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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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읽기 전에, 이 속엔 책의 내용이 담겨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사실 책의 내용을 다 안다고 해도 감동이나 가슴 먹먹함이 덜해지리라 여겨지진 않지만.


어제. 일요일이 끝나가는 게 아쉬워서 맥주 한캔을 땄다. 집에서 맥주는 매번 금물이었는데, 어느새 조금 완화되어서 말이다. 하이네켄과 아사히와 크롬바커를 사들고 왔고, 어제는 크롬바커의 날이었다. 크롬바커는 좀 비싸긴 한데 맛은 좋다. 땅콩과 아몬드를 한웅큼 집어들고 집에 같이 넣으면서 일드를 볼까 책을 볼까 망설이다가 책으로 낙찰. 일드는 이상하게 한 몫에 다 보게 되어서 일단 시작하면 좀 피곤하다. 책은 뭘 볼까. 기웃기웃하다가 오래전부터 사두고 보지 않고 있던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집었다.

나이가 덜 들었을 때는 그랬다. 좀더 비극적이고 좀더 처연하게 끝나는 영화나 책이 좋았다. 웃기고 해피엔딩이고 그런 영화나 책을 좋아하는 애들이 유치해보였다. 니네가 인생을 뭘 알아~ 뭐 이런 치기였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 나이를 그 때보다 조금 더 들고 보니, 그냥 웃기고 단순한게 좋다. 현실에도 널려있는 가슴아프고 우울한 이야기들을 영화나 책에서 확인하는 게 괴롭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조금씩 취향이 바뀌어갔다고나 할까. 그런데 영화는 피해갈 수 있어도 가끔 책은 피하지 못할 때가 있다. 일단 좋은 책은 사고 보는 거니까. 그렇게, 이 책을 샀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는 그 내용이 너무 느껴져서 보지 않아도 슬퍼서 '감히' 집어들 엄두를 못 내었던 것 같다.

울 수 밖에 없었다. 아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처음부터 눈물이 났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라는 첫 문장부터 가슴이 섬찟했다. 엄마를 잃어버리다니. 처음엔 큰 딸의 시각으로 그 다음에는 큰 아들의, 그리고 남편의, 그리고 잃어버려진 엄마의, 마지막으로 다시 큰 딸의 눈으로 그려진 구성을 하고 있다. 어느새 정신이 혼미해진 엄마는 서울에 있는 둘째 아들네에 올라왔다가 서울역 전철에서 평생을 무심했던, 그래서 혼자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가곤 했던 남편의 손을 놓친다. 그렇게 엄마는 자식들과 남편의 곁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가난했던 그 시절에, 못 배워 글도 못 읽는 무학의 '박소녀' 엄마는 자식 넷을 키우느라 뼈빠지게 일했다. 못 배운 한을 풀려고 어떻게든 아이들 손에 책을 쥐어주고, 없는 살림에 배 안 곯릴려고 한시도 쉬지 않았다. 그 동안 남편은 바람을 피웠고 여기저기 유랑을 했고 시어머니같던 고모의 시집살이가 있었다. 자신을 그렇게나 위해주던 시동생 '균'은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갔고 그게 두고두고 한이 되어 봉사하러 다니던 곳의 아기에게 '균'이라는 이름도 지어주며 애지중지했으며, 어느날 만난 '그'에게 심정적으로 의지했었으나 닿지 않는 곳에 거리를 두고 살았다.

그런 엄마의 인생을 한 여자의 인생으로, 나와 같이 누군가를 엄마로 두고 어린시절을 거쳐 꿈많던 소녀시절을 지나 누군가와 결혼하고 그렇게 살아나간 '여자'로 봐준 사람은 없었다. 그냥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였고, 엄마는 항상 그 자리에 있으면서 나를 위해 무한의 사랑을 주어야 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 엄마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p254) 이야기할 때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었다. 아마도 엄마라는 존재는 물리적으로 잃어버리기 전에 마음에서 이미 잃어버려진 것인지도 모른다. 한번도 인간이며 여자로 이해되기 힘든 존재인 엄마, 어머니.

신경숙의 문체는 여전히 짜임새있고 담담하지만, 예전보다 많이 부드러워져있고 더 정겨워져있었다. 마지막, 피에타상을 보며 엄마의 모습을 투영하는 장면에서, 작가나 혹은 이 땅의 많은 딸들의 이해와 해방을 보았다면 비약인 걸까. 누군가의 삶을 이해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를 낳아주고 내게 헌신을 다하는 존재의 인생을 한번쯤 헤아리고 그 속의 욕망과 감정을 생각해보는 건 정말 필요한 일이지 않을까. 그나마라도 하는 것이 내게 평생 '마음의 고향'이며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는 존재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라는 생각에 다시한번 펑펑 울게 된다.

이 땅의 모든 존재는 엄마를 가진다. 그 그리움으로 이 책을 함께 한다면 좋을 것 같다. 늘 추상적으로 관념적으로 가지고 있던 나의 엄마를, 글 속의 '박소녀' 엄마의 모습 속에서 구체적으로 재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가슴벅찬...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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