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카 솔닛의 글은 늘 명징하고 재치가 있다. 올해 들어서 읽은 책이 두 권째인데, 둘다 좋았다.

 

 

 

 

 

 

 

 

 

 

 

 

 

 

 

 

 

비슷한 맥락의 글들이다. 리베카 솔닛이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 페미니즘, 사실은 휴머니즘이고 폭력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 폭력의 대상인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숨김없는 표현력에 탄복하고 이야기를 주변에 머무르기 보다는 좀더 확산해서 이끌어가는 재주에 감탄한다. 페미니즘이라고 하면 거부감부터 가지는 사람들이야 읽으면 뭐 이런 소리를 .. 할 수도 있겠지만, 페미니즘이 어떤 것인가를 이 책들에서 알 수 있으니 한번 읽어보세요 라고 권하고 싶다. 어제까지 읽은 책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Mansplain)> 이었다. 정말, 멋진 단어다. 많은 것을 설명하는.

 

아무리 사소한 대화에서도, 남자들은 자기가 이야기하는 내용을 알지만 여자들은 잘 모른다는 소리를 여자들이 자꾸만 듣게 되는 것은 세상의 추악함을 지속시키는 일이자 세상의 빛을 가리는 일이다...(중략)... 당시에 내가 어떤 두가지 정황과 관련된 어느 남자의 행동에 반대한 일이 있었는데, 그러자 사람들은 내게 그 사건들은 내가 이야기한 방식과는 전혀 다르게 벌어졌으며 주관적이고 망상적이고 과격하고 부정직한 쪽은 오히려 나라고 말했다. 요컨대 너는 여자라는 소리였다... (중략) ... 남자들은 아직도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그리고 내가 알고 그들은 모르는 일에 대해서 내게 잘못된 설명을 늘어놓은 데 대해 사과한 남자는 아직까지 한명도 없었다. (p20-21)

 

 

리베카 솔닛도 얘기한다. 남자가 다 그런 건 아니라고. 그리고 내가 모르는 일을 잘 설명해주는 일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나는 알고 너(남자)는 모르는데, 자꾸 아는 척 억압하려는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여자들은 한번쯤은 다 겪어보았을 일이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러지 않을 수 있지만, 처음 만난 사람들 중에는 내가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무조건 자기 얘기를 강요하는 경우가 아주 흔하게 있다. 그리고 내가 얘길 하기 시작하면 드세다고, 주장이 강하다고, 가만히 있지 않는다고 힐난을 섞어 얘기한다. 아주 분하지만, '분위기상' 더 말하지 않고 입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넘의 분위기.

 

그 남자는 자신이 고른 피해자에게는 아무런 권리도 자유도 없지만 자신에게는 그녀를 통제하고 처벌할 권리가 있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던 셈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폭력은 무엇보다도 일단 권위주의적이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폭력은 내게 상대를 통제할 권리가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p45)

 

 

도처에서 일어나는 여성에 대한 살인행각들. 물론 여성이 남성을 죽이는 경우도 있겠지만 압도적으로 남성들에 의한 여성 살인이 많다는 것은 통계가 증명한다. 배우자에게 애인에게 아버지에게 어쩌면 가다가 마주치는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폭력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폭력의 최극단이 살인인 것이고. 사람이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르거나 심지어 죽인다는 것은, 통제와 권위주의의 문제임을, 리베카 솔닛이 지적할 때 아 맞아 그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친구 칩 워드는 "계량 가능한 것의 폭압" 이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측정될 수 있는 것이 측정될 수 없는 것에 거의 언제나 우선한다는 뜻이다. 사익이 공익에, 속도와 효율이 즐거움과 품질에, 공리주의가 미스터리와 의미에 우선한다. 사실 우리의 생존에는, 또한 우리의 생존 이상의 차원에는, 또한 우리보다 더 오래 살아 남을 모종의 목적과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우리 문명이 간직할 필요가 있는 다른 생명들에는 후자가 훨씬 더 유용한데도 말이다. (p148)

 

이 책이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계량 가능한 것의 폭압. 본질적으로 자본주의의 가장 큰 폐해라 볼 수 있는 이것. 셀 수 있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그래서 모호하고 일상적이고 미묘한 것들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 리베카 솔닛이 말하듯, 이것은 이에 대한 반란은 상상력의 반란이어야 할 것이다. "미묘한 것, 돈으로 살 수 없고 기업이 구사할 수 없는 즐거움, 의미의 소비자가 되기보다 생산자가 되는 것, 그리고 느린 것, 배회하는 것, 일탈하는 것, 캐묻는 것, 신비스러운 것, 불확실한 것을 선호하는 반란" (p149)이 이를 탈피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변화에는 시간이 걸린다. 군데군데 이정표가 있기는 하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제 나름의 속도로 걷는 데다가 어떤 사람들은 뒤늦게 합류하고, 어떤 사람들은 전진하는 사람들을 멈춰 세우려고 하고, 심지어 소수의 사람들은 역방향으로 행진하거나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워한다.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도 때로 역행하고, 실패하고, 계속 나아가고, 다시 시도하고, 길을 잃고, 가끔은 훌쩍 뛰어넘고, 스스로가 찾고 있었다는 것조차 몰랐던 것을 발견하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여러 세대에 걸쳐 모슨을 간직하곤 하지 않는가. (p207)

 

리베카 솔닛의 글이 좋은 것은 이런 면 때문이다. 절망이 아니라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 미래는 암울하지만, 그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 돌고 돌아 가기는 해도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진보란 '판도라의 상자'와 같다는 것. 한번 촉발되면 다시 주워 담기 힘든 것으로 어떤 방식으로 가든 가게 된다는 것.. 을 믿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읽는 내내 좋았다. 많이들 읽었겠지만 한번 읽어보라고 권한다. 글재주가 있는 사람들은 참 부럽다. 자기가 생각하는 이런 섬세한 결들을 단어로 표현하고 문장으로 나타내어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내는 그 재주. 리베카 솔닛의 다른 책들도 차근차근 읽어보련다. 이미 책장에 꽂힌 게 여러 권이라... (휘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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