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다 지로의 소설모음집이다. 영화 '철도원'이 이 책이 원작임은 알았지만, 우리나라 영화인 '파이란'의 원작이 또한 이 책이라는 건 (무식하게도) 이번에 읽어보고야 알았다 (사실, 깜짝 놀랐다).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내다가 몰락하여 뒷골목 불량소년으로 전전하고 급기야 야쿠자까지 했었던 한 남자가 '몰락한 명문가의 아이가 소설가가 되는 경우가 많다' 라는 말에 감명을 받아 계속 소설가의 꿈을 품어왔고, 끝내는 멋진 소설가가 되었다는 작가의 인생 자체가 드라마다. 그런 성장배경이 그에게 준 것은 아마도 인간에 대한 끊을 수 없는 애정이었던 걸까. 이 책 전반에는 인생에서의 만남과 인연이 주는 의미, 그 속에 끼여 있는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한 넘치는 애정이 가득하다.
철도원이라는 직무에 충실했던 한 평범한 남자가 아이를 낳자마자 잃고 부인까지 먼저 보낸 채 쓸쓸히 지내다 정년퇴직을 하게 되고, 환영처럼 나타난 딸의 모습 속에서 행복을 맛보며 죽어가는 '철도원'의 내용은 정말 읽는 내내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야 만든다. 특히 그의 주변에서 따뜻한 마음 씀씀이를 보여주는 동료들의 모습들 또한. '파이란'의 원작인 '러브레터' 또한 마찬가지다. 영화에서 느꼈던 그 느낌들이 고스란히 원작에서도 전해지고, 어쩌면 영화보다는 훨씬 꿈같은 결말을 마련해주어 더 좋았던 지도 모르겠다. 하긴, 영화의 강재는 이 원작의 고로를 너무나 잘 재현하고 있었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악마'나 '캬라','메리크리스마스, 산타', '백중맞이' 등의 작품들도 좋았고, 나는 특별히 '츠노하즈에서'와 '오리온좌에서 온 초대장'이 마음에 들었다. '츠노하즈에서'는 많은 미사여구나 에피소드가 있지 않았지만, 한처럼 남은 아버지에 대한 용서가 마치 나의 얘기인 것처럼 가슴을 파고들었었다. 그리고, 버림받았다는 마음으로 중년까지 산 주인공이 기실은 정말 따뜻한 사람들 속에서 보호받으며 지내왔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도 애잔했고. 누구나 부모에게는 어떤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닐까. 버리지 않아도 버림받지 않아도 말이다. 화해라는 것. 부모와 자식간의 어떤 교감이라는 것이 물결처럼 다가왔었다. '오리온좌에서 온 초대장'도 사실 '사랑과전쟁'같은 스토리일 수 있는 주제를 옛 추억이 서린 영화관과 그 곳을 지키던 (말썽 많은 화제의 주인공이었던) 노부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지금의 나를 돌아보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아련한 터치로 써내려간 작품이었다.
요즘, 각박해지고 있는 세상에서 인연과 사람에 대한 애정과 화해를 이야기하는 책들도 별로 없고 오직 분석과 비난과 해학과 독설이 난무하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것, 저 깊은 곳에 모른 척하고 묻어두었던 감정의 우물에서 끌어올려지는 눈물을 보이게 하는 것은 아마도 이런 책이 아닌가 싶다. 아사다 지로. 정말 멋진 작가이다. 그의 인생만큼이나.
이 영화들, 한번쯤 다시 꺼내 보고 싶어졌다. 특히 철도원은 이 겨울에 참 어울리는 영화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