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수수밭 (구) 문지 스펙트럼 6
모옌 지음, 심혜영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6월
평점 :
절판


모옌 | 붉은수수밭

아버지는 너무나 흡사한 두 차례의 부서짐 사이에 어떤 필연적인 관계가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직감하고 있었다. 이 일과 그 일이 한데 연결되면서 또 하나의 장면이 나타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영웅은 단명인지라
.......그 브라우닝 총을 깨끗이 손질하다가 총이 불발되는 바람에 자기 총에 맞아죽었다.

벌써 자동차가 붕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는 무거운 브라우닝 총을 든 채로 위사령관의 곁에 엎드려 있었다. 팔목이 얼얼했고 손바닥에는 땀이 흥건했다. 엄지와 검지 사이의 살이 갑자기 툭하고 한번 튀더니 이어 계속해서 툭툭툭거리며 튀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살구씨만한 살 덩어리가 규칙적으로 튀는 모양을 신기한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살 속에는 마치 껍질을 뚫고 나오려는 작은 새가 숨어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그 꼴을 보고 싶지 않아서 손에 힘을 주었지만 그렇게 하자 이번에는 오히려 팔 전체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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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독도 문제가 시끄러울 때쯤 이 책을 읽었다.
소설을 읽는 동안, 내용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제쳐놓고
내내 나쁜 노무 섀끼들.만 외쳐댔던 것 같다.
물론, 우리 나라 사람들이 전쟁원조가서 한 짓이
더 잔인했다고 하는 얘기도 있긴 하지만,
전쟁때는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정말 나쁜 노무 섀끼들이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고 지금 머릿속에 남는 건,
일본놈들의 잔인한 살인방법과,
수수수수거리며 지금도 서로 부딪치고 있을 수수밭의 이미지.
그리고 저 위의 문장들에서 보이는 섬세한 표현들.

소설 속 시점이 약간은 혼란스러웠는데,
그건 작가의 의도라기보다는 실수인 것 같다.
그 일들을 실제로 겪지 않은 말하는 이가
단지 들은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는 방식은
이미지를 풍부하게는 하지만,
크게 와닿는 부분은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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