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드로 파로디의 여섯 가지 사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외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하우스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책을 고름에 있어 난 항상 아마추어인지도 모른다. 어디에선가 읽었던 글을 기억하면 아마추어는 늘 작가나 음악가의 이름이 대가인 것을 고르고는 마치 굉장한 것을 선택한 양 우쭐댄다고 했다. 말하자면 본인의 식견이나 관점이 아닌 남의 관점에 슬쩍 얹어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싶은 심리가 있는 것이 아마추어라고 하겠다. 진정한 프로는, 그래서 남들이 못 보는 진주를 캐내고 그것을 음미하며 알리기에 힘쓰는 것인가 보다. 아뭏든 나는 주로 작가의 이름, 특히 이름이 많이 알려진 작가들의 책에 선듯 손이 가는 아마추어로, 이 책을 산 것도 솔직히 그런 얄팍한 마음이 지배적이었다.

생각해보라. 보르헤스와 카사레스와 같은 중남미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 중의 문호가 공저하여 펴낸 '추리소설'이라니. 추리소설을 그저 문학의 변방 중에서도 밑에서 세기 더 편한 순서에 놓곤 하는 것이 순수 문학을 하는 사람들의 입장이라는 선입관을 빼고라도 특히 보르헤스와 같이 환상적이고 남다른 필치를 자랑하는 작가가 추리소설을 썼다는 자체가 놀라움이었다. 그가 쓴 추리소설은 어떤 분위기를 가지고 있을까. 이러한 호기심으로 난 쌓아둔 다른 책들을 다 제치고 이 책을 먼저 손에 들었다.

다 읽고 난 나의 감상은 '역시' 라는 거다. 대작가가 쓴 책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봐도 훌륭하다. 이 추리소설은 아주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전혀 평범하지 않은 책이다. 범죄를 추리하는 탐정(?)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는 전직이 이발사인 죄수이고 한발짝도 밖에 나가지 않은 채 의뢰인의 말만 듣고는 머릿 속에서 온갖 가정을 세운 후 인간의 본성과 일의 정합적인 논리라는 측면을 고려하여 어느새 사건을 해결한다는 줄거리 자체가 일단 그렇다.

의뢰인들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가 또한 그렇다. 우리가 흔히 추리소설에서 접하는 의뢰인들은 가급적 말을 많이 하지 않으려 하거나 필요한 말만을 한다. 물론 그 중에서 헛되게 나오는 말들을 조합하여 범죄를 구성하는 것은 탐정의 몫이며 따라서 탐정은 끝없이 질문을 하고 의뢰인은 끝없이 답을 하게 되는 구조다. 하지만 이 추리소설은 탐정의 역할을 맡은 죄수가 말을 하는 것은 사건이 해결되고 나서일 뿐이다. 사건을 의뢰받을 때는 그저 파란 컵에 마테차 한잔 받아놓고 조용히 마시고 있으면 의뢰인들이 느닷없이 닥쳐와 온갖 허세와 과장과 미사여구를 집어넣어 자신이 겪은 상황들을 설명하기 바쁘다. 그들의 말 속에는 그저 사건을 기술하는 것만이 있지 않고 시대의 정황과 인간의 허장성세, 그리고 내면의 본성 등이 다 드러나게 되고 삶에 대한 통찰력을 가진 죄수 탐정은 이것을 잡아서 사건을 바로잡아주곤 한다.

나는 이 여섯가지 사건 중에서 '타데오 리마르도의 희생자'(프란츠 카프카를 기리며라는 부제가 붙은)가 인상적이었다. 책 속의 해설에도 언급되었지만 이 소설은 사람의 심리에 대한 아주 세심한 통찰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심리학을 들먹이지 않아도 이 소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결말을 보며 사람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기저의 심리는 무엇인가를 느끼게 해준다.

또 하나를 들자면 개인적으로 '산자코모의 숨은 뜻'도 좋았다. 사실 읽으면서 어떠한 결론이 내려질 지 어느 정도 예측이 되는 것이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냥 범인을 찾는 추리소설이 아니라 범죄라는 외면으로 가려져 있는 사람의 잔학성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었다고 본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일 것은, 환상적인 문체이다. 정말 어수선하리만치 화려한 미사여구와 장황한 설명들이 유려하게 펼쳐지는데 한자 한자 꼼꼼히 읽노라면 그 속에 빠지지 않을 수 없으리만치 좋다. 보르헤스와 카사레스의 예의 그 멋진 글맛들이 조금은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추리소설이다. 난 이 대가들이 추리소설에 흥미를 가지고 함께 재미나게 이 책을 써나갔다는 것만으로도 점수를 많이 많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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