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일까. 전집에 대한 열망이 생겨났더랬다. 어렸을 때는 전집 아니면 책을 구하기 힘든 적이 있었다. 계몽사에서인가 나왔던 위인전집 한국거 외국거 15권짜리를 종이가 바래질 때까지 보고 또 봤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인물사에 대한 기본 지식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또 어느 출판사였던가 중고등학생을 위해 세계문학을 요약본으로 내놓았던 60여권의 책을 동생과 내기하며 열심히 읽었던 적도 있었다. 그 외에도, 여럿 있었지. 그 때는 책장에 비슷한 표지의 책들이 주르륵 꽂혀있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고 책을 살 때 한질씩 사는 게 일상적이었다.

요즘엔 그런 일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책이 같은 출판사에서 시리즈로 계속 나오는 경우는 있어서 사다보면 같은 디자인의 책들이 나열되는 경우는 있지만, 전체를 통으로 사지는 않게 되었다. 그만큼 같은 책이라도 여러 곳에서 번역되어 나오고, 출판사도 여럿이고, 번역자도 다양해지고, 책도 훨씬 많이 번역되어 나오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인가, 전집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젠 위인전집 이런 것은 아니고 한 작가에 대해 제대로 전공한 사람들이 그의 작품들 전체를 번역하는 작업을 해서 내놓는다던가 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카뮈, 카프카, 카잔차스키, 푸코, 에코, 헤세..등등. 난 그것들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고 적쟎은 돈이 드는 것을 간파한 후 적립금을 차곡차곡 모으곤 했다. 그러나 중간중간 보고 싶은 책들이 불쑥불쑥 나오는 탓에 적립금이 계속 보존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쩝. 내 인내의 끝을 보는 기분을 늘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책을 주기적으로 지르는 나의 손가락이라니.

 

그래서 이제 주위의 지인들을 조르기 시작했다..우히힛. 내가 못 사니 남으로부터 선물을 받고 싶었던 탓이고 전집은 선물로 받겠노라 내가 사지 않겠노라 내 맘대로 결정해버린 덕분이었다. (이건 내가 생각해도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궤변이다. 나도 안다) 그리고 처음에는 콧방귀를 뀌었던 지인에게서... 정말 뜻하지 않게 어제 선물을 받아버린 것이다! 오호 쾌재라!

 

 

 

 

 

 

 

 

 

 

 

 

 

 

집에 도착한 산 만한 알라딘 박스를 보면서 이 속엔 뭐가 들었을까 궁금해했던 그리고 두근거렸던 심정은 지금까지 지속되어 상쾌한 마음으로 아침을 맞게 해주었다.

 

프란츠 카프카는.... 한번쯤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들로 가득하다. <변신>이나 <성>은 내게 있어 아니 많은 작가들에게 있어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저 그런 공무원일 수 있었던 사람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지속적인 지성을 제공하는 작품들을 썼다는 자체가 드라마다. 그의 병약해보이는 얼굴을 보면 어디에서 이런 필력이 나올까 싶다. 책을 펴보니 자잘한 글씨가 다닥다닥 붙어 있어 요즘의 편집과 다른 느낌을 주고 어쩌면 이것이 카프카의 책을 읽는 또 하나의 괴상한 즐거움이 될 지도 모르겠다.

 

헤르만 헤세는... 사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다. 성질이 나빠서, 그닥 땡기지 않는 작가일수록 전작을 다 읽어대는 습관이 있어서 작품은 대충 다 읽은 것 같다. 그래도, 최종적으로 내 스탈은 아니야 로 결론을 내려버렸지만..(쯔쯔) 근데 이번 전집은 산문집, 헤세가 항상 추구하던 것들 사랑, 예술, 인생에 대한 아포리즘이 담겨 있어 좀 색다를 수 있겠다. 들척여보니 주옥같은 말들이 눈에 확 들어온다...

 

코난 도일은... 사실 셜록 홈즈 전집이라고 해야겠지만, 몇 권씩 가지고는 있으나 (황금가지 것을 포함하여) 묘하게도 꼭 다 갖고 싶은 책이었다. 셜록 홈즈라는 사람이 주는 이미지는, 여타의 수많은 캐릭터들과는 다른 무엇이 있고 그래서 볼 때마다 질리지 않는 구석이 있다. 소설이든 뭐든 만들어낸 캐릭터가 마치 존재하는 사람인 양 이렇게 다가오는 건 정말이지 신비에 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기실, 이 책을 선물한 지인은 최근에 내가 화가 난 것에 대한 달램의 차원에서 예전에 졸라댔던 것을 기억하고 주문하기 버튼을 꾸욱 눌렀으리라. 책선물은 늘 내게 환함을 안겨주고 많은 섭섭한 감정들을 녹아내리게 하지만, 그리고 이번의 경우에도 큰 기쁨과 뿌듯함을 가지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화남'이 말끔히 가셔진 것은 아닌 것 같다, 슬프게도. 그러나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것은 미루어두자. 감사는 감사고 화남은 화남이니, 별개의 것들을 연결하여 좋은 의미마저 퇴색하게 하는 일은 어리석은 짓일 뿐.

 

이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상에 깜짝 선물을 제공해줌으로써 마음의 빛을 더해준 지인에게 큰 감사의 마음을 드리고 싶다. 꾸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