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생각해도 루이즈 페니의 가마슈 경감 시리즈는 나에게 최적의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권도 실망을 한 적이 없엇고 이번에 읽은 <빛의 눈속임>은 더더욱 마음에 잔잔히 스미는 무엇을 내내 주어서 읽는 동안 참, 행복했다. 책을 읽으면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는 나. 그걸 느끼면 더욱 행복해진다. 행복의 행복의 행복의...
무명의 화가로, 남편 피터의 그늘 아래 늘 가려져 있던 클라라 모로의 개인전이 열리게 된다. 그것도 현대 미술관에서. 전시회 전야제, 갤러리 관계자들, 평론가, 가족, 친구들이 한데 모여 클라라의 집에서 파티가 벌어진다. 클라라의 그림은, 누군가에게는 영감을, 또 누군가에게는 그저 그런 범작의 느낌을 주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대체로 호평... 거기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죽은 자는 클라라가 거의 잊고 지냈던 옛친구이다. 이전에 테러리스트 소탕작전을 벌이다가 스스로도 상처를 입고 부하들 여럿이 죽게 되어 힘들어하는 가마슈 경감과 그의 부관 보부아르 경위가 여전히 상처를 그러안은 채, 이 사건을 해결하고자 쓰리파인즈 마을에 다시 돌아오게 된다.
누군가의 독설이나 의도적인 비난으로 인해 인생의 향방이 갈라지기까지 했을 때, 그래서 그에 대한 증오와 미움이 마음에 껌처럼 붙어 있을 때, 누군가는 망가지고 누군가는 다른 일로 재기하기도 하지만, 감정에 남은 적의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남아있게 된다. 어느 순간, 그것이 표면으로 올라오게 되면 걷잡을 수 없게 될 터이고. 그 전에 상대를 용서하고 그럼으로써 스스로를 구제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리고, 용서라는 건 도대체 무엇일까... 를 한참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가지고 있다. 아픈 상처. 시기와 질투로 인한 상처.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한 상처. 버려짐으로 인한 상처. 말로 인한 상처. 오해에서 비롯된 상처... 마음에 하나씩 둘씩 담겨져 있는 그 상처들은, 곪아져 자신을 소진시키고 분노하게 하고 해결하지 못하는 절망감에 때로, 술이나 다른 위로의 방법에 천착하여 망가져 버리게도 된다. 나에게 상처를 준 자.. 사람은 변하는 것일까. 그리고 변했다면, 변하기 전에 했던 그(녀)의 언행을 지금의 나는 용서해야 하는 걸까. 과연 변한다는 게 가능은 할까...
솔직히 나는, 사람은 근본이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작품 속의 보부아르 경위에게 많은 공감을 했었다. 변하려고 노력할 수 있고 어느 정도 달라질 수는 있으나, 어떤 순간에는 본연의 모습을 도로 드러내는 게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은, 성인이 되고 나서는 바꾸기 힘들다.. 라는 생각에 사람을 가리게 될 때도 있다. 어쩌면 그 사람이 변했으니 달라졌으니 너도 이제 용서해, 뭘 그렇게 꽁하게 가지고 있니 라고 말한다면 더 화가 날 것 같다. 그런다고 없어지지 않을 기억들. 내 뇌에 아로새겨진 그 기억들은 어쩌라는 것인지. 마치 용서해야 하는데 용서하지 않는 나에게 죄가 있는 양 말하는 듯 하여 속상할 듯 하다... 그래서 용서는 상대를 용서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용서는, 나를 나대로 받아들이는 거다. 상대가 변했든 변하지 않았든, 상처받은 나를 위로하고 이제 그 상처가 내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나를 자유롭게 하는 과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작품의 많은 상처받은 자들이 용서에 대해 얘기할 때, 그런 생각을 계속 했더랬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을 좋아하는 것처럼, 루이즈 페니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수많은 생각들을 참 잘 묘사한다는 것 때문이다. 루이즈 페니의 책은, 인생이 무엇인지, 참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서 잘 드러낸다는 것이고, 살인사건도 요즘 나오는 책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하드보일드 적으로 아무나 때려잡거나 그 때 그 때 욱해서 죽이거나 그냥 정신병적으로 죽이거나 그런 것보다는, 사람의 오랜 해묵은 감정들이 살인으로 이어지는 과정들이 차분하면서도 짜임새있게 묘사된다. 계속 쭉 나오길, 이 시리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