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기 답답하여 집앞 카페로 나왔다. 노트북을 챙기고 책을 챙기고... 날이 많이 안 추워서 걸어오기도 좋았다. 이 카페는 거의 독서실로 쓰라는 구조로 되어 있어서 노트북에 전원을 연결하고 앉아 일하기 딱 좋다. 사람이 좀 많다는 게 흠인데, 아주 시끄럽지는 않다는 게 또 장점이긴 하다.

 

내 앞에 엄마와 딸이 앉아 있다. 딸은... 많아 봐야 초등학교 1학년 정도. 엄마를 닮았다.. 고 생각했는데 아빠가 와서 인사할 때 보니 아빠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엄마는 화장기 없는 얼굴로 앉아 아이에게 지시를 하기 시작했다. 산수책을 펼치고 넌 오늘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해야 해, 그리고 오늘 해야 할  일들이 또 뭐가 있냐 하면.. 하면서 보여주는데 슬쩍 보니 하나 가득이다. 아이의 질린 듯한 작은 고함.. 이 스쳐 지나가고 엄마는 아이에게 산수를 가르치기 시작한다.

 

세 자리수 이상의 연산과 반올림이 나오는 걸 보니 학원에서 선행을 하는 모양이다. 흠. 아이는 엎어졌다가 누웠다가 아크로바틱을 하듯이 몸부림을 치면서 문제를 푼다. 문제를 풀다가 수시로 엄마에게 질문을 하고 수시로 핸펀을 확인한다. 흠. 하기 싫은 게구나. 엄마는 이어폰을 꽂고 아랑곳없이 "어서 해" 라는 말만 반복하며 영어책을 보고 있다. 다시 슬쩍 보니, 아이가 배우는 영어책인 듯. 엄마가 예습을 하는가. 엄마가 대학에 다시 갈 기세로 열심히 몰두하고 아이는 헤드뱅잉.... 엄마는 초시계를 맞추고 이 시간 안에 다 풀어야 한다고 한다. 아이가 다 풀었다고 내밀고는 과자 사겠다고 일어나니 엄마는 채점 시작.

 

뭔가 그어지는 소리. 엄마 표정 심각. 아이가 돌아왔다. "엄마, 발렌타인 데이가 언제야?" 엄마.. 돌아보지도 않고 "시끄러. 너 다 틀렸어." ... 아이 잠잠. 그리고 왜 틀렸는가에 대한 설교 시작. 다시 풀어. 너 이거 다 해야 하는데 같은 문제 두번 풀면 시간만 갈 뿐이야... 그리고는 아이 이름을 부른다. "예서야."

 

헉. 스카이캐슬을 보신 분들은 이 부분에서 허걱 할 거다. '예서'구나. 가엾은 예서는 다시 헤드뱅잉을 하면서 문제를 푸는둥 마는둥. 지금 머리를 쳐박고 한 문제 두 문제... 거의 진도가 안 빠지고 있다. 엄마는 역시 옆에서 너무나 열심히 공부중. 이 땅의 예서와 엄마의 모습. 전형적이다. 그냥 놀려라. 저렇게 하기 싫어하는데.. 그런 생각이 솟구치지만, 아이가 학원을 다니면 엄마도 어쩔 수 없겠지. 돈내는 학원에서 숙제를 내주면 다 풀어야 하는 것이지. 저 정도 나이 애한테 두 시간 이상 앉아서 공부하라고 하는 건 거의 고문이다. 나는 어땠지. 물론 나랑은 세대가 너무 다르니까 이런거 비교하면 꼰대겠지만... 역시 난 저 때 놀았다. 학교 숙제만 하고. 그리고 지금 기억나는 건, 그 때 놀 때의 기분좋았고 신나는 기분이다.

 

앞에 앉은 엄마는, 딸을 어찌나 사랑하는 지 먹이고 얘기해주고... 그래. 이 땅의 엄마들이 다 자식을 위해서 저러는 것이지. 사랑의 깊이가 다르겠는가. 싶다가도 저리 헤드뱅잉하면서 온 몸을 비틀면서 공부하는 건 남는 게 없는데 어떻게 생각하는 지 매우 궁금해진다. 애는 계속 놀 생각밖에 안 하는데. 발렌타인 데이가 궁금하고, 집에 가면 있는 게임기가 궁금하고... 아이를 어떻게 키우면 좋은가 에 대한, HOW-TO에 대한 답은 없다. 다만 아이가 원하는 대로만 해줘도 안되겠으나 원하지 않는 걸 억지로 시키는 건 더 안된다 라는 것이고. 지금 내 앞의 '예서'는 지루한 나머지 입으로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노래도 불렀다가 이상한 흥얼거림도 했다가... 2시간 넘었으니 타임아웃. 나가 놀 때다. 저게 머리에 들어오겠는가...

 

그냥 그렇다는 거다. 이건, 잘한다 잘못한다의 가치가 투영되기 힘든 부분이다. 이 땅에서 아이를 교육 시키고 키운다는 것에서 무엇이 옳은가 무엇이 올바른가는 없는 것이지. 참, 사는 게 팍팍하다. 어른이나 아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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