명 내가 이 옷을 입을 결심을 했던 5시 반 경에는 비가 안 왔던 것 같은데 이게 왠.. 이제와 갈아입을 수도 없고 해서 그냥 나오기는 했으나 옷에 물튈까봐 우산을 전후좌우로 휘두르는 나의 모습.. 그닥 아름답지는 않다. (ㅡㅡ)
이제 7월이 끝나간다. 세상이 이렇게 어수선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어수선하다. 적어도 나의 느낌은 그러하다. 뭔가 어긋지는 이 느낌. 명쾌한 것은 없고 어딘가 꿉꿉하고 어딘가 음산스러운 이 분위기. 말도 안되는 비밀과 음모론이 나돌고 아무리 자극적인 얘기와 영상이 공개되어도 이제 다들 무감해진 이 느낌. 그냥.. "또?" 이런 생각이 제일 먼저 든다는 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김영란법이 어제 합헌결정나서 시행된다고 하니 아침저녁 대담프로마다 난리굿이다. 오바다. 경기가 침체될 것이다. 위헌에 가까운데 이거 합헌이 맞냐.. 이런 부정적인 목소리들이 크다. 글쎄? 공직자 부패를 막겠다고 만드는 법인데, 이 법 시행한다고 경기가 침체되고 자율이 침해된다면 기존 우리 사회는 어쨌다는 것인지. 그러니까 막말로 뒷돈과 뒷거래와 청탁으로 유지되었던 사회란 말인지. 물론 시행하다보면 고쳐야 할 부분들이 있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사실 국회의원들은 은근슬쩍 뒤로 빠지지 않았는가. 그래서 지금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것이겠지만. 비겁한 사람들.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직무관련자에게 허용되는 선물(!)의 한도액이다. 이건 다른 선진국에서도 법까지는 모르겠지만 상식적으로 얘기되고 있는 금액이다. 예전 내 지도교수님이 미국 상원의원들 예를 드시면서 50달러 이상의 선물은 하지 말라고 하셨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선물 마련하느라 매번 애먹었었고. 이 정도면 되는 거다. 만약 식사를 하려거던 그 일 끝나고 나중에 만나서 개인적으로 배터지게 드시라. 다만 업무적으로 연관 있을 때는 점심 간단히 먹고 헤어지는 정도면 되는 거다. 그것 때문에 음식점마다 난리라니. 이해불가다.
예전에 김영란법 얘기할 때도 이런 분위기였는가. 어쩐지 요즘 들어서 아주 뻔.뻔.하게 이런 내용들을 대놓고 반대한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무너진 기강. 어차피 다 뒤에서 해먹는 사회. 내가 걸리면 억울한 거 아니냐. 이런 생각이 기조에 깔려서 그럴싸한 되도 않은 개똥철학으로 뭐라뭐라 하는 걸 듣고 있으면.. 역겹다. 우병우사건이 터졌고 진경준사건이 터졌고 기타 등등 많은 일들이 있지만, 버티면 이긴다는 걸 아니까 다들 그냥 버틴다. 언론이 저렇게 떠드는 건 한때야.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라는, 이건 뻔뻔함을 지나쳐 극악함에 가깝다.
해결되어야 할 일은 산더미인 것 같은데 해결은 커녕 그 조짐도 안 보이니 답답하고 이렇게 시간이 지나 사람들이 무디어지고 잊어버리고 할까봐 걱정이다. 물론 나라고 예외겠는가. 자기 생활에 매몰되다 보면 그냥 그렇게 되어 버린다. 그래서 정부라는 게 있고 국회라는 게 있는 거지. 우리가 일상의 무게에 눌려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없게 되더라도 정부나 국회는 잊지 않고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거다. 권력은 그런 때 부리라고 준 거지, 아무 데나 자기 돈 챙기고 명예욕 채우라고 부여하는 게 아니라는 걸... 지금 이 사회는 잊고 있는 것 같다.
.. 비도 오는데 괜한 생각들이 치솟네. 마음이 와글와글 심정이 복잡복잡한 세월이라 그런가.
고등학교 때 김형석, 안병욱 교수의 에세이들을 즐겨 읽었더랬다. 특히 김형석교수의 글이 좋았다. 명징하다고나 할까. 군더더기가 없었다. 그 분이 아직 살아계시고 (윤동주 시인과 동기!) 백세를 몇 년 앞 두고 계시다 하니 놀라울 뿐이다. 정말 예전 모습 그대로라는 게 더더욱 믿기지 않고 살아온 시간들에 정말 충실하셨을 거라는 믿음을 주는 아우라를 풍기고 계시다.
늙어서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고 후배와 후손들의 존경을 받아야 할 의무도 있다. 늙는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노년일수록 존경스러운 모범을 보여야 한다. 노년기에는 무엇보다 지혜가 필요한데, 그 지혜라는 것은 '늙으면 이렇게 사는 것이 좋겠다'는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푸대접을 받았어도 상대방을 대접할 수 있는 인품, 모두의 인격을 고귀하게 대해줄 수 있는 교양, 그 이상의 자기 수양이 없다고 노철학자는 말한다. - 알라딘 책 소개 중
공감이 팍 간다. 존경을 받아야 할 의무. 제대로 늙어야 한다는 뼈아픈 충고다.
그러나 저자가 그리는 '성공과 행복의 함수 관계'는 다르다.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과 가능성을 유감없이 달성한 삶은 행복하며, 성공적이다. 그러나 주어진 유능성과 가능성을 다 발휘하지 못한 사람은 성공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 따라서 정성 들여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실패가 없으나 게으른 사람에게는 성공이 없는 법이다.
'재산과 행복의 함수 관계'에 대한 저자의 대답은 더 명확하다. 저자는 항상 가족들이나 제자들에게 "경제는 중산층에 머물면서 정신적으로는 상위층에 속하는 사람이 행복하며, 사회에도 기여하게 된다"고 충고한다. 물론 저자 자신이 주변에서 실제로 보고 들은 경험의 결과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느 정도의 재산을 갖고 사는 것이 좋은가. 인격 수준만큼 재산을 갖는 것이 원칙이다. 인격의 성장이 70이라면 70의 재물을 소유하면 된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해서 90의 재산을 갖게 되면 그 분에 넘치는 20의 재산 때문에 인격의 손실을 받게 되며, 지지 않아야 할 짐을 지고 사는 것 같은 고통과 불행을 겪는다. - 알라딘 책 소개 중
백년을 산 사람의 이야기라 더 절실하게 와닿는 지 모르겠다. '경제는 중산층에 머물면서 정신적으로는 상위층에 속하는 사람이 행복하며, 사회에도 기여하게 된다.' 라는 말씀이 오늘 나의 아침에 정신적 자양분이 된다.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