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읽었던 오에 겐자부로의 '읽는 인간'.

올해의 책 후보로 올려놓고 싶은 책이다. 이미 올리기도 했고..

 

 

사실, 문체가 특이하다. 어째 머리에 착착 붙지 않는 문체. 그런데 그 진솔함이 뼛속까지 와닿는다. 아 이게 오에 겐자부로의 필력인가. 어쩌면 필력이라기보다는 진실의 힘에 더 가깝지 않을가 한다.

 

어려서부터의 책에 대한 사랑, 한 작가의 책을 3년씩 읽어내리는 독서법, 외국 책을 원서와 병행해 읽고 그 모든 독서가 자신의 작품에 계기로서 작용했음을 고백하는 老작가. 그와 함께 자신의 인생에 늘 함께 했던 '수상한 이인조'들. 책과 사람과 그의 개인적인 경험들이 한데 어우러져 감동이 되어 다가온다. 

 

"All right, then, I'll go to hell." (그래 좋다, 나는 지옥으로 가겠다) 이 대목에 영향을 받아 평생의 마음가짐으로 삼기 시작한 유년시절. 16세에 만난 <프랑스 르네상스 단장>이라는 책의 저자가 와타나베 가즈오이고 이 분이 도쿄대학 프랑스 문학과 교수라는 것을 알고 거기로 진학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 그리고 생의 각순간마다 만났던 소중한 책들. 그리고 에드워드 사이드와의 소중한 인연.

 

자신의 본래 장소를 잃어버린 인간으로서, 망명자로 살아가는 나라의 가장자리에 서서 비판적 주장을 서슴없이 내놓는 인간이었습니다. 국가나 세계의 중심 지배 권력에 다가붙는 말을 꺼내는 인간이 아니라, 진정한 망명자로서 끊임없이 발언하는 태도로 일생을 관철해온 사람입니다. 자신의 진짜 고향에서 떨어져 나와, 자신의 진짜 장소가 아닌 곳에서 그러나 보편적인 의미에서는 진정으로 인간다운 일을 한 사람이라고, 저는 언제나 사이드에 대해 이렇게 말할 작정입니다. (p54)

 

에드워드 사이드를 원래 좋아하고 있었지만, 오에의 이 글로 더욱 좋아지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이런 평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흔할까.

 

그리고, 장애아를 아이로 가진 한 사람의 아버지로서의 고통과 그 때마다 위안이 되었던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뭉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은 의젓하게 성장한 히카리(음악가가 되었다)라는 아들과의 교감, 성장과정에서 느껴야 했던 고뇌들, 해결해야 할 문제들... 이런 것들이 오에의 문학적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또한 느낄 수 있었고. 특히,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이 시인의 시들이 준 영향들. 아이와 '함께' 살아가기로 깊이 생각하게 된 마음. 그런 마음을 담은 <새로운 사람이여 눈을 떠라>라는 그의 책.

 

단테의 <신곡>. 죽마고우였던 이타미 주조... 유명한 영화 감독이었던 이타미 주조가 스캔들에 휩싸여 빌딩 옥상에서 뛰어내려 죽었을 때... 오에는 단테의 <신곡:지옥편> 제13곡을 다시 읽었다고 썼다. "나의 영혼은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 없어, 죽어서라도 누명을 벗고자 올바른 몸으로 옳지 않은 일을 행하였다." (p144) ...  이 경험의 마지막에서, 오에는 고전을 읽으라고 얘기한다.

 

이렇든 고전은 다양한 형태로 몇 번이고 우리에게 새롭고 심오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측면이 있어요. 특히 노년에 이르러 그것이 주는 풍부한 경험을 생각하면, 저는 젊은 여러분에게 그때를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고전을 제대로 만들어두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p154~155)

 

나의 고전. 무엇이 있을까 를 잠시 책을 내려놓고 생각해보았다. 어렸을 때부터 읽었던 책들 중에 내 마음에 남아 재독을 하고 싶을 정도로 인상에 남았던 책들도 떠올려본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 카뮈의 <이방인>... 그렇게 몇 가지가 떠오른다. 아 다시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수상한 이인조'의 중요인물인 이타미 준과의 인연에 대해 쭈욱 이야기하는 말미의 글들에서는 ... 괜한 찡함이 느껴졌었다. 

 

그에 더하여, 저는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책이여, 안녕!>에서, 니시와키 준자부로가 번역한 T.S.엘리엇의 <네 개의 사중주>를 종종 인용했는데, 이번에 삼부작을 다시 읽으면서 직접 인용하지는 않았던 <리틀 기딩>에 나오는 다음의 한 소절이 지금 제 귀에 들리는 듯 합니다.

 

나는 옆어지는 밤의 어둠 속에서 고개 숙인 얼굴을 처음 보았다. / 낯선 사람 보듯 날카롭게 쏘아보는 동안 / 불현듯 내가 아는 죽은 선생을 닮았다는 걸 깨달았다. / 잊어버렸으나 어렴풋이 떠오르는 / 하나의 얼굴인 동시에 수많은 얼굴이다. (중략) 그리하여 나는 일인이역을 하며 소리쳤다, / 그리고 상대방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 "뭐야, 자네 이런 곳에 있었나?"

 

'그렇다, 나는 이런 곳에 있다' 라는 마음을 담아 오랜 우정을 쌓아온 그리운 분들, 아울러 이 작품을 읽어주셧으면 하는 신세대 분들에게 이 책을 보냅니다. (p177)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특별한 인연들은 있기 마련이다. 이인조로서의 삶을 살아나가게 된다. 그런 사람들이 일생을 함께 할 수도 있고 먼저 떠나가기도 하고 그 시기만 함께 한 채 인연이 다하지 않을 수도 있고.. 하지만 그들이 있었기에 내가 있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기억하는 그들. 남은 반쪽인 내가 기억하는 나의 사람들. 이인조의 반대편. 그들에 대한 추억을 찬찬히 떠올려보기에 좋은 단초를 제공하는 글이었다.

 

이제 80대가 된 老작가의 지나온 인생과 책에 대한 글을 읽는다는 건, 참으로 소중한 경험이었다. 정말 진솔하게, 책을 사랑하고 읽고 쓰는 것에 한평생을 바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들, 그것이 진실이기에 글 너머로 감동이 전해오는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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