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초기작이라 뒤에 나온 시리즈에 비해서는 흡인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성가신 사랑>은 다른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묘사하고 있어서 좀 특이하다고나 할까. 오이디푸스 컴플레스나 엘렉트라 컴플렉스와는 조금 다르게, 어머니를 경외하고 닮고 싶어하면서도 그 모습을 싫어하기도 하고, 그 어머니에게 다른 사람이 다가가는 것도 싫지만 또 그 관계를 상상 속에서 구현하는 딸의 모습이 그려지고, 그렇게 해서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들이 왜곡되어 기억되다가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조금씩 겉으로 드러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은. 결말이, 뭐라 똑 부러지게 말할 수 없어서 더욱 애매한 소설이라고나 할까.
근데 나는 이 책에서 그 어머니에게 가해지는 아버지의 폭력성, 삼촌의 외면 이런 것들이 도저히 납득이 안되어서 보는 내내 화가 났다. 그러니까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그린 건 다 이해하겠는데 이런 폭력을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니. 아무리 소설이지만, 정말이지 화가 솟구쳐서 참을 수가 없었다는 것.
나는 삼촌이 왜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 편을 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삼촌은 어머니의 친오빠가 아니던가. 삼촌은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험하게 두들겨 맞아 얼굴이 퉁퉁 붓는 것을 수없이 보고도 누이를 위해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삼촌은 지난 50년 동안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아버지와 변치 않는 단단한 유대 관계를 맺어왔다... (p87)
어머니는 철교 밑으로 도망치다 물웅덩이에 미끄러져 넘어지는 바람에 아버지에게 따라잡히고 말핬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뺨을 때리고 주먹세례를 퍼붓고 옆구리를 발로 찼다. 어머니를 야무지게 손봐준 다음 아버지는 피를 뚝뚝 흘리는 어머니를 집으로 끌고 왔다. 어머니가 입을 열려 할 때마다 다시 주먹이 날아들었다.. (p185)
아무리, 부인이 바람을 폈다는 의심을 해도 그렇지. 아니 설사 피웠다고 해도 그렇지. 이러한 폭력이 정당화될 수는 없는 것이다. 하나하나 대목 대목들이 내 가슴을 후벼 팠다... 그래서 이 소설은 읽고 나서 영 찝찝하다고나 할까. 나머지 '나쁜 사람' 시리즈를 계속 읽어야 하나 싶을 정도이다. 아. 마지막의 역자 후기는 책 세 권을 다 읽을 때까지 읽지 마시길. 역자가 세 권의 책 내용을 다 넣어두어서 다 읽지 않고 보면 스포일이 될 수 있을 정도. 그래서 읽다가 바로 닫았기는 하다... 에잇. <시녀이야기>나 계속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