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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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 카스테라

박민규의 소설은 굉장히 장난스럽다.
아니다, 이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박민규의 태도는 굉장히 장난스럽다.
아니다, 말버릇이 장난스럽다고 해야하나.
암튼 무언가는 굉장히 장난스러운데, 웃을 수가 없다.
아니다, 웃을 수는 있는데 웃고 나면 죄책감이 느껴질 때가 있다.

박민규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해서,
카스테라.와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와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와
몰라 몰라, 개복치라니.와
아, 하세요 펠리컨.과
야쿠르트 아줌마.와
코리언 스텐더즈.와
대왕오징어의 기습.과
헤드락.과
갑을고시원 체류기.로
박민규식 이야기를 매듭짓는 데에는
어쩌면 상당한 부담이 따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다, 그건 내 생각이고,
박민규에게는 그런 방식이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

암튼 박민규의 이야기는 굉장한 희망을 주는 듯 하지만,
굉장히 서글프다.
우리는 이미, 그러한 상상력은 상상력일뿐이라고 믿고 사는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서글픈 것은,
말도 안돼는 이야기야.라는 말을 내뱉으면서도
서글프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고-
정말로 외로운 것은,
살가운 애인이 있는데도,
외롭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고-
정말로 슬픈 것은,
치. 웃기고 있네.라고 말하는 입꼬리가
아래로 처지는 것이다.

박민규의 소설이 단지
특출난 표현으로 가득찬 읽을거리.로 평가받는 것에도,
뭐 "대한민국 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신선하고 충격적인 사건" (이외수)으로 평가받는 것에도 동의하지는 않지만,
아무렇지 않은척 하면서, 마음 아파하는 인간들.
에 대한 관심과 탐구라는 점은
그에게 계속해서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게 만든다.
(그것이 어쩌면 스스로를 컴플렉스 덩어리라고 표현하는
박민규 자신에 대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 소설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단편은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였는데,
푸시맨인 아들의 손에 떠밀려,
터질것 같은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아버지와
결국 기린으로 변해버린 아버지를 만나지만
끝끝내 그가 아버지라고 확신하지는 못하는 아들의 이야기를
어떤 사람이 쉬이 넘길 수 있을까.
순진하게,
실제로 누군가가 기린으로 변해,
어느 동물원, 혹은 숲 속,
그것도 아니면 지하철 역을 배회하고 있는 건 아닐까.
희망을 품게까지 만드는
박민규 붓 끝의 저력을 무시할 수 있을까.

1. 냉장고 속의 카스테라 한 조각을 맛보기 위해,
세계와 사람들과 갖가지 것들을 냉장고에 집어넣는 자취생-
2. 그리고, 직장에서 너구리 게임을 하다가
너구리로 변한 직장 상사, 그리고 그밖의 수많은 너구리들-
3. 아르바이트로 지하철 푸시맨을 하고 있는 아들의 손에 떠밀려
지하철에 몸을 실은 후, 기린으로 변해버린 아버지-
4. 호기심과 친구의 알선으로 어렵게 우주에 급파한 후
멀리서 바라보니, 개복치의 모양을 하고 있는 지구-
5. 손님없는 휴양지에서 일하다 만나는,
오리배를 타고 희망의 나라로 유랑하는 오리배 세계 시민 연합-
6. 오랫동안 똥을 못누고 있는 주인공에게
안색이 안좋다며 야쿠르트를 건네는 야쿠르트 아줌마-
7. 보이지 않는 손과 도도새가 혼존하는 스텐다즈를 가진 코리안-
8. 어렸을 소년 중앙이라는 잡지에 등장한 대왕오징어에게
기습을 받는 여러가지 직업의 소년-
9. 느닷없이 헐크에게 거센 헤드락을 당한 후
헤드락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자-
10. 방구도 마음대로 뀌지 못하는 좁은 고시원 방에 모로 누워
경직돼버린 고학생-

당신은, 상상이나 할 수 있는가.

+ 이 소설을 선물해준, 이지은 양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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