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이다. 그냥 무심코 지나갈 뻔 했는데, 출근 전 라디오에서 선생님 얘기가 자꾸 나와서 날짜를 확인해보니 스승의 날이었다. 스승이라는 말이 예전처럼 친근하게 느껴지지 않을 즈음, 난 그 단어를 잊어버렸다. 물론 지금도 대학원 때 은사들을 모시고 스승의 날 행사를 한다. 제자들이 다 모여서 식사를 하고 선물을 드리고 꽃바구니를 안긴다. 그 모든 절차가 의미없다는 건 아니다. 다만, 스승이라는 말에서 오는 어떤 강박관념... 스승은 어때야 한다 라든가 하는 것이 내게서 사라졌다는 것 뿐이다.

 

스승의 날이 오면, 나도 기억나는 선생님이 있다. 나쁜 의미에서 혹은 좋은 의미에서. 나쁜 의미에서의 스승은 스승이라기보다는 선생님이라는 말을 떠올리자마자 머릿 속에 나타나는, 뭐랄까 고정된 이미지이다. 중학교 때였던가. 담임선생님이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에 굉장히 연연해 하시는 분이셨다. 나름대로 매우 똑똑해서 S대를 나왔는데 '고작' 선생님을 한다는 것에 피해의식을 가지고 계셨다. 항상 화를 냈고 우리 전체를 무시했고 자신의 똑똑함을 뽐내는 분이셨다. 그러니까 반에서 공부를 못하거나 공부를 못하는데다가 날라리라도 되었다가는 심지어 이름도 못외우는 상황이었다. (학년이 다 끝나가는데, 너 이름이 뭐냐? 라고 묻는 담임을 상상해보라)

 

어느날, 우리 반에 집도 그닥 잘살지 않고 공부도 하위권이고 게다가 겉멋이 살짝 들어서 날라리처럼 하고 다니던 남자아이가 옆반의 친구들이 청소하는 데 가서 놀다가 그 반 담임에게 걸린 일이 있었다. 그건 일상에서 그렇게 벗어나는 일도 아니었고 아주 야단스럽게 논 것도 아니었다. 그냥 청소시간에 가서 친구들을 불러내어 같이 논 거다. 그런데 문제는 그 반 담임이 우리 반 담임에게 그 사실을 일렀다는 데에 있었다.

 

그 며칠 후인가. (우린 사실 그런 일이 있었던 줄도 몰랐다) 담임이 종례 시간에 엄청나게 화가 난 얼굴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아이를 불렀다. 그 아인, 날라리이긴 했어도 그냥 착한 애였다. 쭈뼛거리며 그 아이가 교탁 앞에 서자마자 담임은 일단 뺨따귀를 때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가타부타 말도 없이 그냥 때렸다. 그 때 흘렀던 그 적막. 맞은 아이도 어안이 벙벙하고 우리도 할 말을 잊은. 그리고 잠시 후 조성되던 알 수 없는 공포의 분위기. 담임은 물어봤다. 아니 거의 취조하는 수준이었다. 그 아이는 맞은 이후라 대답도 잘 하지 못했고 담임은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결국 그랬다는 그 아이의 모기만한 목소리에 더 때릴 구실을 찾았다는 듯이 담임은 그 큰 손으로 그 아이의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그냥 뺨만 때렸다. 어찌나 세게 때렸던지 앞 칠판에서 뒤 칠판까지 아이가 밀려갔다. 밀려가는 와중에 계속 때렸다. 뒤 칠판에서 아이가 넘어졌다. 일어나라고 했다. 다시 앞 칠판까지 뺨만 때리면서 아이를 몰아세웠다. 그런 왕복이 세번 계속 되었다. 나중엔 아이가 거의 기진맥진했다. 사실 비명도 없었다. 아프다고도 얘기하지 않았다.

 

그 아인 그냥 중학생이었던 거다. 평범한 중학생. 공부가 하기 싫고 외모에 관심이 부쩍 는, 그런 아이였을 뿐이다. 우리는 아무 말도 못하고 쥐죽은 듯이 가만히 있었다. 선생님 그만 하세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비겁함이 나의 정의를 눌렀다. 난 그 때 느꼈던 나의, 그리고 우리반 모두의 비겁함을 아직까지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 아이가, 공부를 잘 했거나, 집이 잘 살았거나, 좀 잘 차려입고 다녔다거나, 똑똑했거나 그랬다면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을까. 난 교실에서 세상의 부조리를 다 느낀 심정이었다.

 

구타(이 외에 달리 표현할 말이 있을까)가 끝나고 들어가라고 했다. 그 아이는 얼마나 창피했을까. 친구들 앞에서 그런 식으로 맞았으니. 어쨌든 들어가 앉았다. 담임은 청소시간에 다른 반에 가서 노닥거림으로써 자기에게 얘기가 들어오는 일이 앞으론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저 그 한마디 했으면 될 일이었다. 담임의 얼굴에는, 뭔가 자신의 울분이 풀린 듯한 시원한 웃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난 그 표정 그 말을 내내 잊지 않고 있었다. 그건 정말 충격이었기 때문에.

 

내게도 좋은 스승들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선생님을 생각하면 이 장면이 늘 떠오르는 건... 사춘기 시절의 나에게 약한 사람이 어떤 취급을 받는가를 똑똑히 느끼게 해준 순간이어서일거라고 생각한다. 늘 그 아이가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궁금했다. 소식도 알 수 없지만.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기를 바랬다. 그래서 예전에 그런 취급 받았던 걸 웃으며 얘기할 수 있도록.

 

... 그 선생님은 어떻게 지내실까도 가끔 궁금하다. 지금쯤은 연세가 꽤 드셨을텐데. 아직도 그럴까. 살면서 가장 안 좋은 것은 피해의식인데 그걸 떨쳐내셨을까. '고작' 선생님이라는 생각으로 생계를 위해 끝까지 선생님을 하셨을까. 갖가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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