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1. 정의와 미소_ 다자이 오사무  

이런 표지인데도, 1번으로 읽고 싶은 신간 목록에 올리는 것은 오로지 다자이 오사무의 책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인간실격에서 희극명사와 비극명사를 본인의 경험과 직관에 의존해 새롭게 정의하던 다자이 오사무를 잊지 못한다. 다자이 오사무의 책이라고는 오직 그거 하나 읽어봤기 때문에 ('나의 소소한 일상'은 사놓고 여태 고향집 책장에 있다. 멋진 작가의 소소한 일상이라는 것은 완전히 그에게 사적으로 더 빠져들게 하거나 실망하게 되거나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사놓고도 선뜻 읽어지지가 않는다) '정의와 미소'라는 제목도 언뜻 낯설고 무엇보다 저런식의 귀여운 표지는 그 자체만으로는 전혀 나를 유혹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다자이 오사무니까. 

2.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_ 설흔   

모르겠다. 이번에 고른 책들은 이상하게 하나같이 표지가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만큼 다른 무언가가 나를 사로잡았다는 이야기인데, 우선 현대문인들의 글 속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시는 '조선의 문장가 이옥과 김려 이야기'라는 점이다. 제목도 참 좋다. 멋지지 않다면 놀러도 안 오겠다는 건가, 싶은 생각도 순간 일었지만, 이내 이게 무슨 삐딱선인가 싶어 그 생각을 금방 내려놓고 나니, 음... 여전히 제목이 참 좋다. 은근한 멋이 있다.

3. 숨 쉬러 나가다_ 조지 오웰   

4월 신작 소설 중에는 이름만으로도 압도하는 작가들이 적지 않다. 다자이 오사무와 비슷한 이유다. 조지 오웰이 아닌가. 빅브라더를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통찰력으로 예견해냈으며, 훗날 무라카미 하루키로 하여금 '1Q84'를 쓰게 하였으니 이 얼마나 대단한 작가인가 말이다. 1938년에 이미 현대인의 소외를 훌륭히 그려낸 책이라고 하니, 아직 읽어보진 못했지만, 조지 오웰은 소설가라니보다는 시대를 앞서가는 선각자(쓰고 보니 좀 촌스럽다;)가 아니었을까 싶다. 꼭 읽어보고 싶다. 빨리. 

(한가지 아쉬운 점은, 원서 'Coming up for air'의 표지가 내가 좋아하는 앙리 카르띠에 브레송의 사진이라는 점. 아마 원서도 사보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4. 누가 제노비스를 죽였는가?_ 디디에 드쿠앵 

'심리학'은 내가 끝끝내 정복하지도 못하고 평생 기웃거리게 될 분야 중 하나다. 대학 때도 전공이 아닌 심리학 강의를 기웃댔지만 여전히 심리학의 '심'자를 알지 못하며, 알랭 드 보통이 추천한 '여자에게는 보내지 않은 편지가 있다'도 어려워서 여태 다 읽지 못했지만, 정신과 의사 출신인 리브카 갈첸이 심리학과 기상학을 적절히 활용해 쓴 '대기불안정과 그밖의 슬픈 기상현상들'이라는 '소설'은 너무도 재미있게 읽었다. 그래서 이 책 역시 기대가 된다.  

처음에는 입사시험 때문에 '제노비스 신드롬'이라는 말을 알게 됐지만, 그 신드롬 자체가 너무도 흥미로웠다. 그런데 이렇게 그 제노비스 신드롬이라는 용어를 낳은 사건을 다룬 소설이라니까 궁금하다. 왜 그많은 목격자들 중 누구도 나서지 않았을까... 단순히 그 많은 목격자들을 모두 비난하기 전에, 이렇게 비인간적인 방관에 분명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는 내 믿음에 설득력을 얻고 싶다. 

5. 신들은 목마르다_ 아나톨 프랑스 

아나톨 프랑스가 프랑스 공포정치 시대를 배경으로 쓴 소설이라고 한다. (그러고보니 내가 재미있게 읽은 프랑스 작가들은 이름 속에 '프랑스'를 담고 있다. 프랑소와즈 사강이 그렇고, 심지어 아나톨 프랑스는 성이 그냥 프랑스다) 각설하고, 학창시절에는 세계역사에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졸업 후 이런 저런 책들을 통해 만나는 세계사는 학교에서 배우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무서울 정도로 현재의 모습과 닮아있어서, 미래에도 여전히 그렇지 않을까 조금은 실망하고 겁나게 만드는 측면이 있지만, 어쨌든 그게 바로 역사를 알아야하는 이유 아닐까. 그래도 여전히 온전한 '역사책'은 싫다. 소설과 상상력을 통해 만나는 역사가 훨씬 더 흥미롭고 때로는 그런 것들이 더욱 더 진실에 가깝다고 믿는다. 

 

매달 5권만을 고르는 것은 참 어렵다. 아래 두 책은, 고민 끝에 리스트에서 제외시킬 수밖에 없었던 작품이다.  

레몬 케이크의 특별한 슬픔 (에이미 벤더), 그리고 이상은 왜? (임종욱)  

 

벌써 5월하고도 7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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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게 - 제144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시간이 갈수록 감정이 단순해진다. 슬프다, 기쁘다, 행복하다, 짜증난다, 밉다, 좋다, 싫다. 더 이상 내 감정을 붙잡고 그것의 정체를 알기 위해 자세히 들여다볼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단순화하는 연습을 한 덕분일까, 정말로 감정이나 감각이 둔해져서일까,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지금보다 좀 더 감정이 복잡다단했을 때 내가 되고 싶었던 것이 되었어야 했다. 

덕분에 이 책을 덮고 난 후의 느낌도 한마디로 요약될 만큼 단순해서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이런 말, 저런 말, 하고 싶은 말이 마구 떠올라야 리뷰를 쓰는데, 그냥 슬펐다. 이곳에서 내 실명이나 내 얼굴을 아는 이 없으니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요즘 어디서든 울 핑계를 찾아 기회닿는 대로 울고 있는데, '달과 게'도 어느 정도 마음 편하게, 그것 때문이 아니라 이것 때문에 우는 거라고 말하며 그냥 마음 편하게, 하지만 얌전하게 울 수 있도록 해줬다. 

결국 가장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지만(이미 가능한 최악의 상황들이 모두 일어나 버린 후의 이야기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난 후 오히려 '슬프다'는 감정만이 남았을 거다. 서로 추악하게 있는 그대로의 욕망을 다 드러내고 볼장 다 보자고 덤볐다면, 그래서 모든 것이 파국으로 치달았다면, 책에 줄 수 있는 별의 개수는 줄었겠지만 그래도 마음은 오히려 홀가분했을텐데. 

하지만 미치오 슈스케는 나를 홀가분하게 만들어주지 않았다. 등장인물 중 누구의 나쁜 소원이 이뤄졌다한들 그를 대놓고 비난할 수 없을 그런 나약하고 상처 입은 존재들이 그래도 끝까지 독하게 버텨준 덕분에 그들 중 누구도 잠시나마 품었던 나쁜 소원을 이루지못하고 오히려 그런 마음을 품었다는 사실에 스스로 더욱 상처받고 만다는 것이, 그것이 참 슬펐다. 차라리 그냥 속시원하게 누구 하나 나쁜놈으로 만들어버리지. 

그렇게 서로 고백할 수 없는 상처와 얽힌 소원들을 갖고 있는 존재들끼리는 아무리 서로 끌어안고 위로하려해도 오히려 상처를 만들고마는 가위손일 뿐이다. 서로 치고받고 뒹구는 치기어린 싸움은 끝나면 오히려 감정의 반전을 일으켜 더 단단하고 좋은 감정을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따뜻한 감정의 교류 사이사이로 흐르는 복잡미묘한 감정대립은 끝내 관계를 끝장내버리고 만다는 것을 한 번 더 확인하게 된 것 같아서, 그래서 슬프다. 

"소라게는 빠른 멜로디를 치는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처럼 수많은 다리를 제각각 움직여, 콘크리트 위에서 희미하게 딱딱한 소리를 내며 맹렬하게 다가왔다." 

빠른 멜로디를 치는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처럼, 그렇게 수많은 다리를 제각각 움직여, 마치 콘크리트 위에서 움직일 때처럼 딱딱한 소리를 내며 맹렬하게 다가오는 것, 소라게 같은 것, 그것이 바로 사람의 생각과 감정이 아니었던가, 그런 것 같다.  

"실제로는 나른해서 어찌할 도리도 없는데, 어째서인지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달리거나 날거나 뛰어오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막상 그 소라게에 쫓기고 있을 때는, 악몽을 꿀 때처럼 팔다리도 말을 듣지 않고, 마음도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어찌할 도리도 없는데, 어째서인지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달리거나 날거나 뛰어오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신이치나 하루야, 그리고 나루미가 한 것처럼 나쁜 소원을 빌고, 나쁜 행동을 하고, 자신의 마음을 속여가며 어른인 척도 해보고, 이것저것 다 해본 것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일 뿐이어서, 미치오 슈스케가 정해준 결론 안에서 그렇게 잠시 동안은 갇혀있어야 할 거다. 

+ 여기까지 쓰고 나니, 내가 위선자라는 생각이 든다. 하루나야 신이치 같은 인물을 소설 속에서 만날 때는 그들의 상처는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밀어내고 모른체하는 주변 인물을 비난하면서, 정작 현실에서 이런 인물을 만났을 때는, 소설 속 주변 인물들처럼 비겁자가 되고 마는 게 나라는 사실을 바로 오늘, 깨닫고 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이 다가가 말 걸어줄 때인 것 같은데, 왠지 무섭고 겁이 나서, 그냥 안 봤으면, 더이상 어떤 내밀한 관계가 생기지 않았으면, 이쯤에서 모른척할 수 있으면 좋겠다. 비겁한 거 아는데, 정말이다. 하루하루 나 자신의 비겁함을 바라보며 멀쩡히 지낼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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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찾아서> 성석제 작가와의 만남 초대 이벤트 당첨자 명단

 

1. 

요즘 다른 사람들과 얘기하다보면 나는,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편견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원래' 혹은 '항상'이라는 말을 유독 싫어하는 사람 앞에서도 이 단어들이 습관적으로 불쑥불쑥 튀어나왔던 걸 보면 정말로 나는 편견을 많이 가진 사람이다. 

어쨌든, 내 편견 중에는 이런 게 있었다. 문학을 좋아하는 여자들은 좋게 말하면 대개 수수하고 솔직히 말하면 별로 예쁘거나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 그런데, 카페꼼마를 못 찾아서 부득불 전화하게 됐던, 그래서 카페꼼마 밖으로 나와 나에게 위치를 알려준 문학동네의 관계자분은 참 예뻤다. 그리고 카페꼼마도 책이 많아서 참 예뻤다. 

 

 

   

 

 

 

2.   

어릴 때 나는 내 이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주로 옛날 기생들 이름으로 별명을 붙여주기 좋아했던 이름이다. 그리고 무슨 마음에서였는지, 내 이름은 내가 정하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이름의 한자풀이를 영문으로 바꾼 후 그 약자를 따보기도 하고(막상 해보니 SBS가 돼서 별로였지만),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전부터 스스로 '별**'라는 닉네임을 써보기도 하고, 작가가 되면 쓸 필명도 꽤 많이 생각해뒀다. 인터넷에서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수많은 이름을 갖고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내 이름을 좋아하게 됐다. 그 어떤 멋진 단어를 떠올려도 내 이름만큼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된 것. 그리고 오늘, 조금은 기계적으로 책에 싸인을 해주던 소설가 성석제씨가 꽃분홍색 포스트잇에 미리 써뒀던 내 이름을 보고 멈칫, 잠시지만 머릿속에 있는 어떤 기억을 급하게 마구 끄집어내는 것을 보고 또 한 번 내 이름이 좋아졌다. 

 

  

 

 

 

3.  

좋아하는 연예인과의 팬미팅에 가는 여고생의 마음가짐으로 회사를 뛰쳐나왔었다. 예전에 좋았던 영화의 감독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는데, 글쎄 그게 대화라기보다는 강연이라는 점이 그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던 건지는 몰라도, 내가 영화에서 받았던 느낌과는 너무 달라서,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조금 실망했었다. 그래서 소설이 주는 느낌과 비슷한 사람일 거라는 기대는 말고 가자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했었는데, 미리 그런 마음의 준비를 한 것이 별 소용이 없었다. 그냥, 처음 봤지만, 아- 소설가 성석제 같다. 그랬다. 

예전 모 가수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한 베테랑 가수 겸 기획자가, 말하는 목소리와 노래하는 목소리가 너무 다른 것을 단점으로 지적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소설가 성석제는 소설쓰는 목소리와 말하는 목소리가 비슷했다. 기존에 내가 가진 이미지를 나쁜 방식으로 뒤집거나 갱신시켜버리지 않아서 고마웠다. 그런 경우도 참 드물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또 그를 통해서 기형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시청탁 얘기를 하다가 기형도 이야기가 나왔는데, 기형도가 그렇게 이야기했다는 건지, 성석제씨가 그렇게 이야기했다는 건지, 누가 꼭 했다랄 것도 없이 대화 중에 그런 결론이 나왔다는 건지는 미처 잡아채지 못했지만 이런 이야기였다. 

이렇게 줄여버리면 약간의 왜곡이 있을지 모르나, 요는, 그들이 소설가가 되고 시인이 되는 이유는, '청탁'의 힘을 빌려 계속해서 소설을 쓰고 시를 쓰기 위해서라는. 뭐든 좀 해야돼야 하는 편인 내게는 돌팔매질 같은 이야기이기도 했다. 나는 작가를 꿈꿀 것이 아니라, 작가가 됐어야 했다.  

그래서 평생 글을 쓰겠다는 그분이 멋있었고 또 질투도 났다.

 

 

4.  

그리고 이곳에서 만난 너무나 반가운 또 한 사람. 

청년 이성복. 

 

 

 

자꾸 이런 말을 많이 입에 담는 게 '나이듦'의 징표처럼 느껴져 좀 조심스럽긴 하지만, 행복했다. 

 

진행을 해주셨던 신용목 시인 

 

 

[왕을 찾아서]를 낭독해주신 김유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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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생각보다 별로였다. 

와닿지 않았다. 나라면, 도저히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아는 누군가가 이러는 것도 싫다. 너무 많은 우연의 연속도 비현실적이고 그래놓고 결국은 그렇게 결론이 나는 것도 불합리하게 느껴진다. 

나는 이런 사람 싫다. 뭐 이건 소설이잖아? 그런대도 싫다. 이루지 못한 꿈 그런 건 모두 '벤'의 핑계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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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계속 눈물이 났다. 이별하는 중이고, 미워하는 중이고, 애쓰고 있는 중이었다. 염치 없게 난 꼭 이럴 때만 선생님을 찾는다. 몇 시간 후 받아본 선생님의 답장과 그동안 모아놓으셨던 글들. 

이성복 선생님의 답장을 받고 나는 화장실로 갔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는 운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발견한 피고 있는 꽃들 때문도, 아침에 발견했지만 줍지 못한 예쁜 바구니 때문도, 아니다. 엄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아빠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것처럼 나는 이제 선생님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한 번도 직접 말하지 못했지만 선생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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