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가면서 무슨 책을 가져갈까 고민 고민 했다. 여행 혹은 출장에 앞서 가지는 소소한 즐거움 중의 하나는, 여행 혹은 출장지에 오고가며 거기 숙소에서 읽을 책을 고르는 것이다. 그건 때에 따라 틀리고 여행 혹은 출장의 성격에 따라 틀려서, 많은 읽지 않은 책들 (정말 왜 이렇게 사대는 지. 이젠 포기상태이지만서도) 가운데에서 마음이 가는 소리를 들으며 고르는 나만의 즐거움이라고나 할까.

<스위치>가 거의 다 끝나가서 그걸 들고 갈까 하다가 가서 다 읽어버리면 어쩌지 ..(어쩌기는! 보고서 써야지! 책 읽을 시간이 어딨어! 라고 속에서 꾸짖음이 들렸으나..그래도..라는 작은 소리에 결국 굴복ㅜ) 싶어서 새 책을 들고 가기로 결정. 그래서 고른 것이 이 책이다..

하지만 가서 읽으며 (거의 2/3가까이 읽었다) 후회했다. 아 이 책이 이런 내용인 줄 알았다면 안 가져왔을 거야..2009년 퓰리쳐상 수상작인 이 책은 삶의 고단함에 대해, 인생의 허무함에 대해, 나이듦의 놀라움과 세월의 무상함에 대해, 그리고 소중한 것은 항상 잊혀진 채 지나친다는 것에 대해 매우 따뜻하고 슬프고 소소하게 그려나간 책이다. 메인주의 한 마을에 사는 올리브 키터리지라는 전직 수학교사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사람 한사람 단편형식으로 쭈욱 풀어나가는 이 책을 읽다보면 고즈넉한 호텔방이 그렇게 낯설고 외롭게 느껴질 수가 없다.... 

안 그래도 요즘 상황이 안 좋고 사는 게 좀 힘들고 그래서 마음이 많이 약해져 있는 것 같아 주의하고 있는데 말이다. 이 책은 그런 나의 마음에 둔탁한 충격을 준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지없이 일상적인 이 이야기들이, 시간들이 너무나 명확한 현실이고 삶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삶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다. 사람은 나서 자라고 나이를 먹고...결혼을 하기도 하고 아이를 낳기도 하고 다른 사랑을 하기도 하고 슬픈 일을 겪기도 하고 사람을 미워하기도 하고 사랑하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하고 스스로를 지탱하기 힘들 때도 있고...그러나 그런 와중에 누구나 '늙는다'. 살아온 날이 살 날보다 훨씬 훨씬 많아질 때 즈음에 사람들은 자신에게 있었던 소중한 시간들과 사람들을 그제서야 기억하게 되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생에서 어그러져버린 그것들을 어떻게든 지켜보려 노력하게 된다. 때로 죽음이 무섭고 때로 병이 두렵고 때로 적막함에 숨이 막히는 노년. 그런 이야기들이 이 책에 담겨있다.

올리브는 생이 그녀가 '큰 기쁨'과 '작은 기쁨'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달려있다고 생각했다. 큰 기쁨은 결혼이나 아이처럼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일이지만 여기에는 위험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해류가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작은 기쁨도 필요한 것이다. 브래들리스의 친절한 점원이나, 내 커피 취향을 알고 있는 던킨 도너츠의 여종업원처럼. 정말 어려운게 삶이다. (p124)   

나는 가끔 내가 사는 삶이 힘들다. 남의 삶이 내 삶이길 무모하게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가져야 하는 '나'의 삶이기에 좀더 명확하고 좀더 기쁘게 살고 싶기도 하다. 이러한 간극이 메꿔지지 않을 때 버거워지는 것 같다, 삶이라는 무게가. 그런 무게감을 함께 할 수 있는 책을 만난 '작은 기쁨'은 크나, 작은 호텔방에 혼자 쳐박혀 읽기에는 좀 외로왔다. 아마 이 책은 울산이라는 도시에서 느꼈던 나만의 부담스러웠던 매일과 함께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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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 2010-06-19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픈 책이지요. 슬퍼서 슬픈게 아니라 살이의 사소함, 시간의 유한함때문에...
곧 은퇴를 앞둔 회사 선배에게 선물했다가 술자리에서 늙은 남자의 눈물을 보는 낭패를
겪기도 했습니다. 삐루(!) 한병 옆에 두고 읽다가 소주 마시러 가야하는 책 ^^

비연 2010-06-19 14:36   좋아요 0 | URL
아...눈물. 그래요 저도 간간히 눈물을 보이게 하는 책이더군요.
슬퍼서 슬픈 게 아니라 삶의 소소함과 고단함이 느껴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