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스릴러. 하지만 이 책은 '편견'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쩌면 '다른 사람을 보는 차별적인 시선'에 대해서일지도. 그래서 살인사건의 전모가 밝혀졌을 때 (사실 뭔가 좀 급하게 서둘러 많은 것이 해결된 느낌도 있었지만) 씁쓸함이 더 강하게 남는 것 같다.
오름베리라는 곳이 있다. 낙후된 곳. 그 옛날엔 제철소가 있었고 제분소가 있었고 사람들에겐 직업이 있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다 이전하고 남은 것은 변화라고는 없는 매일의 일상과 그 곳에서 먼지처럼 눌러 앉아 사는 사람들, 그리고 난민수용소만이 있을 뿐이다. 산업이 나가고 들어온 것은 난민수용소. 보스니아나 아랍의 이주민들이 갈 곳 없이 떠돌아다니게 하지 않으려고 정부에서 이 곳에 그들의 터전을 마련해주고 지원을 하고 있다. 이제는 쇠퇴해가는 이 곳에서, 대놓고 뭐라 하진 않으나 그 난민들에 대한 두려움, 증오, 역차별당한다는 실의.. 이런 것들이 동네의 저변에 무겁게 깔려 있다.
여기서 성장한 경찰관 말린. 그녀는 이 곳을 벗어나고 싶었고 이제 스톡홀름의 변호사와 결혼을 해서 완전 탈출을 할 수 있는 기회 직전에 이 곳에 다시 돌아온다. 지긋지긋한 곳. 하지만 일상적인 경찰 업무에서 벗어나 좀더 스릴 있는 살인사건을 다룰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돌아온다. 그것이 그녀의 인생에 크나큰 전환점이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테고.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동네가,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던 그 동네가 그녀에게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음을 점점 느끼게 된다. 그녀에겐 엄마가 있고 고모 마르가레타와 사촌 망구스가 있다. 오름베리의 터줏대감들. 외로운 사람들.
엄마 집에서 지내기로 한 건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다 큰 어른은 부모와 함께 살아서는 안 되는 법이다. 마르가레타와 망누스가 어떻게 그러고 사는지 모르겠다. 망누스는 25년 전에 그 집에서 나갔어야 했다. 하지만 마르가레타에게는 달리 아무도 없고, 망누스도 마찬가지다.
외로움은 분명 사랑보다 훨씬 강력한 접착제다. (p310~311)
마지막 대목에서 멈칫, 한다. '외로움'은 사랑보다 훨씬 강력한 접착제라니. 어쩌면 그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이 이렇게 어우러져 사는 건, 사랑해서, 증오해서, 그런 이유가 아니라 외로와서인지도.
열다섯살의 제이크. 엄마가 몇 년 전에 암으로 돌아가시고 알콜중독 증상을 보이는 아빠와 누나와 함께 산다. 이 아이, 여자처럼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다. 자기는 그래서 '돌연변이'라고 생각한다. 병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아는 것이 죽는 것보다 싫다고 생각한다.
여자들은 남자들한테서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 걸까? 아니면 남자들만이 그놈들이 원하는 걸 손에 넣는 걸까? 그렇다는 건 나 역시 어른이 되면 내가 원하는 걸 얻으려고 무슨 짓이든 가리지 않는 인간이 된다는 뜻일까? 여자애들이 조심해야 하는 종류의 인간? 내가 자라면 통제력을 잃게 되나? 그게 남자가 된다는 뜻일까?
그런 거라면, 난 남자가 되고 싶지 않다. (p185)
가부장적인 남자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잘 설명하고 있구나, 이 아이. 남자가 그런 거라면 되고 싶지 않다고 단호히 생각할 줄 아는 아이. 이런 아이가 드레스를 입고 한껏 치장한 채 나갔다가 정신없이 헤매고 다니던 프로파일러 한네를 만나면서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다. 치매를 앓아 정신이 점점 흐릿해지던 한네가 살인사건을 조사하면서 써내려간 일기장을 주워 와서 그것을 읽어내려가면서, 한네를 친구로 생각하면서, 세상에 대해 부딪힐 용기를 가지게 된다. 여자 같다고, 호모 같다고 끊임없이 괴롭히는 친구에게 분연히 대적할 줄 아는 아이로 변하게 된다.
사라진 한네의 애인이자 경찰인 페테르를 찾아나가면서, 8년 전 발견된 여자아이의 유골과 이제야 발견된 어느 여자의 유골을 따라 그들을 살해한 사람을 찾아나가면서, 수없이 부딪히는 타인에 대한 편견이. 알게 모르게 가지고 있는 그 고정된 사고방식이 어떤 것인가가 하나씩 하나씩 드러난다. 난민들에 대한 편견, 여성적인 취향을 가진 남자아이에 대한 편견, 나이든 사람이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편견, 남자와 여자에 대한 편견. 그러나 누구나, 그 대상이, 그 편견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당신이었을 수도 있었어요. 전쟁과 기아에서 도망쳐야 했던 게 당신일 수도 있어요.." 라는 말을 빌어 여실히 전달하고 있는 소설이다.
나는 스스로, 편견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것일 지도 모르겠다. 현실에 부딪히는 많은 일들 속에서 온전히 중립적일 수 있는지, 나의 상황에 비추어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일을 멈추고 있는지, 다른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고의 흐름에 편하게 손쉽게 나를 얹어 그냥 그렇게 따라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했었다. 제대로 산다는 건, 이렇게 어렵다. 아이는 그저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는 세상을, 어른이라는 존재는 얼마나 여러 가지 잔머리를 굴리며 시선을 고정하며 사는지, 가끔씩 흠칫 흠칫 놀라는데, 그 속에 제발 내가 없기를, 항상 바랄 뿐이다... 소설이 좋은 건 이런 거겠지. 어려운 얘길 하지 않아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원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게 할 수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