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는 스릴러를 읽는 게 버릇인 내가, 이번 주는 박완서 님의 <기나긴 하루>를 집어 들었다.


박완서님의 마지막 소설. 나는 우리나라 소설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지만, 이 분의 소설은 가끔 읽는 편이다. 81세로 돌아가실 때까지 소녀같은 웃음을 간직하신 그분의 모습에 대한 신뢰도 신뢰지만, 이 분의 글은, 억지로 만들어낸 게 아니라 그냥 주욱 써내려간 듯한 편안함을 주어서 좋았다. 처음 접한 글은 <나목>. 처녀작의 어색함이 느껴지긴 했지만, 뭐랄까... 기성작가들에게서 느껴지지 않았던 신선함(정말 신선함)이 느껴져서 좋았다. 그 이후, 6.25 전쟁 전후의 가족사를 바탕으로 많은 글들을 펴내신 것을 읽으면서 그 질곡어린 삶에 마음 아팠더랬다. 이 책에도 써있었지만... 끊임없이 그 얘기를 써낸다고 뭐라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 시대를 얘기해야 할 의무감으로 썼다는 작가의 말에 동감할 수 있다... 그리고 조금 평온한 삶, 한 남자의 아내로서 다섯아이의 엄마로서, 그리고 늦깎이 데뷔한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가던 분에게 큰 시련이 닥친 것은 88 올림픽 즈음... 남편과 아들을 동시에 저세상으로 보내는 아픔을 겪게 되면서였다.. 누가 들어도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아픔이었으리라... 생각되는 그 처지를 어떻게 이겨내셨는 지 알 수가 없을 정도다...

 

살면서 늘 자신을 아꼈고 지지했고 궂은 일 도맡아 해주며 생활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주던 남편이 병으로 훌쩍 떠나고 나서의 슬픔으로 몸을 못 가누는 와중에, 공부 잘하고 성실했던 아들 아이도 불의의 사고로 떠나가게 된 그 시절을 어떻게 견디어내셨을까... 그렇게 험한 생을 살아냈으면서도 순수한 모습을 유지하며 곱게 늙어가시던 박완서님의 모습이 다시금 떠오른다. 천상 작가였던 것 같고 천상 여자였던 것 같고...

 

이 책, 읽어내려가면서 지금은 세상에 없는 작가의 정취를 다시금 느끼고 있다. 한글로 지은 소설은 읽는 동안, 내 마음의 겉을 떠도는 것이 아니라 내 폐부 깊숙이 찔러지는 맛이 있다. 잘된 소설의 경우. 가식 없고 감정에 충실하면서 인생의 본질에 근접한 작가들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이 노작가의 글이 꽤나 마음에 와닿는다.... 책이나 사람이나, 쓸데없이 말을 많이 하거나 쓸데없이 현학적이거나 설명이 긴 것을 몹시도 싫어하는 나로서는, 담백한 글을 쓰는 작가들이 그립고, 그래서 박완서님이... 이 주말에 문득 그리워졌더랬다.

 

 

 

 

 

 

 


 

 

 

 

 

 

 

 

 

 

 

대충대충 담는데도 참 많은 글들을 남기셨구나 싶다. 이 중에는 읽은 것도 있고 안 읽은 것도 있고... 읽을 때마다는, 그 글의 친밀함에, 유려함에, 그러나 소박함에 늘 감탄했었는데.

지금 읽는 책의 제목처럼.... 인생이 때로 '기나긴 하루'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생로병사가 마치 하루에 일어난 듯, 짧게도 여겨졌다가 그 많은 시간들을 펼쳐놓으면 아 참 길구나 생각되기도 하지만, 사람의 생이라는 것이 그저 하룻밤 꿈에 불과하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 많은 것을 탐하고 욕심내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즐겁고 힘들고 함께 해서 든든하다가도 홀로임에 외롭기도 한... 지나온 생과 살고 있는 생과 다가올 생이 과연 존재는 하는 것인가.. 존재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인지. 가을도 아니고... 햇빛이 쨍쨍거리는 이 여름에.

어쩌면 찬란하고 환한 계절 덕분에 오히려 쓸쓸해지는 지도 모르겠고 인생의 부조리를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 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박완서님은 존재하셨다가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의 글들은 늘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오고, 그래서 그 변하지 않음과 영원성에 저릿함을 느끼는 주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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