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안 나이트 살인 노블우드 클럽 5
존 딕슨 카 지음, 임경아 옮김 / 로크미디어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존 딕슨 카의 작품들은 <황제의 코담뱃갑>, <세 개의 관>, <화형법정>, <모자광살인사건>, <구부러진 경첩> 정도를 읽어왔던 것 같다. "<벨벳의 악마>는 책장에 꽂혀있고. 어떤 작가이든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그닥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만, 존 딕슨 카는 고전추리소설의 대가로서 사모해마지 않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내 경우엔, 뭐랄까 딱히 좋다 라는 느낌을 주지는 않는데 말이다, 쓰는 작품마다 고전의 명작이구나 라는 생각은 늘 가지게 되는 작가이다.

아라비안 나이트 살인. 기드온 펠 박사의 서재에 모인 네 남자. 펠 박사, 해들리 총경, 캐러더스 형사, 허버트 암스트롱 경. 그들의 앞에는 살인사건의 증거물들이 놓여 있다. 요리책과 두 개의 가짜 수염, 석탄 덩어리를 던진 자국이 있는 벽의 사진, 구부러진 단검,..그 기묘한 증거물들 앞에서 펠 박사를 제외한 세 명의 사건 설명이 이어진다. 담장 위의 정신나간 노신사, 춤추는 박물관 안내원, 가짜 경찰관, 그리고 박물관 마차에서 튀어나온 난데없는 시체들...

제프 웨이드의 박물관. 흡사 아라비아의 궁전을 연상시키는 그 박물관에서 어느날 저녁 몇 명의 남녀들이 모여 모종의 연극을 꾸민다. 제프 웨이드의 딸인 미리엄 웨이드의 약혼자인 매너링을 골탕 먹이기 위해 모인 사람들. 제프 웨이드의 아들인 제리 웨이드와 딸인 미리엄 웨이드. 미리엄의 친구인 해리엇 커크턴, 집사인 로널드 홈스, 박물관 안내원인 프루언, 그리고 리처드 버틀러와 샘 벡스터. 이들은 박물관이라는 공간을 이용하여 각자에게 역할을 부여하고 매너링에게 조금 겁을 주는 연극을 꾸미기로 한 후 일을 진행시키는데, 그 와중에 조금씩 일이 꼬이고, 급기야 한 배역을 연기하기로 했던 펜드렐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상황은 급반전이 된다.

각기 다른 태생(잉글랜드-스코틀랜드-아일래드)의 세 명의 화자가 사건에 관여를 하게 된다. 관련자들의 엇갈리는 진술들 속에서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과정들이 이어지고 뜻하지 않은 반전들도 연속된다. 그러면서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는 윤곽과, 아 다 해결되었구나 라는 정점에서 다시한번 펠 박사의 날카로운 지적으로 사건이 급마무리되고, 하룻밤의 아라비안나이트는 그렇게 끝이 난다.

존 딕슨 카만이 창조해낼 수 있는 소설이 아니었나 싶다. 밀실살인의 대가이고 지적이면서도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그는 소설의 배경에 시대상도 교묘하게 결합하는 재주가 있다. 특히나 이 책은 고대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박물관과, 하룻밤 계속 되는 이야기의 향연, 그리고 아라비아의 고대모습을 흉내낸 연극장면들이 모두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뭔가 신비하고 뭔가 기묘한 느낌을 가지게 하는 매력이 있다. 또한 세 명의 각기 다른 화자가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절묘한 구성이 꽤나 잘된, 그래서 후대의 탐정소설 작가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특히나 전혀 연관성 없어 보이는 증거들이 나중에 하나의 범죄 스토리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지가 하나하나 밝혀지는 재미가 상당히 크다. 양파의 껍질을 한꺼풀 한꺼풀 벗겨내는 느낌. 혹은 지층의 한 층 한 층을 내려가면서 화석들을 캐내는 느낌.

사실 처음 읽을 때는 산만한 내용과 말도 안 되어 보이는 증거들에 조금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독서를 지탱하게 되지만, 점점 갈수록 빠져들게 되고 그 답답한 심정들이 조금씩 풀려나가는 느낌을 확실히 부여한다는 점에서, 존 딕슨 카는 대단히 멋진 범죄소설 작가라는 것이 입증되는 셈이다. 나처럼 존 딕슨 카를 많이 좋아하지 않는 독자조차도 아 이 정도면 고전추리소설의 명작이지! 라며 무릎을 치게 만드는 작품이라고나 할까.

특히 난 이 마지막 문장이 마음에 든다.

박사가 가스불을 끄자 날카로운 수증기 소리를 한 번 내고 주전자는 잠잠해졌다. 그러고 나서 모두가 마음이 편안해져 식욕을 느꼈고 다 같이 아침을 먹으러 나갔다.

추리소설의 마지막치고는 참 평온한 느낌을 주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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